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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19. 07:18 Bluewave사랑방

부처님오신날의 유래와 세시풍습

불기 2554(2010)년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부처님인 누구인가? 그리고 의미와 유래및 세시풍습에 대하여 알아 본다.


부처님은 누구인가


부처님이라는 말은 붇다(Buddha) 곧 '깨달은 사람(覺者)'을 뜻한다.
또, '석가족의 성자'라는 의미의 샤카무니 (Sakyamuni)는 산스크리트어이고, 한역으로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라고 하며, 석가 또는 석존(釋尊), 불타(佛陀), 붓다등으로 약칭하기도 한다.

부처님은 지금으로부터 2600여년전 중인도 카필라국 성주 정반왕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출생하면서 바로 사방으로 7보씩 걸으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외쳤다 한다. 탄생한 지 7일만에 어머니 마야를 잃고 이모인 마하파사파제에게 양육되었다.


어릴때 이름은 고타마 싯달타이었고 점점 자라면서 과학 문학의 대요(大要)와 4베다를 배우며, 무예도 연마하여 숙달하였다. 선각왕의 딸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았으며, 29세에 왕성의 4문으로 다니면서 노인, 병든 이, 죽은 이, 수행승을 보고 출가할 뜻을 내어 하루밤에 왕성을 넘어서 동방의 람마성(濫魔城) 밖 숲속에서 속복을 벗어 버리고 출가하였다.

남방으로 비야리, 마갈타를 지나다니면서 발가바와 아람가람, 울다라 등의 선인을 만나 6년 동안 고행을 한 끝에 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불타가야의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크게 깨달아 불타(佛陀)가 되었다. 그 때 나이는 35세였다.


이로부터 스스로 깨달은 교법을 널리 퍼뜨리려고 먼저 녹야원에 가서 아약교진여 등 5인을 교화하고 다음에 3가섭, 사리불, 목건련 등을 제도하여 교단을 조직하였다. 깨달은 뒤 3년(혹은 6년)에 가비라 벌솔도에 돌아가서 부왕을 뵙고 친척들을 교화시켰다. 한편 여러 나라로 다니면서 빈비사라, 아사세, 파사익왕을 교화하여 불교에 귀의시키고 북방의 쿠시나가라성 밖 발제하(跋提河) 언덕 사라쌍수 아래에 누워 최후의 교계(敎誡)를 하시어, 45년 동안의 전법생활을 마치고 밤중에 열반에 드셨다. 그 때가 세수 80세였다.

부처님 오신날의 의미
석가모니 부처님은 룸비니 동산의 무우수 나무 아래서 탄생하셨다.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걸음을 걷고 난 뒤, 두 손으로 하늘과 땅을 가리키면서 사자후를 외쳤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모든 생명 존귀하다.
세계의 고통 받는 중생들을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이 외침은 장차 고통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선언, 즉 고통의 바다에서 헤매고 있는 눈먼 중생들을 위하여 걸림 없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방법을 제시하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부처님의 이러한 선언은 태자의 신분을 버리고 6년간의 고행 끝에 부다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다섯 비구를 상대로 법을 설함으로서 시작하였고, 이후 45년 동안 인도 전역을 다니면서 중생들을 올바른 삶의 방향으로 인도하셨다.

부처라는 말은 산스크리트 어 '붓다'(Buddha)를 따서 만들었으며, 깨달은 사람을 뜻한다. 깨달음이란 단순한 개념이나 관념이 아니며, 부처님이 체험을 통하여 증득한 것이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신 그 가르침 또한 배워서 알아야 하는 지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그 가르침을 믿고, 그에 따라 실천 수행해야 한다. 깊고 참된 진리를 깨달은 이는 마침내 생사의 괴로움이 완전히 없어진, 불교 최고의 이상인 열반(涅槃)을 성취한다.

부처님은 모든 이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고통 속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 사바세계로 내려 오셨다. 그 분이 나신 곳은 호화찬란한 궁궐이 아니라 길가의 동산 위다.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다 가신 우리 스승의 탄생은 그 자체가 중생에 대한 끝없는 연민과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2천만 불자들은 부처님의 탄생을 경배하는 것은 물론 "참 나"를 찾겠다는 분발심을 내고 부처님의 중생구제 원력을 세워 실천하도록 해야 하겠다. 중생의 병의 종류에 맞춰 약을 주셨던 부처님과 같이 우리 불자들은 이 시대의 중생의 고통에 맞게 처방을 해 주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빈부격차와 정신적 혼돈, 그리고 분단이라는 굴레 속에서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종교적 갈등과 이념의 대립으로 고귀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 또한 우리 불자가 이 시대에 처방해야 할 과제들인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의 유래

이 날은 석가모니의 탄생일이라 하여 불탄일(佛誕日) 또는 욕불일(浴佛日)이라고도 하나, 민간 에서는 흔히 초파일이라고 한다. 석가의 탄생일이기 때문에 원래는 불가(佛家)에서 하던 축의행사 (祝儀行事)였으나 불교가 민중 속에 전파됨에 따라서 불교 의식도 차츰 민속화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신라는 여러가지 불교 행사가 성했는데, 무열왕과 김유신 장군이 불교를 호국(護國)의 바탕으로 참여시키는 정책을 유지하면서 불교행사는 이전부터 전해오던 세시행사와 더불어 자연스 럽게 병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라의 팔관회(八關會)는 불교행사가 신라의 세시풍속으로 승화된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월 초파일은 불도의 행사가 신라의 호국불교로 승화된 이래 후삼국을 거쳐서 고려조에 이르는 동안 우리의 민속과 동화되었던 것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백제와 고구려 본기에는 불도의 행사가 세시의 행사로 거행되었다는 기록은 없으나 신라본기에서는 석가모니 탄생일을 팔관회로 거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고려사 (高麗史)》에 따르면, 왕성(王城)에서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정월 대보름에는 14일, 15일 이틀간 을 저녁에는 연등(燃燈)을 하던 풍속이 있었으나 최이(崔怡)가 4월 8일로 옮겨서 하게 하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사월 초파일은, 불교의 축의행사로 전래되었다가 민간의 세시풍속과 자연스럽게 동화되면서, 신라의 팔관회, 고려의 연등회 등을 거치면서 완전히 정착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 오신날의 세시풍습

▷호기 놀이
초파일이 가까워지면 민가에서는 집집마다 등을 달기 위한 장대인 ‘등간(燈竿)’을 세우는데, 그 끝에 꿩 깃을 끼워 장식하고 물들인 비단으로 깃발을 만들어 매단다. 이것을 호기(呼旗)라고 하며 기에 줄을 매고 가족의 수대로 등을 단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 등간을 만들지 못하는 집에서는 나뭇가지나 추녀 끝에 빨래 줄처럼 줄을 매고 등을 매달아 두기도 했다.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호기놀이는 아이들이 등 만들 재료비를 구하기 위하여 수주일 전부터 종이를 잘라 등간에 매달고 집집마다 누비고 다니면서 쌀이나 베를 얻는 풍속이었다.

▷연등 놀이
초파일 행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제등행렬. 제등 행사는 신라 때부터 풍년과 국가발전을 기원하던 예술제 성격의 연등회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연등 놀이를 하는 초파일 저녁을 등석(燈夕)이라고 하는데, 이 날은 야간의 통행을 허락하며 서울 장안의 사람들은 산기슭에 올라가 달아놓은 등을 구경하거나 제등행렬을 하면서 밤새도록 즐겼다. 또 등간에 매달린 등 줄 사이에 숯과 사기 파편을 넣은 주머니를 매달고 불을 붙여 터뜨리며 불꽃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회전등, 주마등이라고 해서 등 안쪽에 호랑이, 사슴, 노루 등의 모양으로 자른 종이를 끼워 넣어 등 안에서 회전하게 함으로써 그림자를 감상하기도 했다. 초파일 등은 각종 기록이나 민요 등을 통해 볼 때 그 종류가 40여종이나 된다.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기 위한 석류등 수박등 마늘등을,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위한 거북등 학등 등을 달았다.

▷탑돌이
탑돌이는 부처님오신날이나 큰 법회, 재식 등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거나 영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스님이 앞서 탑을 돌면 불자들이 그 뒤를 따라 도는데 이때 등을 밝혀 들고 따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불도 놀이
조선시대 서산 대사가 만든 성불도 놀이는 사찰이나 가정에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전통놀이이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주사위를 던져 나타난 글자에 따라 도판 위의 불패를 옮겨가는 이 놀이는 먼저 성불한 사람에게 다함께 삼배를 올린 후 설법을 듣고, 먼저 성불한 사람은 그 판의 가장 늦은 사람의 편이 되어 함께 진행한다.

▷만석승 놀이
그림자극인 만석승(曼碩僧) 놀이는 초파일을 전후하여 절이나 근처 마을에서 행해졌다. 광목천으로 막을 치고 막 뒤에서 범종 소리에 맞추어 제등행렬이 지나가고, 분장한 십장생이 하나씩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어 용과 잉어가 나타나 여의주를 놓고 서로 차지하고자 다툴 때, 한 스님이 나타나 ‘운심게작법’이라는 춤을 춘다. 어항 속의 물고기가 노니는 것처럼 삶이란 좁고도 무상하다는 뜻을 지닌 바라춤이다. 결국 용, 잉어도 사라지고 스님의 바라춤 속에 깨달음을 얻게 되며 막이 내린다.

▷물장구 놀이
수부(水缶)라고도 하는 물장구 놀이는 아이들이 등간 아래에서 물동이에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 띄워 놓고 돌아가며 빗자루로 두드리며 즐기는 놀이다. 이때 느티나무 잎으로 만든 느릅떡과 볶은 콩, 삶은 미나리 등을 먹었다고 한다. 또 철쭉꽃 그늘 밑에 앉아서 꽃잎 한두 잎을 따서 준비해온 쌀가루와 섞어 전을 부친 화전을 먹기도 하고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기도 했다.

[출처: 현대불교미디어센터]

posted by bluew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