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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25. 23:54 생활의 지혜

진료 70년 한국 의료계 ‘전설’ 93세에 마지막 회진을 하다

기사입력 2009-02-25 01:53 |최종수정2009-02-25 16:03


[중앙일보 고종관.조문규] 어둠이 무겁게 깔려 있는 24일 오전 6시45분. 서울 노원구 을지병원 현관에 노신사가 검정색 승용차에서 내려 2층 당뇨병 센터로 총총히 사라진다. 올해 93세인 김응진 명예원장. 대기실엔 벌써 그의 '마지막 진료'를 받기 위해 20여 명의 환자가 기다리고 있다.

김 명예원장은 당뇨학계뿐만 아니라 의료계에선 '살아있는 전설'로 통한다. 1939년 경성의전을 졸업한 뒤 70년간 진료했다. 당뇨병이 희귀질환 취급을 받던 50년대 말, 미국 교환교수에서 돌아와 그 병의 심각성을 국민에게 알렸다. 지금까지 그를 거쳐간 환자는 서울대 의대 정년퇴임(81년) 후 을지병원으로 옮긴 뒤에만 3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게 병원 측 설명이다.

환자들은 한결같이 그의 마지막 진료에 섭섭함부터 표시했다.

“그만 두신다고 해서 (충남)공주에서 아침 일찍 달려왔어요. 앞으로 누구에게 진료를 받아야 하나요.” 20 여 년 전부터 김 원장에게 진료를 받았다는 이송자(68) 할머니는 못내 눈시울을 붉힌다.

“1년 전 혈당관리를 안 한다고 너무 심하게 야단을 치셔서 선생님을 바꿨어요. 지금 생각하니 저를 위한 거 아니겠어요.” 김진천(80·서울 응암동) 할아버지는 김 명예원장과 기념 사진을 찍겠다며 진료실을 밀고 들어왔다.

김 명예원장은 “이젠 나도 쉴 때가 됐지요. 다른 선생님들도 잘 보시는데…”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오전 8시30분. 그는 후배 의사들과 회진을 시작했다. 환자와 이별하는 자리다. “식사 조절해서 몸무게를 좀 더 빼세요” “관리를 잘 하시네요. 곧 퇴원하실 거예요.” 혈당치를 점검하며 때론 엄하게 꾸짖고, 때론 자상하게 격려했다.

84년부터 그를 지켜본 최순애(48) 간호사는 “환자가 운동이나 식사조절을 못하면 무섭게 나무라시면서도 한편으론 '못 고쳐줘 미안하다'고 안타까워하신다”고 말했다.

김 명예원장은 평생 오전 6시30분에 출근해 7시30분엔 어김없이 진료를 시작했다.

후배 의사 한경아(50) 을지대 의대 교수는 “환자들이 아침을 굶고 혈당검사를 받기 때문에 진료시간을 당기셨다”며 “식사시간이 늦으면 저혈당에 빠질 수 있고, 아침 일찍 진료를 하면 식사 전후 검사 결과를 그날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명예원장은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한 교수는 “원장님은 항상 약속시간보다 30분 먼저 나타나고, 학회 때는 맨 앞줄에 앉곤 했다”고 말했다.

김 명예원장은 만능 스포츠맨이다. 운동으로 단련된 체력 덕분에 아흔을 넘겨서도 진료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성의전 시절엔 축구선수로 일본 원정을 갔다. 아이스하키·농구·기계체조 등 안 해 본 운동이 없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부회장, 대한체육회 시술지도위원, 테니스협회 감사를 지냈다.

김 원장은 “일요일엔 후배들과 테니스를 쳐요. 틈만 나면 산책합니다. 담배는 피운 적이 없지. 지금도 혈압과 혈당치가 정상이야”라고 말한다. 요즘도 친구들과 소주 한 병 정도는 거뜬히 비운단다.

회진에서 돌아온 그는 손때 묻은 노트를 펼쳤다. 매일 진료하고 입원한 환자 수가 날짜별로 꼼꼼히 정리돼 있다. “모두 두고 갈 거야. 노병은 이젠 물러나야지.” 한 세대를 마감하는 그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김 명예원장 집안은 당뇨 의사 3대로 유명하다. 큰아들 영건(64)씨는 현재 충남대병원 내분비내과 의사로, 손녀 현진(36)씨는 대전 을지대병원에서 할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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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관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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