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25. 01:08
생활의 지혜
커피전문점서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우린 Coffice족(族)<코피스 : coffee+office>"
기사입력 2009-02-24 03:02 최종수정2009-02-24 11:32
23일 강남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캐나다 출신 영어강사 케이티(24·왼쪽 사진)씨가 강의자료를 만들고 있다. 김대훈(AIG생명 근무·오른쪽 사 진)씨는 광화문의 커피전문점에서 컴퓨터로 고객관리를 하고 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
윗사람 눈치 안보고 나만의 '공간'으로
"노트북·휴대폰 있으면 사무실보다 편해"
23일 오전 11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인근 P커피전문점에서 장모(41·여행사 대표)씨가 휴대전화 무선인터넷을 장착한 노트북으로 고객들의 예약상황을 체크하고 있었다. 직원 3명이 일하는 사무실이 바로 앞 오피스텔이지만 그는 매일 이곳에서 반나절 이상을 보낸다고 했다. "사무실에 있으면 전화가 시시때때로 걸려와서 시끄럽고 산만하거든요. 건물 전체가 금연이라 담배 피울 곳도 없고요." 그는 "여기 있으면 일에 매달려 있다는 느낌도 덜 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쯤 광화문 인근 C커피전문점에서는 S은행 내부컨설턴트인 고모(여·28)씨가 두터운 영문서류를 뒤적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외국계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다 현재의 직장으로 옮긴 고씨는 "상사의 눈치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커피전문점에서 하루 두 시간 정도 일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쉬는 날에도 집중해서 할 일이 있거나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집 근처 커피전문점을 찾는다"고 했다.
커피전문점에서 반나절 이상 일하거나 공부를 하는 '코피스(Coffice)' 족이 늘고 있다. 코피스는 커피(coffee)와 사무실(office)을 합친 말이다. 코피스 족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전문점을 찾는 게 아니라, 아예 이곳을 '일터'로 삼는다. 사무실이 따로 있어도, 윗사람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잡무와 회의에 불려다닐 필요도 없는 커피전문점에서 2~3시간 동안 자기만의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다. 휴대전화와 노트북만 있으면 사무실과 마찬가지로 용무를 볼 수 있는 도심의 커피전문점은 이들에게 최적의 '은신처'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 광화문 세종로 부근 등 사무실 밀집 지역의 커피전문점에 가면 몇 시간씩 테이블에 앉아 업무를 보는 직장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코피스 족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잡기 위해 무선 인터넷 공유기와 전원 콘센트를 구비하는 커피전문점들도 늘고 있다.
대학 캠퍼스 주변 커피전문점에는 아예 아침에 '등교'해 저녁에 '하교'하는 학생들까지 등장했다. '캠퍼스 코피스 족'이다.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부근 C커피전문점에서 만난 윤경수(20·연세대 법학과)씨와 최민영(20·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씨는 2인용 탁자에 종이컵과 '민법총론'을 비롯한 두터운 법학 서적을 펼쳐놓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윤씨는 사법고시, 최씨는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윤씨와 최씨는 "학교 도서관은 빡빡하고 집안에 있으면 퍼진다"고 했다. "독서나 가벼운 공부 하기에는 커피전문점이 딱이죠. 같이 공부할 수도 있고요." 두 사람은 "세 시간 정도 공부를 한 뒤 밥을 먹고 데이트를 즐긴다"고 했다.
서울대 인근 신림동 녹두거리의 H커피전문점도 이 같은 대학가 코피스 족의 아지트다. 박정수 점장은 "길게는 8시간 동안 꼼짝 않는 경우도 있다"며 "매일 우리 가게를 찾는 코피스 족은 대략 20명 안팎"이라고 했다.
커피전문점 업체들은 20~30대 직장인과 대학생을 상대로 코피스 족을 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C커피전문점은 젊은 직장인 손님들이 많은 압구정 로데오점 3층에 해외 디자인 관련 전문서적과 열람실, 노트북 작업 공간 등을 들인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 회원에 가입하면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인근 A커피전문점은 "현재 전국 152개 매장에서 노트북 사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무선랜을 설치하고, 객장 내 콘센트들도 손님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한다"고 밝혔다.
문화비평가 이명석씨는 "젊은 층에 있어 커피전문점은 집과 직장 사이의 '제3의 장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며 "'섹스 앤 더 시티'같은 미국 드라마의 세련된 영상이 젊은 층에 어필한 데다, 무선랜의 활성화 추세에 힘입어 일반적인 패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는 "미국 드라마의 영향과 함께 대학 시절 커피전문점에 익숙했던 세대가 직장인이 되어서도 사무실보다는 편한 곳을 찾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김어진 기자 hanmeu@chosun.com]
[박국희 기자 freshm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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