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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28. 09:50 세상사이야기

[스크랩]섬진강 갱조개, 재첩국 여행


섬진강도 하류로 접어드는 경남 하동이며 전남 광양 인근 산에는 유난히 밤나무가 많다. 오월부터 시작해 유월, 산 가득한 밤나무마다 꽃이 피어 온 산이 하얀 연둣빛으로 북실거릴 즈음이면 강물은 강물대로 새로운 풍경을 맞는다. 바야흐로 재첩을 채취하는 계절이 온 것이다.

재첩이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재첩국 역시 요즘엔 마트에서 포장된 제품을 팔고 있을 정도로 흔해진 음식이다. 하지만 실제로 잡이에서 국 끓이는 과정까지를 들여다보면 재첩국 한 그릇이 그리 만만한 음식은 아니다.

재첩은 5월 초순부터 지역마다 다르지만 10월이나 11월까지 잡히는데 장마철에는 잡지 않는다. 재첩 철이라 해도 아무 날이나 재첩을 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단 ‘물때’를 맞춘다. 재첩은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 즉 기수(汽水, brackish water) 지대 또는 기수역에서 사는 조개다. 재첩을 잡으려면 간만의 차가 큰 날을 고르는데 한 달에 두 번 물때가 돌아와서 그때마다 일주일 정도 채취가 가능하니, 한 달에도 절반은 재첩 채취가 불가능한 셈이다.

물때가 맞는 날이면 물이 빠질 시간에 맞춰 강가 마을 사람들은 새벽에 배를 타고 강으로 나간다. 배에는 쇠로 만든 부채꼴의 망태기에 기다란 나무 막대 손잡이가 달린 ‘거랭이’와 쇠로 만든 굵은 체인 ‘아미’, 그리고 플라스틱 소쿠리가 실린다. 물론 점심 도시락도 함께 지참이다. 복장은 속칭 ‘몸장화’-물옷이라 부른다-를 갖춘다.

물이 빠져 강바닥이 드러나면 그때부터 재첩 채취가 시작된다. 거랭이로 바닥을 긁어 모래와 함께 재첩을 건지고, 물에 띄워 놓은 소쿠리에 내용물을 쏟아 붓는다. 조리로 쌀을 일듯 소쿠리로 강물을 일어서 모래는 버리고 재첩만 남긴다. 다시 그 재첩을 아미로 걸러서, 크기가 5밀리미터 이하인 것은 강으로 돌려주고 나면 합법적으로 먹을 수 있는 재첩이 남는다. 혹은 아예 처음부터 소쿠리가 아닌 아미에 놓고 일어서 담기도 한다.


강에서 채취한 재첩은 여러 시간 동안 맑은 물에 담가서 해감을 시켜야 한다. 해감 시간은 재첩을 잡은 장소나 채취 방법, 채취한 계절 등에 따라 달라진다. 먹을거리의 재료들은 모두 한때 자연 속에서 생명으로 살아가던 것들이니, 자신의 주장과 특성이 제각각 따로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음식을 다루면서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은 어쩌면 ‘삶에 대한 존중’이 아닐까 싶다.



재첩을 채취하는 풍경은 바라보기에 참으로 목가적이고 평온하다. 고요하고 느리게 흘러가는 섬진강 강물 속에 점점의 섬처럼 사람들이 서 있다. 드문드문 드러나는 모래톱이며 강바닥은 초여름의 햇살을 반사하며 고요하게 빛난다. 강물 속에 서 있는 사람들은 제각각 혼자서 마치 무슨 수행이라도 하는 양 거랭이로 강바닥을 긁고 강물에 소쿠리를 흔들어 재첩을 일어낸다. 이 고요한 풍경은 그러나, 소설가 김훈이 자주 쓰는 표현을 빌어 말한다면 ‘밥벌이를 위한 잔혹한 노동’이다.

아침 여섯 시쯤 시작된 재첩 채취는 물이 들어오는 시각에 맞춰 두세 시쯤까지 이어진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강물 속에 내처 서서 강바닥을 긁고 조개를 일고, 골라낸 조개를 푸대에 담는다. 이 단순한 과정이 여러 시간 동안 그저 한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싸온 점심을 먹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내리 서서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는 단순 동작의 반복이 몇 시간 이어지면 허리며 무릎은 아예 내 것이 아닌 셈 쳐야 한다. 그래도 이 노동이 마냥 고역은 아닌 이유는, 재첩잡이의 수입이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하루 꼬박 재첩을 잡으면 한 말, 즉 30킬로그램 내외의 푸대를 채울 수 있다. 부부가 나가서 열심히 일하면 두 사람이서 세 말 정도를 잡을 수 있다고 하는데, 한 말당 시세는 매일 달라지지만 2008년 6월 말 현재 10만 원을 웃도는 상황이다. 2, 3년 전만 해도 한 말당 7만 원이었다는데 해마다 재첩 가격은 오르면 올랐지 내리지는 않고 있다. 이 가격이 말하자면 원가인 셈이고, 한 말로 국을 끓이면 40인분이 빠듯하게 나오니 국 한 그릇 단가치곤 결코 싸지 않다.




재첩을 잡는 다른 방법도 있다. 물이 깊은 곳으로 배를 타고 가서 배에서 기구를 통해 재첩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후처리 과정인 선별과 세척 과정에서 사람이 손으로 잡은 재첩은 손이 덜 간다 하니 세상에 공으로 먹는 법은 없는가 보다.

잡아온 재첩이 거쳐야 하는 선별과 세척 과정은, 요즘엔 기계의 힘을 빌어 해결할 수도 있다. 물론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가 있는 가정이나 업체일수록 기계의 힘을 비는 확률이 커진다. 어느 정도 헹구고 나면 살아 있는 재첩을 헹구는 맑은 물도 재첩국의 뽀얀 빛깔의 느낌이 감돌게 되는데 그쯤 되면 국을 끓일 준비가 된 것이다.

재첩국 끓이는 방법은 재첩을 잡는 방법에 비한다면 허무하리만큼 단순하다. 커다란 솥에 재첩을 넣고 재첩이 자작하게 잠길 정도로 물을 붓는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는 재첩의 무게보다 물의 무게가 적어지는 것이다. 국이 팔팔 끓으면 소금으로 간하고 다시 끓어오를 때마다 저어주면서 두세 번 정도 끓어오르기를 기다려 불을 끄면 완성이다. 소금 간은 그때 그때 날씨며 강물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데 강물이 짤 때면 소금을 적게 넣는 식이다. 이 미묘한 밸런스를 맞추는 것은 역시 경험의 힘이겠다.

다 끓인 재첩국에서 재첩만 건져 다시 차갑고 맑은 물에 넣고 치대면서 헹구면 껍질이 벗겨진다. 충분한 양의 물에서 소쿠리를 흔들어가며 껍질을 일어내면 푸르스름하고 희부윰한 재첩의 살만 말간 물 속에 고스란히 남는다. 이렇게 골라낸 재첩의 속살에서 물기를 빼고 국물과 합하면 드디어 재첩국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재첩은 워낙 크기가 잘아서 일일이 껍질을 벗겨가며 먹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렇게 삶아낸 후 먹기 전에 껍질을 분리해줘야 한다. 재첩은 장마가 오기 전 5, 6월이 ‘알이 실릴’ 때라 가장 맛있는데, 이때면 살이 흐물거리면서 약간의 점액 성분이 보이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은 간혹 이 무렵 재첩국을 먹고 상한 것이라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재첩이 간에 좋다는 말을 동의보감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의학이나 영양 전문가들의 언급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재첩에 들어 있는 필수 아미노산 성분이 간의 해독작용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도 재첩국은 낙동강과 섬진강 유역의 술꾼들에게 널리 사랑받아온 해장국이었다. 특히 부추와 재첩의 궁합은 이제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것이어서, 재첩국에는 으레 부추를 숭숭 썰어 띄워 먹는다.

조개로 끓인 국 특유의 비릿한 내음이 상대적으로 적으면서도 감칠맛은 진하며, 자극성이 없으면서도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재첩국. 낙동강 유역의 경우에는 부산 시내까지 재첩국을 담은 ‘다라’를 머리에 인 아주머니들이 아침마다 동네 골목골목으로 재첩국을 팔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아주머니들의 다라 안에는 재첩국 말고도 약간의 부추가 들어 있어서, 재첩국을 사면 부추 몇 포기를 ‘서비스’로 집어주곤 했다. 불과 20, 30년 전까지도 재첩이 잡히는 철이면 흔하디 흔한, 아주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재첩으로 만드는 음식은 재첩국말고도 재첩회무침이나 재첩으로 만든 전이 있다. 재첩회무침은 갖은 야채에 초고추장을 근간으로 한 무침 양념으로 삶은 재첩을 버무린 것이고, 재첩전은 부추 등의 야채와 함께 삶은 재첩을 넣어 부치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재첩을 이용한 음식을 들라면 단연코 국을 꼽아야 한다. 국의 막강한 위세에 비한다면 무침이나 전은 최근에 와서 재첩 전문 식당이 만들어낸 세트 메뉴가 아닐까 하는 근거 없는 의심까지도 품게 될 지경이니 말이다.


하동군 하동읍 신기리 상저구에 있는 부두횟집(T.055-883-8288)에서 재첩국을 끓이는 모습이다. 나날이 비싸지는 섬진강 재첩을 쓰고 진국만 우려서 팔다 보니 재첩국의 단가란 것이 결코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계절과 물의 염도에 따라 물의 양과 소금의 비율을 미묘하고 적절하게 맞춰주는 작업은 숙련된 손끝에서 가능하다.




요즘은 재첩이라면 섬진강, 그중에서도 하동을 꼽는다. 그 사실에 이견을 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한때 낙동강 재첩을 제일 먼저 꼽던 시절도 있었다. 부산 시내의 술꾼 남편을 위해 부인들이 아침에 재첩국 아줌마를 찾던 때의 이야기다. 낙동강 하류에서 강바닥을 긁어보면 모래가 반 재첩이 반이라고 했었던 때다. 낙동강에 하구둑이 생긴 이후 바닷물과 강물이 자유롭게 섞이지 못하면서 생태계와 자연환경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긍정적인 영향은 아니다. 더구나 낙동강은 최상류인 태백 부근의 제련소부터 시작해 공장폐수로 오염된 지천의 유입 등으로 인해 바다에 이르기까지 맑아질 틈이 없다. 지역 언론들이 지적하듯이 서울시민의 식수원인 한강이 그런 수준의 오염상태를 보였다면 벌써 국가적인 대책이 시행되었을 정도다. 그런 상황에서 재첩이 왜 없어졌느냐고 묻는 것은 사치스러운 질문인지도 모른다. 재첩이 없어지면서 재첩을 먹고 사는 철새들의 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섬진강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오염 총물질의 양은 상대적으로 적다지만 상류에 댐이 여러 개 건설되면서 유량이 줄었고 취수장에서도 대량으로 물을 빼간다. 하류에 제철소와 발전소가 생기면서 유독성 오염물질도 발견되었고, 축산업 등의 폐수도 결코 만만치 않다. 원래 섬진강 물은 풍부한 수량으로 느리게 흐르면서 구례의 모래톱을 거쳐 하동에서 다시 맑아지는 것이 정상이었다고 한다. 지리산에서 온 맑은 물이 이 지역에서 합쳐지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취수장과 상류 댐의 영향으로 유량이 눈에 띄게 줄었고 지역 주민들은 ‘물이 짜졌다’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더구나 각종 건설공사를 위한 모래 채취도 강의 환경에 영향을 끼친다. 바닷물의 역류가 심해지면서 재첩을 잡는 위치도 점점 북상하고 있다. 20, 30년 전만 해도 강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바로 떠먹곤 했다는 섬진강물을 식수로 쓰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이렇게 생산조건은 악화되는데, 입에 좋은 것 몸에 좋은 것을 찾는 사람들의 욕심은 점점 커져간다. 재첩은 계절 음식인 데다가 쉬 상하기 때문에 보관이나 유통이 어렵다. 하지만 냉동기술의 발달로 보관과 유통이 가능해지면서 사철 내내 재첩국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맛과 영양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수요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자연히 중국산이 수입되고, 마치 당연한 절차처럼 중국산과 국산을 섞어서 팔거나 중국산을 국산이라 속여 파는 일들이 벌어진다. 많지 않은 양의 물을 붓고 폭폭 끓여 보얀 진국으로 먹는 재첩국에 물의 분량을 늘이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면서, 마치 재첩을 헹궈낸 수준의 멀건 국을 재첩국의 참맛으로 알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맛을 찾으러 다니다 보면, 맛보다는 ‘맛이 사라져가는 이유’를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전국의 어느 지역이건 어느 음식이건, 사라져가는 이유는 그리 다르지 않다.
낙동강이 맑아지고 갯벌이 살아나 재첩이 다시 넘쳐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철새들이 다시 낙동강을 찾아오기를 바란다. 섬진강의 유장한 옥빛 흐름을 앞으로 20년 후에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직하게 끓여낸 보얗고 맑은 재첩국의 국물을 들이마시면서 ‘아, 좋다!’라고 내뱉는 일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posted by bluew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