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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16. 01:16 Bluewave사랑방

물레방아의 내력

함양산천 물레방아 물을안고 돌고...

물레방아는 언제 봐도 우리에게 친근감과 정겨움을 안겨 주며, 물레방앗간은 우리에게 은밀하고도 야릇한 사랑이야기를 전해 주는 곳으로 물레방아를 소재로 한 영화·노래·소설이 많은 것도 그 때문으로 보인다. 물레방아는 물의 힘을 이용해 바퀴를 돌려 곡식을 찧는 옛 생활용구로서콩, 옥수수, 고추 등의 밭작물을 빻는데 사용되었다. 우리의 민요중에 "함양산천 물레방아는 물을 안고 돌고 우리집의 서방님은 나를 안고 도네"라는 노래가있다.함양과 물레방아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강원도 영월의 물레방아

1780년 사신의 일행으로 청나라을 다녀온 연암 박지원이 중국의 문물을 듣고 보고 쓴 열하일기를 통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었다가 연암이 1792년안의현감으로 부임하자 곧 북경에서 체득한 지식으로 공장(工匠)에 직접 기술을 가르쳐 베틀·양수기·물레방아 등 새로운 창안에 의한 생산기구를 제작해 사용하도록 했다. 또한, 관아의 부속건물로 백척오동각·공작관·하풍죽로당 등을 새로 지었고 자신이 북경에서 배워온 벽돌 만드는 기술을 그 건축물에 실제로 사용했다. 연암이 안의현감으로 재임하던 1792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물레방아를 만들어 실용화했다. 함양의 물레방아는 역사의 향기가 밴 선진문화와 자부심의 산물로, 당시의 농사는 전적으로 수동인데, 자연을 이용한 오토매틱 기구의 도입은 획기적인 전환이 아닐 수 없었다.

연암물레방아공원.jpg

함양의 연암 물레방아공원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연암 물레방아 공원에 있다

더구나 연암 선생은 물레방아뿐만 아니라 베틀양수기, 논에 물을 대는 수차인 용골차, 나무 축이 있는 원통형 수차인 용미차, 바람을 이용해 겨를 날리는 농기구 등 많은 생산기구를 장인들을 동원해 제작했다. <열하일기>도 이곳에서 저술했다. 함양은 연암이 평생 연마한 학문과 중국에서 체득한 지식을 마음껏 발휘해 실학사상을 실천한 시험 공간이었다.이로말미암아용추 계곡 입구인 안심마을에 국내 최초의 물레방아를 만들어서 실용화하게된 것이다.

DSC_4359.JPG

함양의 연암 물레방아공원

물레방아의 원리는 큰나무바퀴와 굴대에 공이를 장치하여, 쏟아지는 물이 나무바퀴를 돌리면 굴대에 꿴 넓적한나무가 방아채의 한 끝을 눌러 번쩍 들어올렸다가 떨어뜨리면 그 끝의 공이가 확 속의 곡식을 찧도록 되어 있다. 방아채와 공이의 동작이 자동으로 되기 때문에 사람이 없어도 찧을 수 있으며, 공이가 양쪽으로 두 개가 물려 있어 엇갈려 찧어지는 것과 한 개만 있는 것 등이 있다. 물방아는 일명 통방아라고도 하는데, 긴 통나무로 된 방앗대 한쪽을 파내어 물받이를 만들고, 반대쪽에는 공이를 달아 가운데를 받친 원시적인 물방아이다. 물받이에 물이 차면 그 무게 때문에 아래로 내려가 반대쪽의 공이가 들리고 물받이가 기울어져 물이 쏟아지면 공이가 아래로 떨어져서 확 속의 곡식을 찧는다.



파리 프티팔레미술관의 물레방아 그림

물레방아는 유럽에도있었으며 그림으로 남아있다.

유럽의 물레방아

남덕유산 자락인 기백산과 황석산 사이의 용추계곡에서 비롯된 깨끗한 물이 연암 박지원이 안심마을 위쪽에 세운 한국 최초의 물레방아를 돌렸으며, 또한 마을 안 물레방아를 돌리기도 했는데 그 마을안 물레방아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가동되었다고 한다. 비록 그 물레방앗간은 전기방앗간에 밀려 현재는 가동하지는 않지만,안심 마을에 가면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즉, 물레방아떡마을이 바로 그곳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안심마을에는 연암 물레방아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우리나라 최초의 실용 물레방아를 만드신 연암 박지원 선생님과 그 물레방아의 시발지에 역사적인 의미를 기리기 위해서다. 또한 안의 초등학교에 1986년에 연암 박지원선생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 설치된 물레는 목재로 되어있고 그 지름이 10m, 폭이 2m로 우리나라 목재물레로서는 가장 크다고 한다. 이 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실용 물레방아를 만든 연암 박지원 선생과 그 물레방아의 시발지에 역사적인 의미를 기리고자 지난 2003년 공사를 시작해 2004년 완공했다.공원의 넓이는 6870㎡ (약 2100 평)로, 총공사비는 6억 8000만 원이 소요됐다.

지금은 함양의 어디를 가나 '물레방아의 고장, 함양'이라는 문구를 접할 수 있을만큼 물레방아는 함양군을 상징한다


잠실올림픽 공원내 물레방아

물레방아 이전까지는 곡식을 어떻게 빻았을까? 돌확이라고 하여 돌로 만든 절구나 맷돌, 절구, 그리고 사람이 직접 발로 밟아 곡식을 찧던 디딜방아, 소나 말을 이용한 방법이 가미되었던 연자매 등에 곡식을 찧거나 탈곡에 의존하던 시절이었으니, 물레방아는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도구임이 분명했음이 분명하다. 연암 박지원이 물레방아를 들여온 후, 노동력이 절감되고 생산량이 늘어났다. 곳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벼 한가마니를 25~40분 사이에 찧었다고 하니 당시로 보아서는 놀라운 성과였다고 한다.지금과는 달리 예전만 해도 물의 낙차를 이용한 수자원을 도구화한 물레방아는 우리 삶의 필수처럼 따라다녔다. 보리와 쌀을 찧고, 때로는 탈곡이나 제분에도 이용해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했다.

분당중앙공원내 설치된 물레방아와 디딜방아

지금과는 달리 예전만 해도 물레방아는 우리 삶의 필수처럼 따라다녔다. 보리와 쌀을 찧고, 때로는 탈곡이나 제분에도 이용해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했다. 그래서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농촌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레방아였다. 하지만 지금은 물레만 돌아갈 뿐, 제대로 가동되고 있지 않다.지난날청춘남녀들의 사랑의 공간으로 등장하기도 했던 물레방앗간은 세월의 변화에따라 사라져 요즘 관광지로 불릴 만큼 흔히 보기 힘들다. 그나마 지자체의 공공장소라던가 한식당의 정원에서 물레방아의 가끔 모습을볼 수 있다. 비록 인테리어 개념으로 설치된 물레방아지만 진한 고향의향수를 느낀다.

함양의 연암물레방아공원은 용추 계곡에 진입하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올여름 용추계곡으로 피서갈 때 가족들과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물레방아를 둘러보면서물레방아 원형을 살펴보고 고향의 진한 향수도 함께 느껴보기를 권유한다.

용골차(龍骨車)의 구조





두 사람이 발로 밟아 수레를 돌려 물을 퍼 올리는 장치

posted by bluew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