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bluewaves
Bluewave의 아름다운 세상을 방문해 주신 파란가족님들께 행운과 사랑을 한아름드립니다 ^^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Notice

Tag

2011. 10. 25. 13:02 Bluewave사랑방

일본왜성의 원형,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리에 있는 이 성은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때왜군이 남해안까지 쫓겨와서 이 곳의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지구전을 펴기 위하여왜장 가또기요마사(加藤淸正)가 돌로 쌓은 왜성이다. 기장죽도성과 부산진성, 울산왜성과 봉화로 서로 연락하였다하여 일명 ‘봉화성’이라고도 부른다.

이 성은 회야강(回夜江) 강구의 작은 포구를 끼고 높이 200m 고지의 산정을 아성(牙城)으로 하여 동북면 산복에 계단식으로 제2·제3의 부곽과 외성(外城)을 배치하였다. 성곽의 넓이는 약 4만6000평이며 그 구조가 교묘 복잡하여 남해안 각지에 산재하는 왜성 가운데 규모가 가장 웅장한 성이다.


성곽은 산정에 동서로 너비 15m, 길이 40m의 아성을 쌓고 동쪽 경사면을 이용하여 복잡한 구조의 2단·3단의 부곽을 두고 그 아래로 해안까지 길고 넓은 외성을 배치하였다.

아성에는 남북으로 성문을 설치하고 외성의 동쪽 끝 제일 낮은 곳에도 선창으로 통하는 두개의 성문이 있다. 성벽은 현무암과 잡석을 섞어서 5∼8m의 높이로 쌓았는데, 성문의 양측이나 성벽의 굴곡부에는 모난 축대를 돌출시켰으며 성벽 밖에는 2, 3중으로 참호(塹壕)를 둘렀다.


산정상에 본성을 두고 동북쪽 경사진 외곽에 2∼3겹으로 높이 6m의 성벽을 계단식으로 다시 쌓아 성 전체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놓았다. 이것은 각 구역이 독립적인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한 왜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안에는 중간지점에 선조 32년(1599)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애국지사 위패를 모셨던 창표당 터가 남아 있으며, 본성 맨 서쪽에는 장군수라는 우물터가, 외성 남쪽에는 병사들의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터가 있다.

이 왜성은 비록 일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축성하여 5년간 사용하였으나 후에 우리측에서도 서생포첨사영으로 사용
했던 성으로, 남문 일부의 훼손을 제외한 다른 곳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16세기말의 일본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또한 유정(惟政)이 단신으로 적진에 들어가 가토와 담판한 곳으로 유명하다.

자성(子城)의 성벽본성(本城)에서 아래를 바라본 모습


천수대(天守台)으로의 계단본성의 성벽

석벽에 새겨진 문자 오사카성처럼 큰돌을 끼워넣었다.

이 성이 일본인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은 남해안 지역에 축조된 구포왜성을 비롯하여 많은 왜성(倭城) 가운데서도 형태가 가장 확실히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성을 쌓은 형태가 전형적인 일본 성 쌓는 방식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성으로 오사카성도 철저히 파괴된 뒤에 나중에 복구되어 그 원형이 상실됨에 따라 서생성 만이 유일하게 옛 일본성의 원형을 지니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생포왜성에 관심많은 일본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posted by bluew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