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남아있는 조선황실의 흔적
조선 마지막 황태자가 살았던 저택 - 프린스호텔 구관
일본에 있는 한국의 흔적 두번째로 토쿄에 있는 조선 황실의 흔적이 남아있는 건물을 소개한다.일본 토쿄의 아카사카 프린스호텔 구관(舊館)이 바로 고종의 7번째 아들이며 순종황제의 이복 동생이자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李垠)이 살았던 저택이다.
프린스 호텔 구관으로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의 저택
토쿄 치요다구(千代田區) 기오이초(紀尾井町)의 아카사카 프린스호텔 구관이 세워져 있다. 옛날에도성(江戶城)의 모습을 느끼게 하는 독특한 분위기를 갖고있는, 오래된 저택건축으로. 현재는 호텔의 게스트하우스로서 결혼식등에 사용되고 있다.당초의 용도는, 한일합방에 의해 황실에게 준하는 예우를 받게된조선 마지막황태자의 저택이었다. (1925년 旧北白川宮邸를 제공받았는데 일본에는 하사下賜받았다고 표현) 건축 양식은, 영국풍의 튜더양식(Tudor style)을 기조로 하고 있다. 흰 벽과 진한갈색의 목재와의 대비가 세련된 인상을 주고 있다.눈에 띄는포인트는 엔트런스(entrance)나 실내의 편평한 아치구조로써설계는 궁가(宮家)의 저택에 노하우(know-how)가 있는 미야기 다쿠미(宮内省内匠寮)가 담당했다. (기타무라 고조(北村耕造), 곤도(權藤要吉) 등이 설계하고, 시미즈구미(淸水組)에 의해 시공됨)
게스트하우스로서의 역사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내부에는 상당한 손질이 가해져있다. 옛날의모습이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건축의 원형은 그런대로 지켜져 오고 있어지난 한일 병합시절한국과 일본역사의 한 단면을 살펴 볼 수 있는 곳이다.
영친왕이 일본 왕녀 마사코와 결혼한 직후 찍은 사진
비운의 조선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은 1897년에 태어났으며 1900년 8월에 영왕에 봉해졌고, 1907년 11세의 나이로 덕수궁에서 황태자로 책봉됐으나 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제국 없는 황태자`가 됐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조선 총독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혀갔다. 1910년 국권이 상실되어 순종이 폐위되어 왕세제로 격하되고, 고종이 죽은 1919년 1월은 일제가 전 세계에 한일병합을 조선과 일본의 ‘행복한 결합’이라고 선전하기 위해 1920년 4월 일본 황실의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본 왕족 나시모토의 맏딸인 마사코(方子)와 정략 결혼했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형식적 왕위 계승자가 되어 이왕(李王)이라 하였다. 일본의 육군사관학교.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육군 중장에 이르렀다. 일본 패망 이후 황족의 지위도 박탈당하고 한국정부로부터 귀국도 거부당하면서 심신이 쇠락해 갔다.
8 ·15광복 후 귀국하려 하였지만 국내 정치 실세들의 반대로 귀국하지 못했다. 일본 왕족의 몰락과 더불어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 1963년 11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의 주선으로 국적을 회복하였고 56년 만에 환국을 하였다. 귀국 당시 지금,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이 일본에서 생활하였던 건물은 지금도 아카사카프린스 호텔의 일부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을 볼 때마다 우리에겐 가슴아픈 일이지만 일본의 입장에선 지금까지 건물을 지켜 온 것처럼 앞으로도 건물 보존을 잘 할것으로 보아진다.
■부근의 지도(map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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