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반도 여행-2] 시모다에서 만난 여인
시모다의 보복사(寶福寺)에 들리면 에도시대 말기, 일본주재 초대 미국총영사 타운센드 해리스(Townsend Harris)의 시첩(侍妾)으로서 기구한 운명을 보낸 도오진 오키치(唐人お吉)를 기리는 기념관에서 그녀를 만나게 된다.
도오진 오키치의 기념관과 보복사(寶福寺)
오키치의 묘
기념관에서 살펴 본 그녀 파란많은 일생을 살펴 보기로한다.
오키치의 본명은 「사이토 키치」라고 하며, 에도말기의 연호12년11월10일, 아이치현 치타郡 내해에서, 배를 만드는 목수인 市兵衛의 차녀로서세상에 태어났다. 4세 때 가족이 시모다(下田)로 옮겨왔으며,14세에 芸妓(게이샤)되었다.
19세 때의 모습
새벽녘에 우는 새로운 까마귀의 오키치라고 불리울 만큼의 평판과 미모였지만,17세때 시모다 봉행소에 눈에 띄게되고 봉행소 지배총장·伊差新次郎에게 설득되어서, 고액의 급료로미국 총영사 타운젠트 하리스(Townsend Harris)의 밑에 시첩(侍妾)이 되면서 그녀의인생이 크게 바뀌게 된다.
19세기, 구미 열강은 200년이상이나 쇄국이 계속 된 일본에 개항을 강요하고 있었다. 미국의 초대 일본 총영사인 타운젠트·하리스는, 시즈오카현의 시모다에 체재해, 일본과 통상조약을 맺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격무로 인하여 건강이 나빠져서, 현지의 공무원에게 신변을 돌보는 간호사를 의뢰했다.
일본측은 하리스가 첩을 바라고 있다고 해석했다. 당시 , 아시아제국은 구미와 불평등 조약을 체결되고 있었다. 거기서 막부는, 이것을 교섭의 유리한 재료에 사용하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그녀는, 어릴 때에 양부모에게 나와 그 후 독신이 되었지만 鶴松이라고 하는 약혼자가 있었다.
오키치는 해리스의시첩인 동시에, 미국측의 진심을 아는 수단이였으며 또 일·미 통상을 맞아 일본측이 유리하게 되도록 이용당했던 시대의 희생자가 된셈이다. 해리스에게 시중든 기간은, 2년 남짓이였다고 한다.
당시의 일본인은 외국인을 무서운 인간이라는 편견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봉행소 지배총장으로부터 나라를 위해서라는 말로 집요하게 의뢰받아 오키치는 마지못해 받아 들여 버린다. 처음엔 세상사람들은 오키치에게 동정했다.하지만, 점차 몸치장하게 된 오키치에게 그 동정은 질투로 바뀌었다. 그리고,외국인을 경멸할 경우에 사용되는 중국인(唐人) 이란 욕설을 퍼부었다.
오키치는 고액의 급료를 받아, 하리스의 시첩이 되었다고도 말해진다. 그러나, 순수하게 간호라고 하는 설이 강하다. 실제 하리스의 아래에서 있던 것은 2일이나 2년으로말해져 뚜렷한 날자는 모른다. 하지만, 외국의 남자와 잔 여자라고 하는 이미지가 완성되어, 어느덧 '중국인(唐人) 오키치'라고 불리게 된다.
그 후, 에도 말기 유신의 동란중에, 오키치는 기생으로서 차가운 차별로 참기 힘든 유랑생활을 하게된다. 그러던 중에요코하마에서 일하는 鶴松과 재회했다. 그들의 사랑은 다시 타올라 두 명은 시모다로 돌아오며 살았다. 鶴松은 배만드는 목수가 되고, 오키치는 여성머리 쪽짐업(현재의 미용실)을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에 부부의 사이가 나빠져, 오키치는 술에 빠지게 된다.그리고, 5년 후에 이혼. 오키치는 미시마에서 2연간 기생을 한 후, 시모다로 돌아와, 일품 요리점 안직루(安直樓)을 개업했다. 하지만, 다시 중국인(唐人)이라고 욕설을 뒤집어 써 결국은 2년만에 폐업한다.
세상으로부터 온갖 욕소리와 조소를 받은 오키치는, 그 후, 일도 하지 않고 술만 마시는 생활을 보냈다.몸을 돌보지않고, 모든 것을 잃은 오키치는 메이지(明治)24년3월27일의 심하게 비가내리는 밤, 결국 강에 몸을 던지고, 자기의 목숨을 끊어버린다. 파란에 찬 51년 생애의 매우 슬픈 종막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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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치가 마지막 몸을 던진 시모다 렌다이지의 이노우자와강 . |
보복사의토우야마 타케오카 대승사가 자애의 마음으로인부 2명과 건져 내어 정성스럽게 경내에 매장 해준 다음 석정환니(釋貞歡尼)라고하는 법명을 내려 주었다.그 후 이지역의 게이샤에 의해 새롭게 묘석이 기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에도막부 말기 개국에 있었던 비화로서 파란만장한 오키치의 일생이 소설로 쓰여였으며, 지금까지 노래,영화와 연극무대에서의 상연과 TV드라마로 일본 사람들에게 눈물을 자아 냈다고한다.
후일담으로 오키치는 하리스의 아래를 떠난 후, 일본은 미국과 대등한 통상조약을 맺었다. 하리스가 귀국한 직후, 쿄토에서 오키치는 사카모토 류마 등 유신의 지사와 함께 있는 것을 목격되었으며 일본은 개항 해야 한다고 말하는 오키치의 주장이, 지사의 사이에 말해지고 있었다고 한다.
오키치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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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몸을 던진 기일(3월27일)에는, 시모다 게이샤나 플라워 미션의 젊은 여성에 의해, 여기서 오키치 법요를 연다.(오키치축제) 또, 「보복사」에는, 오키치 묘가 있어, 관광의 명소가 되고 있으며 매년3/27에는, 보복사에서 예능 대회가 거행되어 활기차다고 한다.
시모다(下田)의 교통안내
![]() ●신간선 이용(아타미 까지) ·도쿄-아타미 메아리호 55분 ·아타미-이토(JR이토선)―시모다(이즈급선)1시간 30분 *아타미에서의 대기 시간은 포함안됨. | |
●직통 전철 ·도쿄-시모다(특급 무희호)2시간 45분 ●차로 ·도쿄-코다와라-아타미-이토-시모다약 4시간 00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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