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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21. 00:17 연예와 문화

남강 모래밭에 쓴 수필/정목일

내가 태어난 곳은 진주시 중안동 15, 도립병원(진주의료원) 뒤였다. 비봉산을 등지고 경찰서와 우체국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십 분만 가면 남강과 진주성이다. 나에게 이 길은 추억의 시·공간을 이어주는 마음의 탯줄 같은 길이다. 봄이면 도립병원의 벚꽃과 목련꽃이 눈부셨고, 향기로운 길이었다.

 진주인의 마음속에는 남강이 흐른다. 마음속엔 푸른 대밭과 흰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 남자라고 할지라도 마음속엔 가락지를 끼고 있다. 열 손가락마다 가락지를 끼고서 왜장을 끌어안아 두 손으로 깍지 낀 채 강물 속으로 뛰어든 논개를 잊을 리 없다.

 남강을 바라보면 오래간만에 고향 집을 찾아와 어머니를 만난 듯 뜨거운 감정을 억누를 수 없다. 남강은 진주를 낳고, 역사와 문화를 꽃피운 거룩한 어머니다.

 나는 75년 종합문예지 '월간문학'지와 76년 '현대문학'지에서 수필부문에 각각 최초의 당선과 추천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종합문예지 등단 1호라는 점 때문에 수필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종전까진 우리 문단에 공식적인 수필가의 등단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등단 관문을 거친 제1호 수필가에게 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진주에서 '경남수필문학회'를 창립하는 한편, 수필 쓰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첫 수필집 '남강 부근의 겨울나무'(백미사)가 나온 것은 79년이었고, 작품들은 풀, 나무, 별, 달, 강 등 자연을 소재로 한 것으로, 남강 정서와 사색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겨울에 벌거숭이가 되어 낙엽 지는 나무들이 상록수보다 더 좋아진다. 상록수가 만약 잎이 진다면 그것은 얼마나 보기 흉할까. 원체 그들의 가지는 빈약하고도 보잘 것이 없다. 그러나 잎이 다 지고 난 벌거숭이 나무들이 내어놓은 하얀 피부와 모든 것을 떨쳐버린 밋밋한 가지들은 동양화의 여백 같은 여운을 준다. 그들의 생각은 깊디깊어 하늘에 뻗히우고 일부분 남가람에 적시우고 있었다. 남강변의 겨울나무처럼 이 고장에서 뿌리내려 진실 되게 살아가고 싶다. 담담하게 살고 싶다.

  - 필자의 '남강 부근의 겨울나무' 일절 -

 

아침에 일어나면 촉석루까지 가서 남강을 바라보는 게 하루의 일과처럼 되곤 했다. 성장기의 이런 체험이 성인이 된 후에 진주성 전투를 소재로 한 '남강의 아이'라는 장편 동화를 쓰기도 했다. 어릴 적엔 빨래하러 남강에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다녔고, 중·고교시절의 산책 코스는 남강 둑길과 진주성이었다. 그곳은 역사의 성소였다. 백사장에 앉거나 드러누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으며, 여름이면 멱을 감았다. 물속에서 목만 내어놓고 눈이 시리게 푸른 대밭과 바위 벼랑 위에 솟은 촉석루를 바라보곤 했다. 내 수필들은 남강을 보고 자란 생각과 서정에서 피어난 소박한 풀꽃들이다.

 

진주 남강은 논개(論介)의 가락지 사이로 흐른다.

희고 부드러운 여인의 손가락에 끼인 가락지는 사랑의 정표로서 변함없는 마음의 꽃이다. 가락지는 여인에게 있어서 사랑의 상징이며 인연의 고리이기도 하다. 남강에 가보면 천년 만년을 흘러온 푸른 강물이 가락지 사이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락지를 보면, 사랑의 기쁨과 축복의 노래가 들려올 듯하건만, 남강에서 보는 가락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애통하고 눈물겹다. 임의 품에 안겨 행복감에 만져보는 가락지가 아니라, 원수를 품에 안고 복수심에 떨며 바라보던 가락지다. 사랑을 약속한 꿈의 가락지가 아니라, 죽음을 각오한 비애의 가락지이다. 

-필자의 '논개의 가락지' 일절 -

 

진주인이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가락지는 역사와 강물이 준 것이다. 타향에 사는 진주인의 집에 가보면 강을 배경으로 한 촉석루 사진이 붙어있는 것을 보곤 한다.

 

모래밭은 강물이 흐르면서 펼쳐놓은 만년 명상록(명상록)-.

하얀 명상록엔 강물의 만년 노래가 있다.

모래밭 속으로 걸어가면 어느새 발자국을 남기며 이 세상 가장 정결한 곳으로 들어왔음을 느낀다. 뒤돌아보면 걸어온 흔적이 있다. 발자국들은 강물과 바람에 지워질 것이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들이 찍히고 사라지곤 할 것인가.

-필자의 '모래밭' 일절 -

 

남강의 하얀 모래밭은 강물이 펼쳐놓은 만년 명상록이자, 내 사색의 영토이기도 하다. 나는 그 정결한 명상록에 무엇을 써놓을까를 생각한다. 수필은 논픽션이기에 진실과 순수를 생명으로 한다. 문장은 곧 인생경지를 보여준다. 나는 마음속에 샘을 파두어서 탐욕이라는 때와 어리석음이란 얼룩과 분노라는 먼지를 깨끗이 씻어내고 싶다. 마음속에 종을 달아 두어서 깨달음의 종소리를 듣고 싶다. 인격에서 향기가 나야 문장에서 향기가 나는 법이다. 강물처럼 스스로 깊어지고 맑아지는 법을 알고 싶다. 나는 곧잘 그리운 남강에 와서 경배하면서 가락지 사이로 흐르는 영혼의 물을 마음에 채워가곤 한다.

내 고향은 ‘은하수의 도시’처럼 생각된다.

고향 진주를 생각하면 남강 모래밭에 누워 여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영원 속으로 흐르는 은하수를 바라보던 모습이 오른다. 가슴속으로 남강이 흐르고, 세월이 흘러도 강물소리가 들려온다. 하얀 모래밭에 금모래가 햇빛에 반짝거린다. 강가의 대숲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귓가에 와 소곤거린다.

진주의 심장으로 흐르는 남강은 도시를 탄생시킨 어머니며 역사를 낳은 모태이다. 남강은 한반도 남쪽 땅을 적시는 아름다운 서정시일 뿐 아니라, 도도한 기백으로 흐르는 서사시이기도 하다. 강물 유선(流線)은 여인의 몸매처럼 부드럽고, 물과 모래밭은 맑고 눈부시어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보이지만, 진주성에 이르러선 남성적인 미를 보인다. 영남 제일의 누각이라 불리는 ‘촉석루’가 바위 절벽 위에 우뚝 서있다. 그 모습은 절경 중의 으뜸이지만, 그냥 풍광만으로 바라볼 수 없다. 강가에 휘늘어진 수양버들 아래로 잔잔한 수면에 연인들끼리 보트를 타는 모습은 평화스러움을 느끼게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역사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서기 1593년(선조 26년) 6월 29일은 왜군과 10일간의 결사항전 끝에 진주성이 함락되는 비운의 날이었다. 이 날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민족의 치욕과 비극의 날이었다. 진주성이 함락되자, 7만의 민.관.군이 생명을 잃었다. 왜적은 정예부대 12만 3천여 명이었다. 김천일장군은 촉석루에서 한 잔 술을 마시고 나서, “대장부의 죽음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느냐?” 며 절벽 아래 푸른 강물에 몸을 날렸다. 이를 본 아들도 말없이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최경회 장군도 “왜적의 손에 죽을 수 있겠는가!” 남강을 굽어본 후 몸을 던졌다. 진주의 어머니들은 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강으로 뛰어들었다. 한 성의 공방전으로 7만 여의 전사자를 낸 것은 세계 전사(戰史)에도 찾기 어려운 참혹한 비극이었다. 푸른 남강은 핏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진주성 함락으로 7만여 명의 전사(戰死)로 말미암아 민족의 마음은 절망과 비탄과 좌절에 빠지고 말았다. 원통함이 뼈에 스미고 슬픔이 넘쳐 말을 잃게 했으며 눈물도 매 말랐다. 마음에 맺힌 한을 풀 수가 없었다. 겨레의 마음은 절망에 빠져 삶의 기운조차 잃고 있었다.

꽃다운 나이 열일곱의 논개가 왜장을 얼싸안고 촉석루 밑 바위(義岩)에서 강으로 뛰어들어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우리 겨레는 눈물을 쏟았다. 처절해서 울고, 용감해서 울고, 아름다워서 울었다. 그 눈물이 7만여 전사자의 원혼을 반쯤이라도 달래고 보상해 주는 듯했다. 논개의 순국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민족의 마음을 위무해 주고 원통하고 한스러워 견디기 어려웠던 백성들의 핏 멍과 상처를 치유해준 손길이 되었다.

논개의 순국으로 남강은 겨레의 가슴속으로 흐르는 애국혼의 동맥이 되었다. 실의와 절망에서 다시금 민족혼을 소생시키게 한 계기를 마련케 했다. 이것은 거룩하고도 위대한 힘이다. 꽃송이 하나가 강에 떨어짐으로써, 겨레의 가슴속에 영원히 피어나 고고한 향기를 띄워주고 있는 것이다.

남강은 진주의 한 가운데를 흐르고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 남강은 빨래터이기도 했다. 남강 가에서 빨래를 해본 어머니들은 그 때를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촉석루와 푸렁푸렁 한 대밭을 보고 박자를 맞추며 방망이를 뚜드리던 어머니ㅡ. 맑은 강물에 빨래를 헹구어내면서 이 옷을 입는 가족들의 마음이 맑고 깨끗하길 기원했다. 진주의 어머니들은 남강에 와서 빨래하면서 마음도 정갈히 씻어내었다.

소년기에 나는 어머니를 따라 남강에 와선 돌멩이를 던져 수제비를 떠보곤 하였다. 얇은 돌멩이가 수면에 파문을 만들면서 핑그르 굴러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여름이 되면 남강은 멱 감는 곳이 되곤 했는데. 이때만 되면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당부하곤 했다.

“애야, 절대로 남강에 멱 감으러 가선 안 된다. 큰 일 난다, 알았니?”

몇 번이나 다짐하고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안도하곤 했다. 여름이면 강물이 불어 익사사고가 빈번했다. 이를 두고 논개가 아이들을 물속으로 끌어들인다는 속설이 나돌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여름이면 남강이 아니면 가볼 곳이 없었다. 강물이 아이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금세 잊어버리고 남강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발길이 닿는 곳은 남강이었다. 강둑을 걸으며 강물을 바라보아야 가슴이 시원해지는 듯했다.

남강은 아이들에게 더 없는 놀이터였다. 모래성을 쌓고 허물었으며, 멱 감고 지치면 모래밭에 나와 뒹굴었다.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알몸을 내놓고 깔깔거려 보던 때는 남강에서 보낸 소년기뿐이었다. 씨름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강에 빠져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다. 호기를 부려 깊은 곳에 갔다가 강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큰 아이들이 구해주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뙤약볕이 쨍쨍 내리쬐는 모래밭에 힘없이 팽개쳐져 있었다. 멀리 아슴프레 촉석루가 아른거리고, 어디선가 귀가 따갑게 매미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너무나 눈부시어 그늘을 찾아 기어갔다. ‘강에 멱 감으러 가지 말라’던 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패잔병 같았다. 멀리서 남강을 바라보았다. 아름답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있었다.

친구와 바람 쐬러 간다는 것은 남강으로 간다는 의미였다. 둑길을 걸으면서 문학과 우정을 쌓아갔다. 여름이면 촉석루와 북장대. 서장대로 일순하는 산책로를 걷길 좋아했으며, 나이가 들수록 낮보다 밤에 멱 감길 좋아했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모래밭에 누워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별들을 바라보곤 했다. 하늘엔 은하수가 흐르고, 땅엔 남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 어떤 명승지나 피서지의 여름보다도 남강의 여름을 잊을 수가 없다. 진주인 가슴속에는 죽는 날까지 남강이 흐르고 금모래가 반짝거린다.

작가에게 있어서 고향은 작품을 낳는 어머니나 다름없다. 나는 ‘어머니’에 대한 수필을 여러 편 썼다. 고향, 어머니, 남강은 나에게 있어서 동의어로 통하고 있다.



식탁 앞에 앉으면 무엇인가 텅 빈 것 같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음을 느낀다. 아내가 만든 김치며 된장국 등에선 어머니의 음식맛을 느낄 수 없다. 어머니가 담근 김치 하나만으로도 입맛이 당겨 단번에 밥그릇을 비워 내던 모습을 떠올린다. 멸치 젓갈을 넣은 김장김치, 손으로 양념을 버무려 낸 생 김치맛을 어디에서도 맛볼 수가 없다.

아내와 어머니의 김치맛이 왜 다른 것일까. 어머니의 김치맛은 어릴 적부터 길들여져 맛의 향수가 되어 녹아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내는 바쁜 생활 탓에 약식으로 김치를 담그기가 예사이며, 심지어는 시장에서 김치를 사 와서 식탁에 올려놓기도 한다. 김치맛을 내는 여러 조건 중에서 젓갈맛을 뺄 수 없다. 김치를 담그기 위해선 상품(上品)의 양념과 배추. 무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젓갈을 잘 담궈두어야 한다.

나는 어머니의 마음과 삶이 젓갈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다. 멸치나 새우가 젓갈이 되기 위해선 뼈와 살이 푹 삭아서 흐물흐물해져야 한다. 자신의 육신과 마음을 온통 다 내어 주어야 입안에 가득 고이는 젓갈맛이 될 수 있다. 소금에 저려서 뼈와 살이 녹고,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썩어 발효돼야 한다. 자신을 버려야 참맛을 내는 것이다. 어머니의 일생이 그러하지 않은가. 가족들을 먹이고 입히며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을 버리는 것을 오히려 행복으로 알아오지 않았는가.

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은 발효식품이다. 잘 삭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오랜 세월과 정성이 필요하고, 여기에다 알맞은 기후가 보태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정성과 사랑이 깃들어야 발효가 잘 될 수가 있다.

어머니가 담근 김장 김치엔 민족 고유의 맛이 흥건히 고여 있다. 한국의 흙과 기후와 채소들이 만들어 낸 맛과 어머니의 손맛이 보태어진 진미이다. 삼동(三冬)의 추위를 견디고, 새봄을 맞기까지 식욕을 돋궈주는 김장김치맛 속엔 한국 가을의 풍요와 맑음이 깃들어 있고, 겨울의 추위와 지혜가 담겨 있다.

김치를 먹을 때의 서걱서걱 내는 소리 속에 젓갈맛이 우러나와 오묘한 맛을 낸다. 서양의 셀러드는 썰은 야채 위에 소스나 마요네즈를 뿌려 먹는 지극히 단순한 음식이지만, 우리 김장김치는 배추. 무를 오랫동안 소금에 절여 두었다가, 고추. 생강. 파. 깨 등을 섞은 양념에 청각, 굴 등과 젓갈을 넣어 맛을 낸 것이다. 채소의 절임과 발효로 빚어내는 맛의 오케스트라라고나 할까. 지휘자는 말할 것도 없이 손으로 양념을 슬슬 흩어가며 김장을 하는 어머니다. 김장김치는 맵싸하고 짭조롬한 가운데, 화끈한 맛이 있다. 우리 김치 말고는 어느 음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맛이다.

김치맛은 팔도(八道) 팔색(八色)이다. 지방마다 다르고 집집마다 다르다. 김치맛 속에는 기후와 지형과 사람들의 성격이 드러난다. 국에 넣으면 시원한 김칫국이 되고, 된장과 함께 넣어 끊이면 구수한 김치찌개가 된다. 한국의 어떤 음식과도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맛의 샘이라고나 할까.

우리 어머니가 자식을 키우시던 때는 궁핍한 시대였다. 마음껏 자식들을 배불리 먹일 수도 없었고, 변변한 반찬을 해줄 수도 없었다. 남새를 양념과 젓갈을 넣어 손으로 버무려서 손맛을 내어놓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온 식구들이 식탁에 앉으면 웃음이 감돌고 먹음직스러웠다. 어느 음식이나 입에 맞지 않은 것이 없었다. 김이 모막모락 나고 금새 무치고 끓인 음식들에선 어머니의 사랑이 배여 있었다. 어머니는 가족들의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흐뭇한 미소를 띄시고 자신은 누룽지나 식은 밥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를 다시 뵐 수 없게 되자, 알싸하고 입안에 침이 가득 고이는 김치맛이 새삼 그리워진다. 자신을 소금에 저리고 뼈와 살을 녹여서 가족들을 위해 진국맛, 젓갈맛을 낸 분이 어머니이셨다. 자신을 소리없이 발효시킨 삶으로 가정에 건강과 웃음을 피워내셨다. 아, 어떤 업적이나 남에게 내세울 일이 없더라도, 어머니의 일생은 거룩하고 훌륭하셨다.

나는 가끔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뼈와 살을 녹여 발효시켜서 기막힌 묘미를 내는 사람이 될 수 없을까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아름다운 헌신이고, 깨달음의 경지이며, 사랑의 실천이 아닐 수 없다. 사랑은 입안에 녹아 사라지는 사탕맛이 아니고, 뼛속에 남아 있어서 입맛을 되살려 주는 젖갈맛이 아닌가 한다.

식사 자리에 어느새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것처럼 김치맛도 사라져 버렸다. 어디 가서 입안에 짜릿하게 남아 있는 그 감칠맛을 느낄 수 있을까. 한국의 자연과 어머니의 사랑이 녹아 발효가 된 우리 고유의 참맛을 어떻게 되살려 놓을 순 없을까. 아이들은 차츰 김치냄새를 싫어하고 서양음식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어머니의 김치맛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지만, 알게 모르게 민족 고유의 문화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걸 말해 준다.

나라를 잃고 말, 글, 이름조차 빼앗겼던 때가 있었지만 간장, 된장, 고추장, 김치 등 음식 문화만은 뼈 속에 녹아 있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우리 문화와 기질을 지켜 낸 게 음식 문화였다. 가족들의 식사시간이 즐거워야 행복한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식탁이 텅 빈 것처럼 맛의 공백과 허전함을 느낀다.

어머니의 김치맛과 사랑의 손맛이 그립기만 하다.

<어머니의 김치맛> 전문




사람마다 자신의 고향을 사랑하지 않는 이가 있으랴. 하지만 작가의 고향은 작품을 통하여 영혼과 정서와 아름다움을 지니게 되고 작가와 일체가 된다. 어쩌면 작가가 명작을 써보겠다는 욕구도 고향을 빛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닌지 모를 일이다.

출처; http://kr.blog.yahoo.com/kubell/7716
posted by bluew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