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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30. 10:42 Bluewave사랑방

사상제방(堤防)과 동래부사 송덕비


예로부터 사상지역일대는 낙동강의 흐름에 따라 쌓인 충적토위에서 갈밭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살아왔다. 그러나 낙동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어 농경지 대부분 저지대로서 해마다 홍수의 피해가 많았다. 그래서 이곳에 제방을 쌓아 홍수를 막고 농토와 인명, 그리고 재산의 피해를 막기 위한 치수사업(治水事業)이 조선시대 말기에 이 지역을 다스렸던 동래부사(府使)에 의해 대대적인 물막이용 제방쌓기 작업이 실시되었다. 그 내용이 사상구 덕포동 당산(堂山)인 강선대(降仙臺)경내에 있는 동래부사 송덕비(頌德碑)에서 잘 나타나 있다.



부산의 고지도(왼쪽이 낙동강이며 그동쪽이 사천면으로 오늘의 사상임)

사천면은 낙동강하류지역으로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사상제방을 쌓기전 해마다 수해피해가 많았던 곳이다.


사진속의 붉은 사각테둘레안의 검은 선이 사상제방이다.

1970년대 초반까지 덕포동 - 감전동에 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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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대 경내 세워진 3기의 동래부사 송덕비


송덕비는 앞면에 부사의 이름을, 뒷면에는 주민들이 송덕비를 쌓게된 상세한 공적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즉, 조선시대 이곳에다 제방을 쌓을 때 사상 일대의 중요성과 제방을 쌓을 필요성을 밝히고 여기에 동원된 인원수들을 기록한 3기의 축제혜민비(築堤惠民碑)가 남아있는데 아래와 같다.


박제명부사송덕비


박제명(朴霽明)부사의 축제혜민비는 높이 135cm, 폭 55cm, 두께11cm로 이 지방의 입지 조건과 축제의 필요성을 밝히고 동원된 인원수를 밝히고 있다.

1788년 이경일 부사때 쌓았던 제방이 그 후 홍수로 무너지고 흘리자 기장 500명, 양산 700명, 김해 800명, 본읍에서 6,800명 등 모두 8,800명의 동원된 인원수가 기록되어 있고 1832년 2월 12일에 모라 뒤쪽 방축에서 시작하여 무너진 곳을 매우고 헐린 곳을 돋우어서 3월16일 주례의 사목포에서 공사를 끝내었다고 한다.



박제명부사송덕비


박제명(朴霽明)부사의 축제혜민비는 높이 135cm, 폭 55cm, 두께11cm로 이 지방의 입지 조건과 축제의 필요성을 밝히고 동원된 인원수를 밝히고 있다.

1788년 이경일 부사때 쌓았던 제방이 그 후 홍수로 무너지고 흘리자 기장 500명, 양산 700명, 김해 800명, 본읍에서 6,800명 등 모두 8,800명의 동원된 인원수가 기록되어 있고 1832년 2월 12일에 모라 뒤쪽 방축에서 시작하여 무너진 곳을 매우고 헐린 곳을 돋우어서 3월16일 주례의 사목포에서 공사를 끝내었다고 한다.


이명적부사송덕비

이명적(李明迪)부사의 축제혜민비는 높이 184cm, 폭 47cm, 두께16cm이며 홍수의 피해를 밝히고 축제에 동원된 인원수와 제방을 쌓은 실적을 밝히고 있다.

이경일,박제명 부사때 쌓고 보강한 제방이 기해년 큰 물로 십리 긴 둑이 무너진 후 1840년 봄에 감영에 청하여 이웃 읍의 장정 2600명과 본읍의 장정 5000명등 7600명을 동원하여 3월 초하루에 일을 시작하여 26일에 공사를 끝내었고 이때 강자도(綱子島)의 둑이 침몰된 것을 다시 쌓으므로써 바닷물을 밀어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래 3개의 동래부사 송덕비는 덕포동의 경부선 철로쪽 큰 길가에 있었는데 1971년 당시 덕포동에 살던 손현재씨와 주민대표들이 훼손을 우려하여 상강선대 경내로 옮겨와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사상지역의 제방은 크게 둘로 나눠 하나는 백양산과 그 줄기에서 내려와 유두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냇물이 주위 논밭으로 넘치지 못하게 하는 둑과 홍수 때 불어난 유두강물이 동쪽 산방향으로 전답을 보호하기 위해 유두강을 기준으로 덕포동 강선대 뒤에서 괘법동을 거쳐 감전, 학장에 이르기까지 약 10리나 되는 길이의 제방을 쌓은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러한 일들은 자체적으로 하기엔 벅찬일이였기에 동래부사의 힘을 빌려 기장 양산, 김해지역의 장정의 손을 빌려 단기간에 이룰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방을 쌓기전 1000마지기의 땅이 5배가 불어난 5000마지기의 농사짓기 좋은 땅을 확보하여 주민들이 안전하게 농사를 짓게 하였으니 주민들 입장으로써는 동래부사에 대한 감사가 어찌 없으리오. 그 결과가 바로 송덕비로 공적을 돌에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도록 한 것이다.

사상구 덕포동 강선대(降仙臺)경내 있는 세분의 공덕비를 보면서당시 마을을 다스린 목민관의 올바른 처신을 생각해 보게된다. 지역내 주민들이 안전하게 생업에 종사하도록 챙겨주는 일이야말로 가장 큰 일이이지 않겠는가.은혜를 입은 주민들은 그 댓가로목민관의 공적을 돌에 새겨 후세에 이르르 마모될 때까지 그대로 전하므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모습은오늘의 지역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시장, 구청장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재임시 쌓은 공적으로 후대에 걸쳐 자랑스러운 이름을 전하는 지역 책임자가되었으면 좋겠다.강선대 경내 모퉁이에 말없이 서있는 3기의 송덕비는 무언속에 오늘의 우리들을 가르치고있다.

자랑스러운 송덕비는 부산에서 원형이 가장 보존이 잘되고 풍광이 수려한 사상구 덕포동의 당산인 강선대(降仙臺)경내에 잘 보존되고 있다. 특히 지하철 2호선 덕포역 바로 옆에 있어 인근의 버스 정류소와 함께 대중교통편으로 편리하게 찾아 볼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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