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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6. 20:53 생활의 지혜

막말, 인터넷·휴대전화 넘어 지상파까지 침투 [조인스]

막말에 오염된 한국, 한국인

월간중앙‘십장생’‘쩐다’‘벩’…. 요즘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이다. 최근 막말이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넘어 지상파까지 넘나들고 있다. 막말의 일상화, 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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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이 막말에 오염돼 있다. 잠시 텔레비전을 켜보자. 온갖 프로그램에서 연예인·정치인 할 것 없이 출연자들의 막말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과거 TV에서는 반드시 바른말·고운말을 써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 합의마저 깨져버렸다.

지난 2월1일 KBS 2TV 인기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할매가 뿔났다’ 코너. 할머니로 분장한 개그맨 장동민이 동료 개그맨 유세훈에게 “너무 컸어, 이 새X”라고 말하는 내용이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악성 바이러스’ 코너에서는 김준호가 ‘ㅁㅊㄴ’ 자음만 적힌 종이에 모음을 채워가며 욕설을 암시하다 “다 채우면 편집이에요”라며 웃었다.

앞서 1월21일에는 KBS <상상플러스 시즌2>에서 그룹 ‘컨츄리꼬꼬’의 가수 신정환이 ‘개XX’라는 욕설을 한 것이 그대로 전파를 타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왕비호 캐릭터로 뜬 윤형빈을 비롯해 김구라 등의 개그맨은 아예 ‘막말’을 상품으로 내세워 활동하고 있다. 연예인뿐만 아니다.

지난 1월29일에는 김용서 수원시장이 수원의 한 동사무소를 순시하면서 주민 100여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수원시는 유일하게 시의회하고 집행부 간에 으르렁대지 않는 곳”이라며 “화성시나 성남이니 용인이니 가보면 꼴 같지 않아. 의회하고 집행부하고 쌈질하고 지랄들을 하고 있는데…”라고 말한 것이 알려져 파문이 일기도 했다.

김 시장은 한 발 더 나아가 국회를 빗대 “여러분, 국회에서 지랄하는 거 보시잖아요? 지랄들 더럽게 하고 앉아 있어요”라고도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막말정치인의 대표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그는 재직 시 ‘깽판’ ‘조진다’ ‘떡됐다’ 같은 말을 사용함으로써 지도자의 언어를 거리의 언어로 격하시켰다.

다른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24일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국감에서 취재진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사진 찍지 마! XX, 찍지 마. 성질이 뻗쳐가지고, 정말…”이라고 막말하는 것이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다. 지난해 12월 말 국회파행 당시 의원들끼리 “밀지 마, 이 XX야” “너, 아 XX”라고 욕하는 장면이 그대로 전파를 타기도 했다.

막말의 일상화는 그렇잖아도 과격하던 시위현장의 용어를 더욱 격하게 만들고 있다. ‘결사반대’ ‘투쟁’ ‘웬 말이냐’ 정도가 주류를 이루던 시위현장의 용어도 몇 년 사이 급격히 과격화했다. “부시를 묻어버리자”(파병 반대 시위), “쥐새끼, 너 즐처먹어”(촛불시위의 초등생) 같은 플래카드도 등장했다.

학교현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연예인의 영향을 많이 받는 어린 학생들의 막말은 도를 넘어섰다. 교실 게시판에 ‘열라’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애교 수준. 나무라는 선생님 앞에서 ‘존나’ ‘짱나’ 같은 표현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고등학교 교사 이소희 씨는 “말이 거친 아이들의 경우 혼낼 일이 있어도 혹시 내게 막말로 욕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해 혼내기를 포기할 때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막말을 주고받을지언정 교사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켰던 선까지 무너져 내린 것이다.

말의 힘 강화한 인터넷, 막말 확산에도 일조

막말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와 차별화를 위해 자신들만의 은어와 비속어를 발달시켜왔다. 그러나 근래의 막말파동은 과거와 상황이 판이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전문가들은 근래 막말의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는 가장 큰 이유로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미디어 통신기기의 발달을 꼽는다.

바로 말의 힘을 강화했던 인터넷의 발달이 역으로 막말의 전파에도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초고속 인터넷 망이 집마다 깔리고 초등학생까지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한국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1대1 대면보다 전화로, 전화보다 문자메시지나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는 빈도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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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사용 증가는 문자 형태의 의사소통량을 대폭 늘렸다. 문제는 이에 비례해 ‘글의 품위’에 대한 심리적 기준도 급속도로 낮아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문자의 조합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되는 막말성 신조어는 구어에 비해 확장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일종의 재미도 준다. 인터넷 상에서 비속어를 거르는 필터를 피해가기 위해 만든 ‘십장생’류나 자음만 따서 ‘ㅆㅍ’ ‘ㅂㅅ’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쓰기에는 거북한 표현이지만, 글귀 뒤에 갖다 붙이는 것은 얼굴을 맞대고 했을 때의 민망함도 피할 수 있다. 인터넷 포털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보기에도 역겨운 표현이 수두룩하다.

익명성이 전제되다 보니 통제도, 자제도 없다. 말이 군사력·경제력에 이어 제3의 힘으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터넷이 오히려 막말의 확산에도 일조하는 셈이다. 휴대전화의 발달도 막말 확산에 날개를 달아줬다. 요즘 아이들의 문자메시지에는 ‘시X’ ‘짱나’ ‘즐X드삼’ 등 과격한 단어가 수시로 오간다.

어른들이 앉아 있는 앞에서 거실 전화로 조심스럽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눠야 했던 시절에는 쓸 수 없던 말들이다. 그러다 보니 말끝마다 ‘씨X’ ‘쩐다(좋다, 혹은 나쁘다)’ 등의 표현을 습관적으로 붙이는 아이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미(대체 뭐야)?’, ‘ (불쾌함)’ 등의 ‘외계어(정체 불명의 말)’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아이들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전이 필요할 정도다.

막말의 범람은 거리로까지 번지고 있다. 대표적 예가 간판의 변화다. 행인의 눈에 띄는 것이 목적인 간판의 경우 과거에도 ‘잔Beer 수’ ‘오뎅명 구우리’ 등 언어유희를 활용한 이색적이거나 기발한 표현의 간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X라빨라 PC방’ ‘거XX회관’ 등 언어유희를 넘어선 노골적 간판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

그러나 연예인부터 정치인까지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막말 퍼레이드’의 원인이 단순히 최근의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 통신기술의 발달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박재현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중·고등학생이나 연예인의 막말 현상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막말로 인해 한국어가 파괴되고 있다는 이분법적 시각은 잘못된 것 같다”고 말한다.

언어의 소통 방식이 변하고, 과거와 달리 방송이 막말을 여과 없이 방송하면서 현상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고 또 광범위하게 쓰이는 것이지, 막말 자체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막말을 욕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욕이 과거의 욕보다 반드시 더 험하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요즘 막말은 ‘육시럴’ ‘염병할’ ‘후레자식’ 등 우리의 전통 욕에 비하면 뜻 자체는 덜 험하다는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역시 “한국인만큼 욕(막말)이 발달한 민족은 없다”고 말한다. 기껏해야 ‘빠가야로(바보)’ 정도의 욕밖에 없는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의 욕은 다양하고 거칠다. ‘육시를 할’ 등의 표현의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했던 민족이 우리 민족이라는 것이다. 막말의 뿌리가 그만큼 넓고 깊다는 말이다.

이 고문은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말을 부정적 힘에만 주목했지, 긍정적 힘에는 주목하지 않았고, 그 결과 부정의 언어는 매우 발달한 데 반해 긍정의 언어는 발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막말뿐만 아니라 일상어에서도 긍정적 표현보다 부정적 표현을 훨씬 많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성인 전용 극장을 표시할 때도 영어권에서는 ‘성인전용(Adult only)’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연소자출입금지’라는 표현을 쓰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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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뜻이지만 긍정의 표현을 쓰는 민족과 부정의 표현을 쓰는 민족의 말의 힘에 대한 인식과 활용도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은 왜 말의 긍정적 힘보다 부정적 힘에 주목하게 된 것일까? 정확한 답은 없다. 일반적으로 전쟁이나 기아 등 사회적 환경이 각박해지면 ‘ㅋ’나 ‘ㄲ’ 등 거센소리, 즉 된소리가 많아지는 경향을 두고 각박했던 근대화의 영향으로 한국인의 말이 거세졌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이는 아직 학술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일부 전문가들은 달변가를 선호하지 않았던 유교의 영향으로 말을 삼가는 문화가 발달한 것을 이유로 꼽는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유교문화에서는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것을 경계한다”며 “선비의 자세를 뜻하는 말에 ‘신독(愼獨)’이 있는데, 이는 혼자 있을 때도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가라는 뜻이다.

이런 유교문화가 은연중에 한국 민족을 말 못하는 민족으로 만든 것 같다”고 말한다.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역시 “말의 속성은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자기 주장을 전파하는 것인데, 유교에서는 이런 말의 속성을 자기 이해관계를 위한 기술로 생각해 부정적으로 바라봤다”고 지적한다.

유교에서는 말이 많은 사람을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이처럼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것은 자신을 죽이고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고자 하는 유교의 가치에 역행하는 것이어서 터부시했다는 것이다. 그는 “유교에서는 말 잘하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 역시 선동가라고 생각해서 좋지 않게 봤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말하는 것, 말 많은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적 관습이 오랫동안 굳어지면서 말의 긍정적 힘보다 부정적 힘이 부각됐고, 긍정적 언어보다 부정적 언어, 즉 막말이 발달하는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오효림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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