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나의 스승, 성철
연출 : 문진명 PD, 글, 구성 : 정순애 작가
“스님 입고 계신 옷이 저희가 보기에는 상당히 남루하고 누더기입니다만
몇 년이나 입으셨습니까?“
“삼십년 입었어. 이 옷이 두 갠데 번갈아 가며 입어.
삼십년 입었어. 거의 사십년 됐어.“
“스님 누더기를 입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나 제일 못났기 때문에 좋은 옷 입을 자격이 없어.
아무 자격이 없는데 좋은 옷 입을 수 있나“
- 1981년 성철스님을 찾아온 어느 기자와의 대화
2012년은 성철스님이 이 땅에 오신지 100년이 되는 해.
우리에게 낡은 두루마기로 익숙한 성철스님.
성철스님은 1912년 일제시대에 태어나 6.25를 거쳐서 1993년에 열반에 드셨다.
한국불교, 그 격동의 역사를 온 몸으로 고스란히 겪으면서 살아오신 것.
<KBS 스페셜>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성철스님 제자 7인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성철스님의 철저한 수행과 청빈한 삶을 재조명하고
우리 시대 큰스님의 가르침을 생각해보는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1. 제자스님들의 시봉일기 - 가야산 호랑이, 성철스님
<해인사 백련암의 일주문을 걸어내려오는 원택스님(성철스님 제자)과 그의 제자들 모습이 성철스님과 제자들의 당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봉암사 극락전 앞에서 성철스님을 떠올리는 원택스님과 원타스님>
“(누더기가 되도록 한 가지 옷만 입으신 건)
낭비하지 말란 뜻도 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수준을 넘어서 완전히 체득하라는 뜻, 공부하는데 목숨을 바치라는 뜻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나마 깨닫습니다.”
- 제자 만수스님
“힘들고 게으름 피우고 싶을 때 스님 생각이 많이 납니다.”
- 제자 원당스님
“시주는 독화살이다. 신도들의 시주는 무서운 줄 알고 절약해야 한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 제자 원택스님
“이 도둑놈아 밥 값 내놔라”
정진 중인 스님이 잠깐이라도 졸음에 빠질라치면 성철스님의 쩌렁쩌렁한 고함소리와 함께
등줄기에 사정없이 장군준비가 날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가야산 호랑이.
1967년 이후 가야산 해인사를 지켜오면서 공부하는 대중스님들을 늘 긴장시켰던,
그 엄격함 덕분에 얻은 이름이다.
철저한 수행승의 모습과 청빈한 생활,
독보적인 사상과 선풍으로 불교계의 새로운 지평은 연 성철스님.
성철스님의 제자들은 그 시절 가야산 호랑이의 그 호통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
2. 부처님 법대로 살기 - 엄격한 수행과 청빈한 삶의 모습
속인 신분으로 깨우침을 얻었던 성철스님.
8년 동안 앉은 자세로 잠자지 않는 수행, 장좌불와와
성전암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10년간의 동구불출은
아직도 제자스님들 사이에서 신화로 내려온다.
청빈한 삶을 사셨던 성철스님.
크리넥스 한 장도 네 조각내어 썼던 성철스님.
손수 기웠던 양말과 낡은 누더기 옷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부처님 법대로 살기를 강조했던 성철스님.
성철스님은 한국불교 바로 세우기와 스님들의 일상생활개혁, 선불교의 전통을 확립했다.
스님들이 공동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일일부작 일일불식’,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것.
당시 스님들은 새벽에 일어나 ‘예불하고, 공부하고, 일하고’를 반복하면서
한국불교의 전통을 바로 세웠고, 조계종 탄생의 기초를 마련했다.
3.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한국불교의 만남 - 김룡사 대중법회와 해인사 백일법문
<성철스님과 대중들의 기념사진. 김룡사에서 첫 설법을 하시고 남긴 기념사진이다.>
<해인사 장경각에는 당시 성철스님께서 보시던 과학서적들이 고스란히 보존되고 있다.>
성전암에서의 동구불출 10년을 끝낸 성철스님은
대구 김룡사에서 대중을 대상으로 첫 설법을 하신다.
선과 악, 있음과 없음, 괴로움과 즐거움 등 서로 상반되는 양변이 자신을 버리고
서로 융합할 때 불생불명에 이른다는 중도이론.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제시한 ‘에너지가 질량이고, 질량이 에너지’라는
등가원리.
이 두 가지를 접목해서 “유형의 질량과 무형인 에너지가 전환한다는 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불생불멸의 원리”라고 정리하셨다.
그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그 체계성을 따라갈 법문이 없다.
중도사상과 현대과학을 접목한 성철스님의 법문은 해인사의 백일법문으로 이어졌고, 한국 불교는 새로운 역사를 맞게 됐다.
4. 성철스님, 세상과 만나다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1981년 성철스님은 조계종 종정에 추대됐지만 취임식에 나가지 않았다.
‘수행승으로 산중을 지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종정으로 지켜야 할 확실한 의무’ 라는
말씀과 함께.
종정수락법문을 대신 보냈는데, 바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개인의 잣대로 대상을 왜곡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이 법문은 성철스님이
세상에 보낸 가르침이었다.
5. 큰 스님의 열반 그리고 더 큰 가르침
<한 달에 한 번 삼천배를 위해 백련암을 찾아오는 ‘영원한 자유’팀>
<‘영원한 자유’ 팀의 모녀. 엄마 따라 삼천배하러 오는 11살 이서현 양>
“참선 잘 하그레이”
1993년 참선 잘 하라는 말씀만 남기고 성철스님은 열반에 드셨다.
그리고 19년, 성철스님의 가르침은 우리 사회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
특히 열반 전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셨던 해인사 백련암에는 스님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있다. 스님의 평소 말씀대로 단청을 칠하지 않은 건물은 물론 스님이 보셨던 책들이 고스란히 보관된 장경각, 포행길 그리고 3천배의 전통.
백련암에선 매주 토요일 3천배를 하는 신도들의 발길이 계속되고 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성철스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것.
어쩌면 그들은 또 다른 성철이 아닐까.
-성철스님 연보-
1912년 출생
1936년 해인사에서 출가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 추대
1981년 조계종 제 6대 종정 취임
1991년 조계종 제 7대 종정 추대
1993년 입적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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