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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1. 18. 01:42 Bluewave사랑방

후쿠오카(福岡) 토오진마치(唐人町)와 조선인 이종환(李宗歡)

[일본속의 한국의 흔적-12]

후쿠오카현(福岡縣)후쿠오카시(福岡市)중앙구(中央區)에는 토오진마치(唐人町)라고 부르는 상가가 있다. 이곳에는 1587년 조선인 이종환(李宗歡)의 발자취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16세기 말 조선인 이종환(李宗歡)은 어떻게 이곳에 왔으며 뿌리를 내렸는지 알아본다.

토오진마찌상가 1

토오진마치(唐人町)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상세하지않지만, 1600년대말 편찬된 일본의 고서『축전국속풍토기(筑前國續風土記)』에는 「처음 고려사람이 살았다」라고 되어있고, 『축전국속풍토기습유(筑前國續風土記拾遺』에는 「오랜 옛날에 당선(唐船)이 숙박하기도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고려사람이란 조선사람을 말하며 당선(唐船)은 단순히 외국의 배를의미하는데 당시 일본의 외국은 조선이었으므로 조선인이 탄배를 가르키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으로보아 후쿠오카시(福岡市)시내 토오진마치(唐人町)라는 곳에 조선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토오진마치(唐人町)의 최초의 사람은 이종환(李宗歡)이다라는 기록도 있다. 그 기록에 의하면 최초의 조선사람인 이종환(李宗歡)은 함경도 길주(吉州)라는 곳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집안은 상당한 지위와 학식을 갖춘 양반이었다고 한다.

토오진마찌상가 2

1587년 어느날 자신의 고향 앞바다에서 뱃놀이를 하다 풍랑을 만나 바다에서 가족을 잃고 표류하다 일본어선에 구조되어현재 일본의 기타큐슈(北九州)시에 도착했다. 그는 문,무를 겸한 재능이 뛰여난 사람으로 비전국(肥前國)나베시마번(鍋島藩)의 번주(藩主)로부터 영리하고 이용가치가 있음을 인정받아 나베시마는 이종환에게 가와사키(川崎淸藏)라는 일본 성을 하사했으며, 무사의 신분까지 주었다.1592년 임진왜란 때 나베시마는 이종환을 앞세우고 조선을 침략했다. 이종환은 조선인의 복장으로 정보를 수집하여 나베시마에게 보고하고 일본군에게 길을 안내하는 것은 물론 통역까지 맡아 큰 공을 세우게한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이종환은 조국을 배신해 죄책감으로 고향으로 돌아가지않고 일본으로 건너와 나베시마번을 감동케하였다. 나베시마는 이에대한 보답으로전쟁후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강제로 데리고 간도공 6~8명과 함께 살게하고 토오진(唐人)들이 사는 주거지라하여 토오진마치(唐人町)의 町號를 붙여 주었다고 한다. 이종환(李宗歡)은 상술에도 뛰여나 무역에도 실력을 발휘, 해외 진품을 직수입하여 전국의 거래상들이모여들게하였다.

여기서 일본인들이 말하는토오진(唐人)이란 원래 중국사람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조선사람도 포함시켰으며 심지어 19세기말 흑선(黑船)을 몰고 강제 개항토록한 미국의 초대총영사관타운센트 해리슨이시모다(下田)에 체류할그들을 접대하는 일에 선발된오키치(お吉)란 여자를 훗날 토오진오키치(唐人お吉)라고 부르며놀래될 정도로 자신들과 다른 외국인을 토오진(唐人お吉)이라 불렀다. 지금도 시모다(下田)에 가면 '唐人お吉記念館'이 관광객을 불러 모우고 있다.


토오진마찌상가 3

지하철 토오진마찌역


문헌상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1627년에 성립한 『축전축후비전비후탐색서(筑前筑後肥前肥後探索書)』이다. 에도(江戶) 시대에는 가라쓰(唐津) 가도에 따라 저자거리가 줄지어 서고, 이것이 훗날의 토오진마찌(唐人町) 상점가로 발전한 것으로여겨지고 있다. 2차대전 전후는, 토오진마치(唐人町) 상점가는, 후쿠오카시(福岡市)내의 상점가에서도 일찍부터 아케이드를 설치해서 붐비고,또 주택지화가 진행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주택가의 재개발이 빠르게 진행되고, 고층 맨션의 신축이 잇따르고 있다.

16세기 말 함경도 길주에 사는 조선인이 조난으로 이곳에 흘러와 정착하게되고 임진왜란 때 그의 고향으로 돌아 갈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조국에 대한 배신감때문에 일본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었던조선인 이종환(李宗歡)이 토오진(唐人)으로 살다 간 안타까운 사연이 토오진마찌(唐人町)에 묻혀 전해 내려오고있다.

posted by bluew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