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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18. 22:00 연예와 문화

신들의 황혼

중세문학 [니벨룽엔의 노래]를 토대로 한 [니벨룽의 반지]는 [신들의 황혼]에 가서야 핵심 줄거리를 드러냅니다. [라인의 황금]과 [발퀴레]는 영웅 지크프리트의 조상 이야기, [지크프리트]는 주인공 지크프리트의 성장기였다면, [신들의 황혼]은 사기와 배신으로 인물들의 관계가 얽히고 꼬이면서 결국 신들의 세계를 구하는 사명을 완수 못하고 죽는 지크프리트의 비극을 보여줍니다. [니벨룽의 반지] 가운데 내용이 가장 다채롭고 긴장감 넘치는 부분이며, 음악적인 면에서도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의 주요 모티프를 선별해 모아놓았기 때문에 각별히 풍요로운 작품이지요. 3막으로 구성된 [발퀴레], [지크프리트]와는 달리 [신들의 황혼]에는 1막이 시작되기 전의 ‘서막’이 붙어 있습니다. 제목을 보통 ‘신들의 황혼’으로 번역하지만, 의미상으로는 ‘신들의 멸망’을 뜻한답니다.

no아티스트/연주
1지크프리트의 라인 기행 Siegfrieds Rheinfahrt / 마렉 야노프스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듣기
2지크프리트의 장송행진곡 Trauermarsch / 마렉 야노프스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듣기
3브륀힐데의 희생 - 집으로 날아가라, 까마귀들아! Fliegt heim, ihr Raben! / 재닌 알트마이어듣기

7월 24일까지 전곡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처음 [신들의 황혼]을 구상했던 1848년, 바그너는 서른다섯 살이었지만, 1876년에 개최된 제 1회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위해 오케스트라 총보를 완성했을 때는 벌써 63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9세기부터 11세기 사이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바이킹 시대의 북구 고대신화를 바탕으로 12-13세기에 바이에른의 민중시인이 정리했다는 대서사시를 첨가하고 게르만족의 지크프리트 전설도 소재로 빌려왔지만, 결국 바그너가 만들어낸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이야기였습니다. ‘초인적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을 통해서만 인습에 물든 전통사회가 몰락하고 새 시대가 도래한다’는 혁명적 사상을 [신들의 황혼]에 담아낸 것이었지요. 지크프리트와 브륀힐데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지만, 신들이 사라진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존재가 됩니다.

신들의 멸망과 새로운 시대의 출발

[신들의 황혼]은 상당히 긴 서막으로 시작됩니다. 대지의 여신 에르다의 딸인 운명의 여신 노른(Norn) 셋이 모여 앉아 운명의 실을 꼬고 있는데, 다들 신들의 세계에 닥칠 어두운 미래를 예견합니다. 그들이 꼬던 실은 엉켜서 끊어져버리고, 노른들은 자신들의 지혜도 이젠 끝장이라고 말하죠.

한편 불속에서 브륀힐데를 깨운 지크프리트는 용사의 새로운 임무를 향해 길을 떠나야겠다고 합니다. 브륀힐데는 애마 그라네를, 지크프리트는 절대권력의 반지를 상대방에게 줍니다. 그라네를 타고 떠나는 지크프리트의 여정은 관현악곡인 ‘지크프리트의 라인 기행’에 멋지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1막은 군터와 하겐이 살고 있는 기비흉 족의 성입니다. 알베리히의 아들 하겐은 아버지가 다른 자신의 형 군터왕에게 브륀힐데와의 결혼을 권합니다. 그리고 군터의 여동생인 구트루네에게는 용사 지크프리트를 추천합니다. 지크프리트가 도착하자 구트루네는 과거의 모든 사랑을 잊게 하는 마법의 약을 음료수에 타서 지크프리트에게 줍니다. 그러자 지크프리트는 브륀힐데와의 사랑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구트루네에게 빠져듭니다. 하겐은 ‘여기 앉아 망을 보며Hier sitz' ich zur Wacht’라는 유명한 독백을 노래하며, 지크프리트가 브륀힐데에게서 가져올 알베리히의 반지를 기다립니다. 아버지 알베리히가 보탄 신에게 강제로 빼앗긴 절대권력의 반지를 되찾으려는 것이죠. 지크프리트는 군터로 변장하고 브륀힐데 앞에 나타나 반지를 강제로 빼앗고 그녀를 제압합니다.


애마 그라네를 타고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브륀힐데.

2막에서는 하겐의 꿈에 아버지 알베리히가 나타나 어서 반지를 되찾으라고 독려합니다. 이때 살인의 모티프와 저주의 모티프가 반지 모티프에 섞여 들려옵니다. 하겐은 신하들을 한자리에 모아 합동결혼식을 준비합니다. 군터와 브륀힐데, 그리고 지크프리트와 구트루네의 결혼식이죠. 그러나 이곳에 억지로 끌려와 지크프리트의 모습을 본 브륀힐데는 분노와 절망에 빠집니다. 너군다나 자기가 빼앗긴 반지가 지크프리트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을 폭력으로 납치한 것이 바로 지크프리트였다는 사실에 경악합니다. 그가 구트루네를 사랑하게 되어 자신을 배신했다고 믿은 거죠.

복수심에 불타는 브륀힐데는 모인 사람들 앞에서, 지크프리트가 군터에게 자신을 넘겨주기 전에 자기를 겁탈했다고 말합니다. 군중은 술렁이고, 군터는 치욕감을 느끼지만 지크프리트는 자신은 결코 군터와 맺은 의형제의 결의를 깨지 않았고 신의를 지켰다고 주장합니다. 브륀힐데와 지크프리트는 각각 하겐의 창에 대고 자신의 진실과 결백을 외칩니다.

하겐은 브륀힐데에게 자신이 지크프리트에게 복수해주겠다고 유혹합니다. 사랑이 증오로 변해버린 탓에 브륀힐데는 하겐에게 지크프리트의 약점을 가르쳐주지요. 지크프리트는 전투에서 결코 적에게 등을 보이고 달아나는 일이 없는 용사이기 때문에, 브륀힐데가 그의 등은 마법으로 축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편 지크프리트와의 사기극이 밝혀져 백성들 앞에서 굴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군터 왕은 하겐의 꼬임에 넘어가 결국 지크프리트를 사냥터에서 죽이기로 합니다.


하겐은 지크프리트의 술잔에 다시 옛 기억을 되찾을 수 있는 약초즙을 넣고, 기억을 되찾은 지크프리트가 용 파프너와 노퉁과 브륀힐데에 대해 모든 것을 털어놓은 뒤 등 뒤에서 지크프리트를 창으로 찌릅니다. 기억상실증에서 깨어난 지크프리트는 죽어가면서 ‘브륀힐데, 신성한 신부여’라고 노래합니다. 그의 시신은 유명한 ‘지크프리트 장송행진곡’에 맞춰 기비흉의 성으로 옮겨집니다.

성에 돌아온 하겐은 반지를 두고 다투다가 군터 왕까지 죽여 버립니다. 결국 모든 것이 반지를 차지하려는 하겐의 음모였음을 알게 된 브륀힐데는 사람들에게 지크프리트를 화장할 단을 쌓으라고 명령합니다. 브륀힐데는 횃불로 화장단 장작에 불을 붙이고는 반지를 라인강에 던집니다. 라인처녀들은 그 반지를 받아들고, 하겐은 열심히 처녀들의 뒤를 쫓지만 그 반지를 얻지는 못합니다. 브륀힐데는 애마 그라네에 올라타고 지크프리트와 영원히 결합하기 위해 그를 화장하는 불 속에 뛰어듭니다. 지상의 성을 태운 이 불길은 신들의 궁전인 발할까지 번져 신들의 세계를 멸망시킵니다.


반지를 되찾은 라인의 처녀들.

현대에도 설득력을 갖는 반지의 신화


원래 ‘반지’란 긍정적인 상징물이죠. 사랑, 우정, 신의, 소중한 약속을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반지는 저주의 반지여서,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과 배신과 살인을 이끌어 냅니다. 반지를 소유하는 사람은 세계를 다스릴 수 있지만, 결코 사랑을 할 수 없도록 운명 지어져 있기 때문이죠. 강력한 기술 발전과 산업화의 힘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시 따위를 아득히 밀어내 버린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것이 이 반지입니다. 이 신화적인 이야기가 현대에도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여주인공 브륀힐데가 신격을 박탈당했다는 데 있습니다. 발퀴레들은 보탄과 대지의 여신 에르다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인간이 아닌 신이죠. 하지만 보탄의 명을 거역한 벌로 브륀힐데는 신성을 빼앗겼고,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지크프리트와 연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발퀴레가 아닌 브륀힐데는 고귀한 도덕성을 포기하고 평범한 세상 여인들처럼 연인의 배신을 맹비난할 뿐 아니라, 자기를 버린 남자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다가 결국 그를 하겐의 손에 죽게 만들죠.


그러나 이 이야기는 또한 신의 보호를 벗어난 인간의 자율성을 보여줍니다. 신화의 질서가 지배하는 세계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났고, 세상은 인간의 의지에 따라 변화해갑니다. 지크프리트 역시 보탄의 피를 이어받은 신의 손자인데도, 하찮은 사랑의 묘약 때문에 굳건한 맹세를 깡그리 잊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되고, 그런 실수를 만회하지 못한 채 죽음에 이릅니다. 하겐 역시 악인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신들을 저주하며 인간의 자율성을 획득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고 용기 있는 주인공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바그너는 결말에 가서 불을 정화의 수단으로 삼아, 자유를 획득한 인간이 이런 오류를 통해 파멸하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은 불로 정화되어 새롭게 태어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합니다. [니벨룽의 반지] 전 편을 감상하기 위한 17시간이 너무 길다고 화를 낼 수는 없겠죠? 작곡가가 27년 동안 구상하고 손질한 작품이니까요.

추천 음반 및 영상물 (지크프리트-브륀힐데-군터-구트루네-하겐 순)


[음반] 볼프강 빈트가센, 비르기트 닐슨,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클레어 왓슨, 고틀로프 프리크 등, 게오르그 숄티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1964년 녹음. Decca

[음반] 헬게 브릴리오트, 헬가 데르네쉬, 토머스 스튜어트, 군둘라 야노비츠, 칼 리더부쉬 등,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70년 녹음. DG

[DVD] 만프레트 융, 기네스 존스, 프란츠 마추라, 지닌 알트마이어, 프리츠 휘프너 등, 피에르 불레즈 지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파트리스 셰로 연출, 1980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실황. DG

[DVD] 알베르트 보네마, 루아나 드볼, 헤르난 이투랄데, 에파 마리아 베스트브뢰크, 롤란트 브라흐트 등, 로타 자그로셰크 지휘, 슈투트가르트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페터 콘비츠니 연출, 2002년 슈투트가르트 국립오페라 실황. T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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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이미지 TOPIC / corbis

음원 제공 소니 뮤직

[출처: 네이버캐스트]

posted by bluew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