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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2. 17:03 와인의 향기
[조정용의 와인으로 읽는 문화사] <2> 이탈리아 베로나 지방의 ‘아마로네’
[세계일보] 2010년 03월 01일(월) 오후 05:07
로미오와 줄리엣의 맑은 영혼이 빚어낸 ‘술’

잠을 설치는 이에게 아마로네 한 잔을 권한다. 아마로네 한 모금으로 꿀같이 달콤한 잠을 얻을 수 있다. 도수가 높아 알코올 반응이 즉각적으로 일어나지만, 터질 듯이 풍성한 과일 향과 진하고 두꺼운 감촉이 있어 모든 것을 덮어버릴 수 있다.

결코 만족할 줄 모르는 지적 욕망과 감각의 관능이 한겨울에 북이탈리아로 이끌었다. 지역 특성이 살아 숨쉬는 곳에서 피어나는 와인의 향기는 꽁꽁 어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싱싱하게 피어오르는 법이다. 눈이 비같이 내리는 북이탈리아의 주요 도시
베로나는 겨울인데도 여행자를 포근하게 안아 주었다.

아마도 이 와인을 잘 모를 것이다. 아마로네(Amarone)를 잘 모를 것이다. 애호가가 아니라면 말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진한 사랑이 잉태한 와인 아마로네를 아마도 모를 것이다. 포도나무조차 태울 듯이 불타던 둘의 사랑은 맑은 영혼의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 말라져 가고야 말았다. 포도알을 따서 말린 후에 수분이 빠져버린 상태로 만드는 아마로네는 그래서 이들이 잉태한 와인이란 가설을 세워 본다.

◇아마로네 2006 발표회에 출품된 아마로네.
아마로네는 베네토 지방을 대표하는 와인으로, 할머니가 담그는 포도주 맛과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 모르긴 몰라도 베로나가 고향인 두 연인은 오랫동안 서운했을 것이다. 품질, 숙성력, 가격 등으로 따져 베네토 지방의 간판 와인 아마로네는 피에몬테 지방의 바롤로(Barolo), 토스카나 지방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인데도 불구하고 유독 혼자만 한 단계 낮은 등급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베로나에서 가장 높은 람베르디탑에 올라 찍은 시가지 풍경. 바로 아래는 노점과 카페가 밀집한 에르베광장이다.
2009년 말에 희소식이 퍼졌다. 아마로네가 드디어 ‘G’를 확보했다는 소식이다. DOC급이었던 아마로네는 이제 경쟁 와인들처럼 DOCG로 분류되어 특유의 붉은 딱지를 병 주둥이에 붙인 채 판매대에 오를 것이다. 이탈리아의 와인등급 DOCG는 품질에 대한 보증을 당국으로부터 획득함을, DOC는 품종이나 양조에 대한 규제가 엄격함을 뜻하며, 프랑스의 AOC와 유사하다.

IGT는 지리적으로만 구분되는 등급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양조가 가능하다. 비노 다 타볼라(Vino da Tavola)는 테이블 와인으로, 이탈리아 포도로만 만들면 된다. 소비자들은 한층 높아진 아마로네의 등급을 흡족하게 여기며 즐겁게 쇼핑하게 되리라고 아마로네 생산자들은 꿈을 꿀 것이다. 이젠 둘도 기뻐할 것이다. 아마로네 2006 빈티지의 공식 발표회 자리에서 발폴리첼라 전체 조합의 회장인 루카 사르토리는 “오랜 동안의 끊임없는 노력과 조합원들의 헌신 덕분에 DOCG 등급에 오르게 된 것을 감사한다”고 말했다.

아마로네는 추수하기 전에 미리 수확한 포도를 몇 개월간 말린 후에, 즉 거의 건포도가 된 포도로 만든다. 수분을 빼고 당분 함유량을 최고로 올리기 위함이다. 결과적으로 도수가 높은 레드 와인이 나온다. 15도를 웃도는 것이 보통이며, 어떤 아마로네는 17도도 넘는다. 약한 소주와 경계에 있다. 그러나 맛은 그리 달지 않다. ‘쓴맛이 난다’, 이게 바로 아마로네의 뜻이다. 아마로네는 알프스 아래에 넓게 자리 잡은 발폴리첼라(Valpolicella:베로나 포도재배 지역)가 고향이다.

‘셀러가 가득한 계곡’이란 뜻을 지닌 발폴리첼라는 오랜 양조의 전통을 지닌 곳이라서 이 고장의 와인도 이처럼 불린다.
로마시대부터 발폴리첼라 지역의 최고급 와인은 달달한 맛이었다. 발효를 적당히 실시하여 발효되지 않은 포도당분으로 인해 생성된 단맛을 즐기는 것이 지역 전통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초에 우연한 일이 일어났다. 예기치 못한 사고는 가끔 엄청난 변화의 촉매로 작용하는 법. 바로 아마로네 탄생의 순간이다. 포도당분 전부가 다 발효돼 버린 것이다. 단맛을 기대했던 양조가는 당연히 실망했겠지만, 강한 풍미 속에 든 오묘하고 깊은 맛은 금세 새로운 수요를 불러일으켰다. 이후로 지금까지 발폴리첼라에서는 단맛 와인인 레초토(Recioto)와 달지 않은 아마로네, 그리고 발폴리첼라, 이렇게 세 종류의 와인을 만들고 있다.

아마로네 규정은 양조 후에 최소 2년 이상을 숙성해야 하니 2006빈티지는 사실 2009년부터 시판되고 있지만, 워낙 타닌이 강하고 구조가 단단해서 생산자에 따라서는 2009년이 아니라 더 있다가 출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양조장 베르타니는 2003을 최근에서야 출시했다.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과 노고가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래서 가짜도 많다. 가짜가 많다니 그 명성을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에 피에몬테에서 100만병의 가짜가 발견됐으며, 국경을 넘어
덴마크에서도 가짜 와인이 신고됐다. 루카 사리토리는 계속된 인사말에서 “더 이상 가짜 아마로네가 발 붙이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위조가 힘든 홀로그램을 부착했으며, 병마다 부여된 고유번호를 해당 생산자에게 문의함으로써 소비자가 직접 진위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형경기장 ‘아레나 디 베로나’의 내부. 손을 잡은 꼬마의 명랑한 소리가 100m 떨어진 필자에게까지 또렷이 들려 로마인들의 정교한 설계기술에 감탄하게 한다.
1825년 프랑스 장 브리야 사바랭은 저서 ‘맛의 생리학’에서 “당신이 먹는 것을 말해 주시오.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리다”라는 말을 남겼다. 음식이야말로 자신이 누구인지 제일 잘 말해 준다. 가장 복합적인 음료수 와인의 이야기는 그렇기 때문에 음식과 함께라야 빛을 발한다. 그렇다면 베로나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그들은 주린 시절에 옥수수풀과 말고기를 먹었다. 부유하게 된 지금에서도 그들은 폴렌타(Polenta)와 파스티사다 데 카발(Pastissada de caval)을 즐겨 먹는다. 후자는 말고기인데, 고기를 파프리카와 아마로네에 오랜 시간 절여 만든 스튜의 일종이다. 지방이 별로 없는 단백질의 보고로 알려진 말고기는 나라별로 다양한 조리가 있지만, 아마로네로 졸였으니 여기에는 아마로네가 가장 잘 어울린다. 궁합에 이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 베로나는 와인 애호가에게는 아마로네의 본향, 세계 최대 규모의 와인박람회 비니탈리(Vinitaly)의 무대이지만, 음악 애호가에게는 오페라의 전당이다. 로마시대에 건축한 원형경기장은 지금도 훌륭한 연주무대로 손색이 없다. 올여름에도 ‘나비부인’, ‘아이다’ 등이 공연된다. 과거 인간의 놀라운 발성력과 청력, 거기다 세밀한 건축가의 능력이 그렇게 위대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천혜의 복합공간 ‘아레나 디 베로나’는 해마다 세계적인 수준의 오페라가 열리는 베로나. 곳곳에 로마 유적이 박혀 있는 땅 베로나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간다. 관광객들은 2000년 전의 목욕탕 부지 위에서 맥주를 마시고, 원형경기장에서 오페라를 관람하면서….

아마로네의 특성은 영화가 잘 보여준다. 짙은 빛깔의 아마로네는 잠을 청할 때뿐 아니라 망각을 위해서도 좋은 모양이다. 윌리엄 트래버의 소설 ‘루시 고트의 이야기’에서는 딸을 잃어버린 슬픔을 달래려 이탈리아에서 밤바다 마신 와인으로 소개됐다.

한편 소설 ‘양들의 침묵’에서는 고알코올에서 오는 힘찬 기운이 아주 섬뜩하게 묘사돼 화제가 됐다. 바로 해니벌 렉터가 사람의 간에 아마로네를 곁들이는 장면이다. 일부에서는 그 조합은 재료의 성질만을 놓고 따진다면 그렇게 환상적일 수가 없다지만 별로 검증해 보고 싶진 않다. 소설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렉터의 실력을 무시했듯이 영화감독 역시 렉터의 와인 실력을 무시한 듯하다.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원작의 아마로네가 영화에서는 키안티(Chianti)로 등장했다. 여기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키안티는 힘이 덜 하고 신맛이 강하고 날카로워 기름진 것과 별로라면서….

여행의 피날레는 홀로 앉아 반 병짜리 와인과 소박한 접시를 받을 때이다. 딱딱한 빵을 뜯으며 아레나를 쳐다본다. 아마로네는 입 안에서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그 맛이 자꾸 입에 맴돈다. 여행자는 브라 광장 파라솔 의자에 앉아 기원한다. 다시 와 볼 수 있기를, 다시 이 부근을 맴돌 수 있기를…. 흡사 이런 소망은 로마의 트레비 분수와 다르지 않다. 와인여행자에게는….

◆추천 식당= 안티코 카페 단테(www.caffedante.it). 레스토랑 단테는 베로나 중심에 위치한 시뇨리아 광장에 있다. 관광객이 붐비는 에르베 광장과 벽 하나를 두고 있지만 여기는 좀 차분한 분위기가 난다. 광장에는 시내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람베르티탑의 입구가 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다. 단테는 베로나 향토음식 전문 식당이다. 지역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메뉴로는 말고기 스튜뿐 아니라 생선구이도 있다. 아마로네 리조토도 필수 코스. 이는 아마로네를 넣고 삶은 쌀요리로 우리의 밥과 비슷하지만, 쌀 한가운데를 익히지 않고 씹히도록 딱딱하게 삶는 것이 특징이라 처음 대하는 이들은 생경해서 먹기 힘들지만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고 소화가 잘 된다. 파마산 치즈를 얹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난다.

와인저널리스트·‘올댓와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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