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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9. 22:48 연예와 문화

COFFEE 아라비카로부스타아라부스타
* 음식 아이콘을 클릭하면 해당 음식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커피 한잔은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커피는 대중적인 음료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이 2000개가 넘어섰을 정도로 커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커피 시장 또한 경쟁이 치열하다.


처음 발견 당시 사람들은 야생의 커피 열매를 그대로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맛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물을 넣어 마셨고, 이후 약처럼 달여먹기도 하면서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콩에 따라 그 맛과 향이 다른 커피는 커피나무에서 1년에 한차례씩 수확되며 다양한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검붉은 색의 시큼하고 쌉싸래한 열매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음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커피의 정의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기호 식품이자 음료 커피.
“커피가 위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모든 것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념들은 위대한 군대처럼 전쟁터 앞으로 나가고 싸움이 벌어진다.” 프랑스의 문학가 발자크가 남긴 커피 예찬. 그는 하루에 5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신 것으로 유명하다.

커피는 영어로 ‘coffee’, 식물학적으로는 ‘coffea’로 불린다. 커피나무에서 생산된 생두(生豆)를 일정 시간 동안 볶은 뒤 곱게 분쇄하고 물을 이용하여 그 성분을 추출해 낸 음료이다. 에티오피아의 ‘caffa(힘)’에 어원을 두고 있는 커피는 커피나무가 야생하고 있는 지역인 아랍어에서 유래되었다. ‘caffa’는 희랍어인 ‘keweh’, 아라비아에서는 ‘gahwa’, 터키의 ‘kahve', 유럽에서는 ‘café’로 불렸으며 영국에서는 ’아라비아 와인‘으로 불리다 1650년경 커피 애호가였던 헨리 블런트경이 커피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현재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각국의 커피 명칭

미국,영국/coffee

프랑스/ café

독일/kaffee

이탈리아/caffé

네덜란드/koffie

노르웨이/kaffe

아이슬란드/kaffi

세르비아/kafa

핀란드/kahvi

터키/kahve

커피의 유래

수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커피의 유래를 둘러싸고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확실한 기록이나 문헌상의 증거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이야기로만 전해지고 있다. 커피에 대한 기원은 크게 아래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

1) 칼디의 설

칼디의 설에 따르면 붉은 커피 열매를 먹고 흥분한 염소떼에 의해 커피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커피의 기원과 관련한 설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윌리엄 유커스(William Ukers)의 [커피의 모든 것(All About Coffee)]에 나오는 내용이다. 에티오피아의 양치기 소년인 칼디(kaldi)는 어느 날 자신이 기르는 염소들이 흥분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았고, 그 이후 염소들의 행동을 주시했다. 며칠간 유심히 염소들을 관찰한 칼디는 염소들이 들판에 있는 어떤 나무의 빨간 열매를 먹고나면 흥분을 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열매의 맛과 성분이 궁금해진 자신도 열매를 먹어보았고, 열매를 먹고 난 뒤 피로감이 사라지면서 신경이 곤두서는 듯한 황홀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곧장 인근의 이슬람 사원에 있는 사제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고, 빨간 열매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한 사제들에 의해 이후 여러 사원으로 퍼지게 되었다.

2) 오마르의 발견설

처음 커피 열매는 잠을 쫓아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덜어주는 약에 가까웠다.


1258년 아라비아의 사제였던 ‘셰이크 오마르(Sheik Omar)’는 어느 날 잘못을 저질러 산으로 추방되었는데 며칠 길을 헤매다 너무 배가 고팠던 나머지 새가 쪼아 먹고 있던 빨간 열매를 먹게 된다.

열매를 먹은 오마르는 활력을 되찾았고 이 열매가 가진 효능을 알게 되었다. 이후 이 열매를 많은 사람들의 치료에 사용하였고 성자로서 높은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3) 에티오피아 기원설

다른 지역에서 커피를 액체 형태로 추출하여 약으로 사용하였던 것과 달리 에티오피아 지역에서는 커피나무의 열매를 다른 곡류와 함께 분쇄하여 식량으로 취급하였다. 이렇게 취급된 커피 콩은 점차 아라비아의 여러 지역으로 뻗어나갔고, 11세기 초 아라비아의 ‘라제스(A. B. Lazes)와 아비세나(Avicenna,이븐 시나)를 대표로 한 의사들이 커피가 ‘위장의 수축을 부드럽게 하며 각성효과가 있다’라고 발표하면서부터 약이 아닌 기호 음료로 변신을 꾀하게 되었다.

커피의 전파

커피의 전파 경로

에티오피아 → 예멘 → 터키 → 유럽 → 인도 → 이태리 → 네덜란드 → 실론→

인도네시아 → 영국 → 프랑스 → 마르티니크 → 기아나 → 콜롬비아 → 브라질

앞서 언급하였듯이 커피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나 문헌이 남아있지 않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6세기쯤 아비시니아(Abyssinia, 지금의 에티오피아)가 아라비아의 남부 지방(지금의 예멘) 지역을 공격하면서 커피 또한 자연스럽게 옮겨가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이슬람 세력의 확장으로 인해 터키에서 많은 수도승들이 즐기는 음료로 활용되었다. 이는 커피가 가진 각성효과로 인해 밤새 기도를 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했던 수도승들에게 몹시 유용한 음료였기 때문으로 풀이 된다. 그들은 커피를 마심으로써 삶의 활력을 찾고 각종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십자군 원정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커피는 유럽인들의 삶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이전까지 이슬람 이교도의 음료라는 이유로 종교 교리에 따라 억압되던 커피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예술의 대상으로 여겨질 만큼 관대해지게 되었고,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으로 그 인기가 확산되기에 이른다. 결정적으로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에 세례를 내림으로써 이후 유럽 곳곳에 커피하우스가 생겨나게 되었다.

1683년 문을 연 이래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 이곳은 괴테, 카사노바, 바그너, 릴케, 니체 등 유수한 명사들의 발길이 닿은 곳이자, 지식인들의 담론의 장으로 유명했다. <출처:Wikipedia>

17세기 영국의 커피하우스의 모습을 묘사한 목판화 <출처:Wikipedia>

14세기경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지금의 터키)은 커피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도록 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517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셀림 1세(Selim I)는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지금의 이스탄불)에 커피를 소개하고, 전문 커피 하우스를 만들어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기호 음료로서 즐기게 되었다. 당시 터키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하루의 커피 할당량을 준비하지 못하면 여성들이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었을 정도라고 하니, 이슬람 문화권에서의 커피 사랑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화려한 터번을 두른 터키의 여인이 커피를 즐기고 있는 그림 <출처:Wikipedia>

콘스탄티노플의 커피하우스 모습. 화려한 실내장식이 인상적이다. <출처:Wikipedia>

한국으로의 전파

한국에서의 커피는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서 고종황제가 처음 마셨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일반인들은 1902년 러시아 공사 웨베르(Karl. Waeber)의 처남의 처형인 손탁(Sontag)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1884년부터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알렌(Allen)의 저서에는 ‘궁중에서 어의로서 시종들로부터 홍차와 커피를 대접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선교사 아펜젤러(Heny G. Appenzeller)의 선교단 보고서에는 1888년 인천에 위치한 대불 호텔을 통해 커피가 일반인들에게 판매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1884년 미국의 천문학자 로웰(Lowell)은 그의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Morning Calm)]에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기록을 남겼으며, 유길준의 [서유견문(西遊見聞,1895년 간행)]에서도 커피가 중국을 통해 조선에 소개되었다고 했다.이는 고종이 커피를 마시기 수년 전부터 대중들도 이미 커피를 접하고 마셨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미국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퍼시벌 로웰(Percival Lawrence Lowell)은 1883년 약 3개월 동안 조선에 체류하면서 당시 조선의 정치, 사회, 문화를 기록한 책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출판하였는데 당시 고종황제에 관한 기록과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서술되어 있다.

커피를 즐겨 마신 것으로 알려진 고종황제와 고종황제가 사용한 커피 스푼.

당시에는 커피를 가배차(珂琲茶) • 가비차(加比茶) 또는 양탕(洋湯)이라고 불렀다.

많은 매체에서 한국 최초의 커피로 1923년 명동의 후타미(二見) 다방을 꼽지만, 실제 구한(舊韓)말의 역사 자료에는 1913년 남대문역에서 문을 연 ‘남대문역 다방’을 발견할 수 있다. 1915년 조선 총독부 철도국에서 발행한 ‘조선 철도여행 안내’ 책자에는 '남대문역 기사텐(다방·喫茶店) 내부' 라는 글과 함께 이곳의 사진이 실려 있다. 또한 철도 박물관 문서 자료에는 ‘마츠이 카이치로(松井嘉一郞)라는 일본인 청년이 경성의 잡화점이었던 무라타(村田)를 인수, 조선 총독부 철도국 남대문역 기사텐 및 식당차용 물품을 납입하였다’라는 기록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던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한잔의 커피가 만들어 지는 과정

커피는 보통 10m 정도까지 자라지만 대부분의 커피 농장에서는 재배 및 수확의 용이성을 위해 3m 정도로만 재배한다. 커피나무에서 사용되는 부분은 오로지 커피 열매 뿐이며 대부분의 커피열매에는 두 쪽의 콩이 들어 있다. 이렇게 수확한 콩을 건조시키면 ‘원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며 세계 각국으로 수출이 된다.

커피 열매를 수확하는 방법은 건식(Unwashed)과 습식(Washed)법이 있다. 건식법은 커피나무에서 열매가 검은색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확하는 방법으로, 잘 익은 열매들을 외피와 내피로 떼어낸 뒤 20일 정도 햇볕에서 말려내는 것이다. 이 방식은 이물질이 섞일 확률이 높긴 하지만 커피 본래의 맛과 향이 풍부한 제품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브라질 생산 커피와 에티오피아의 ‘하라 커피’가 대표적이다.


습식법은 익은 열매를 손으로 딴 뒤 물에 담가 이물질을 선별해 내는 방법이다. 보통 물에 가라앉은 열매를 기계에서 껍질을 벗겨내는데, 3~4일 정도 물에 담가서 발효를 시키며 이 과정을 통해 끈적거리는 점액을 제거할 수 있다. 발효가 끝난 원두는 보통 50% 정도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는데 2~3주 정도 건조과정을 거치며 15% 내외로 낮추어야 한다. 습식법은 각 단계별로 열매를 엄선하기 때문에 이물질을 찾아보기 힘든 반면 건식법에 비해 태양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져 원두의 품질이 낮아지기 쉽다. 보통 볶아낸 원두의 가운데 선이 짙은 갈색이면 건식, 흰색이면 습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렇게 선별된 원두를 곱게 갈아서 고온의 물에 추출해서 먹으면 한잔의 커피가 완성된다.

참고문헌: 김경옥, [커피와 차], (교문사, 2005); 문준웅, [Perfect Espresso], (아이비라인, 2008); 박상희, [커피홀릭‘s 노트], (예담, 2008); 박종만, [커피기행], (효형출판,2007); 유대준, [Coffee Inside] , (해밀, 2009);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1. 하라(Harrar)커피

    에티오피아를 대표하는 최상급 커피로 해발 3,000m 이상의 고원지대에서 10~3월경 건식법을 이용해 수확된다. 신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풍부한 향을 자랑한다.

글·사진 김한송 / 요리사
요리팀 '7Star chef' 소속이며 다양한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하는 요리사다. 요리관련 다양한 글과 강의를 진행 중에 있으며 '셰프의 노트를 훔치다', '아주 특별한 저녁식사' 등을 출간하였다.

발행일 201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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