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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6. 12. 21:37 역사와 유물

지난 연재에서 우리는 불국사의 경내 입구에 불이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불국사가 신라인들이 생각한 부처의 세계의 적극적인 구현이요, 정토사상에 의해 부처의 세계를 경주와 신라에 가져와 부처가 다스리는 나라, 부처가 지켜주는 나라의 백성으로서 자부심을 나타내고자 했음을 알아보았다. 그럼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불국사의 경내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불국사 불이문을 들어서서 조금 걷다보면 대한민국 수학여행의 대명사 같은 바로 다음과 같은 장면을 만나게 된다. 아마 대한민국인 중 70% 가까이의 사람들은 이 자리에서 이 풍경을 만나게 된다. 아마 불국사하면 이미지로 떠오르는 것의 대부분이 바로 아래 사진 같을 것이다.


불국사는 보통 이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야 멋져 보인다.



불국사 석축
통일신라 시대에 건축된 불국사는 경덕왕 10년(751년)에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년)에 완공되었다. 국가적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20여년이 넘는 건축기간을 갖는 것은 그만큼 많은 공력이 들어갔음을 알 수 있는데 다른 사찰과 불국사의 차이점을 완연히 구분짓는 것은 바로 석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불국사는 현대의 건축에서처럼 기계로 다듬어진 인공석이 아니라 자연석을 이용하여 기본 토대를 구축하고 있다. 자연석들을 모아 쌓았는데도 1,300여년이 지나도록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비결, 부처의 공간을 우러러 볼 수 있도록 만드는 자연스런 시각효과로 웅장함과 장엄함을 고루 갖춘 사원으로서의 특성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석축에 활용된 신라 장인들의 일명 그렝이 공법이다. 그렝이 공법이란 자연석과 자연석의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부분을 그렝이기술을 활용해 딱 맞아떨어지도록 다듬어가면서 쌓아올렸다는 점이다.





그렝이공법
본래는 목축에서 활용되던 기술이라 할 수 있는데 돌로된 기반석 위에 나무기둥을 세울 때 나무기둥이 들뜨지 않도록 돌 표면의 높낮이에 맞게 나무의 접지부분에 돌과 똑같은 높낮이가 표시되도록 나뭇가지 등을 활용 돌표면을 따라 그렝이 칼로 그린 후 그 부분을 다듬어 세워보고 다시 내려 다듬고 세우면서 바닥과 돌이 완전히 밀찰되도록 하는 공법인데 이를 돌에 적용했다는 것이 왜 불국사를 완공하는데 20여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높은 석축과 외벽에 의해 아래에서는 불국사의 대웅전 앞뜰을 볼 수 없다. 직접적으로 바깥에서 부처의 세계를 볼 수 없도록 한 것은 그만큼 신비감과 신성성을 높이는 요소라 할 수 있다. 경주의 이러한 그렝이공법은 경주지역이 지진이 잦은 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며 지진이 잦을수록 더욱 견고해지는 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렝이공법이라고 한다.



그렝이 공법과 함께 또하나 불국사 석축의 진가를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디테일하고 아기자기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신라 석공들은 물이 직접 닿아조각이나건축물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부조된 석불의 훼손을 막기 위해그위에 물받이 대를 만들거나 위의 불국사 석축의 물받이처럼 어느 정도 거리를 가지고 물이 떨어지게 하여 물에 의해 구조물이 변색, 훼손되는 것을 최소화하려 하였다. 이런 디테일이 불교사원으로서의 장엄함을 오랫동안 유지한 기술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청운교, 백운교(국보 23호)
별도로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웅장하고 장대함을 느끼게 하는 화강암으로 된 계단이다. 1,300년 전의 신라인들의 석조예술과 조형미의식을 잘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국보로 지정되기에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청운교와 백운교는 동쪽에서 자하문으로 들어가는 다리이다. 아래 백운교는 18계단으로 되어 있고 청운교는 그 위에서 15계단으로 되어 있어 총 33계단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불교의 삼십삼천을 거쳐 부처의 나라에 이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재밌는 것은 한번에 33계단을 죽 지나치지 않고 중간에 한번 쉬는 공간을 만들어 두어 부처의 나라를 구현하면서도 그를 실제로 오르고 내릴 인간의 편리를 감안하고 있다는 점, 단번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한번을 쉬게 함으로써 부처의 세계에 도달하는 길이 지극히 어렵고 힘든 길임을 느끼게 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십삼천
불교에서는 세계를 삼계(색계, 무색계, 욕계)와육도(지옥도, 아귀도,축생도,아수라도,인간도, 천상도)로 구분하고있으며 이를 삼계육도라 한다.삼십산천은 욕계의 지옥도에서부터 부처가 계신 수미산 정상까지의천상을 삼십삼단계로나눈 것이며 그 각하늘이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지난함을 엿보게 할 수 있는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부처의 세계의 바로 아래에 있는 도리천에는 또 작은 삼십삼천이 있다고도 전해진다.
이런 삼십삼천의 세계를 자하문까지 들어가는 계단에 표현했다는 것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백운교 반원아치


전체 33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33이라는 숫자는 불교에서 아직 부처의 경지에 이르기 전의 여러 단계이며 부처가 직전의 제2천이 바로 도리천이 된다고 보았을 때 이 아치 사이로 작은 도랑이 흘렀다면 이 또한 불국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도리천의 모습을 불국사에 구현해 놓은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청운교의 반원 아치는신라시대의 다리의 모습으로는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는 것이며 석굴암과 함께 아치형 조형 기술이 뛰어난 신라인들의 석축 기술을 엿볼 수 있게 되는 구조물이다.불국사의 이 두 다리를 인생에 빗대청운교를 푸른 청년의 모습으로, 백운교를 흰머리 노인의 모습으로 빗대어 놓아 인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홍예교 형식을 띄고 있기도 하다.

계단을 다리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으며, 오르는 경사면을 45°각도로 구성하여 정교하게 다듬었다. 다리 아래는 무지개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직선으로 딱딱해졌던 시선을 부드럽고 생동감있게 풀어주고 있다. 다리가 있는 석축 아래쪽으로 연못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도 계단 왼쪽에 물이 떨어지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물이 떨어지면 폭포처럼 부서지는 물보라에 의해 무지개가 떴다고 전하고 있어, 무척이나 아름다웠을 옛 불국사를 그려보게 된다.


자하문
자하는 보통 신성함이 서린 노을이라는 뜻으로 도교에서 신선이 사는 경지에 서리는 노을이라 할 수 있는데 부처께서 계시는 곳의 노을이란 뜻으로 경내의 신성함을 더하려는 의미의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자하문은 통일신라시대에 신도들이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였을 것으로 보이며 평면이 정면3칸 측면2칸인 다포계 겹치마 팔작지붕 건물로서 장식미를 살렸다. 고주열에 고주로 대들보를 받치고 그 위에 우물천정을 설치하였다. 1966년 수리 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1781년 정조 5년에 최종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73년 불국사 복원 때 남회랑을 이문에 붙이면서 문의 측면 일부가 훼손된 것은 안타까운 일로 전해진다.

자하문 처마장식
1박 2일 경주편에서 자하문의 처마 장식이각각 하나는아래쪽으로 하나는 위쪽으로 휘어 돌아나오는 구조로 만들어진 점을 불국사의 숨겨진 멋으로 표현한 부분이 유명하다. 불국사에 방문하면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면 재밌을 것 같다.

안양문
안양문의 안양은 안양왕생이라는 말에서 따온 것으로 안양왕생은 곧 극락왕생 즉 극락정토에 도달해 살고싶은 마음의 기원이라는 점에서 극락(불국사의 극락전)에 이르기 위해 거치는 문이라는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불국사 경내에 들어가는 정문이라 할 수 있다.


연화교, 칠보교(국보 22호)
청운교 백운교의 반대쪽 즉 서쪽 계단이라 할 수 있으며 정문격인안양문으로 들어가는 다리이다. 연화는 말 그대로 연꽃 즉 부처를 상징하는 꽃이름이며 칠보는 고귀한 것을 치장하는 일곱가지 보석으로서 이 역시 부처를 드높이는 다리의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연화교 10계단 칠보교 8계단으로 총18단으로서 청운교 백운교보다 웅장함과 장대한 미는 뒤떨어지지만 오히려 섬세한 아름다움이 빛나는 다리들이라 할 수 있다. 중앙에 위치하면서도 청운교 백운교에 비해 웅장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출구로서의 역할이 중심이기 때문일까 추측할 수 있다. 부처를 정면으로 맞으러 들어가지 않고 일단 자하문으로 들어간 다음 대웅전 경내에서 부처를 만나고 뒤돌아 합장을 하고 내려오는 그런 예법의 차원에서 연화교와 칠보교의 다리가 비교적 덜 웅장하고 대신 섬세한 아름다움을 위해 연꽃 문양 등을 장식한 것으로 보인다.




연화교 연화문
1박2일 경주편 불국사에 숨겨진 멋 세번째로 소개된 것이 바로 연화교의 연화문이다. 위 사진을 자세히 보면 계단의 디딤부분 끝에 연화문이 그려져 있어 연꽃이라는 다리 이름에 걸맞도록 연꽃 무늬를 새겨놓아서 사람들에게 소소한 재미와 즐거움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옛날 김대성은 아주 작은 것 하나도 디테일하게 준비하여 불국사를 찾는 사람들의 신앙심을 고취하는데 최선을 다한 신라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도 할 수 있겠다.하지만 오랜 시간 사람들이 무수히 밟은 탓에 그 상태가 희미해져 있다.

현재 청운,백운, 연화,칠보교는 모두 통행이 금지되어 있으며 많은 사람들의 통행으로 인해 더이상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이므로 양해하기를 바란다.


법종각,좌경루,범영루


범종각
불국사 범종각은 범종을 달아놓은 종각을 말한다. 각은 보통 단층에 붙이는 이름이고 루는 복층일 경우 붙인다. 범종각에는 보통 범종과 함께 법고 목어 운판 등을 함께 두는데 불국사의 경우에는 법전사물 범종만을 두었다.




종에는 성덕대왕신종에서와 같이 비천상이 새겨져 있으며 조각 수법이 뛰어나다 한국종의 특징은 우아하고 안정된 와형을 지니고 있으며 그 소리도 매우 은은하고 맑으며 맥노리 현상으로 매우 유명하다


범영루
범영루는 창건당시에는 수미범종루라고 불리었으며 범종이 있던 누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처님이 계신다는 수미산 모양의 팔각 정상에 누각을 짓고 그 안에 108명이 앉을 수 있게 하고 그 아래에는 오장간(50척 높이의 칸)을 세울 수 있게 하였다. 고 기록되어 있다. 108이라는 숫자는 잘 알려졌다시피 108가지 번뇌에서 따온 숫자이다. 108가지 번뇌를 지그시 누르는 범종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며 불국의 수미산의 모습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재에는 법고가 보관 되어 범영루의 외견이다. 범영루에는 법고가 보관되어 있다.

통일신라 시대의 범영루는 코끼리 모양의 돌기둥위에 놓여져 부용을 세운듯 허공에 의지하여 세웠는데 백길이나 높은 누가 날개와도 같다고 표현되기도 하며 이것이 연못에 비친 모습이 장관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범영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연화와 백운교의 2개의 계단이 있는 대칭을 이루면서 장대한 불국토의 중심 수미산을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범영루 안에 법고가 보관되어 있는 모습

좌경루
자하문의 좌편에 좌경루가 있으며 목어와 운판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법전사물
사찰에서 보통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합쳐 법전사물이라 하는데 범종은 인간에게 부처의 가르침을 전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범종은 세계적으로도 그 소리와 제작기술 등으로 인해 유명하며 특히 신라의 성덕대왕신종을 보았을 때 그 범종은 맥놀이 등으로 인해 매우 강한 인상을 남기며 사람들을 깨우친다. 범종소리는 즉 사람들을 위한 알림 소리인 것이다.
법고는 들짐승들을 깨우기 위한 소리, 목어는 물속 물고기와 수생동물들을 깨우기 위한 소리, 그리고 운판은 날짐승 즉 온갖 새들을 깨우기 위한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래서 새벽 예불 전에 법전사물을 두드리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축생들에게 부처님의 자비심을 전달하려는 불교식 아포리즘의 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보탑
10원짜리에 있는 탑 노태우 대통령이 대선전에 한 점쟁이가 국민들 모두에게 불상 하나씩을 보시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에 구 디자인에서 십원짜리 동전을 새로 디자인하며 사자상을 넣어 모든 국민에게 불상을 주게 되어 결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는 야담이 전해지기도 하였다. ㅋㅋ 6.29선언 이후 대통령 후보로 이미지를 굳힌 노태우 전 대통령 사자는 곧 부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동물인데부처로 보아도 무방하고 당시 뒤숭숭했던 사회상에 의해이런 식의 야담이 전해진 것 같다. 아래 사진 중간 기둥에 보이는 것이 사자상인데 원래 사방 네개였지만 세개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쪽으로 밀반출되어 지금은 행방이 묘연하다고 한다.
탑은 보통 사각의 토대에 사각으로 시작하여 육각, 팔각,십이각 그리고 결국 원이 되는 모양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마음의 각진 부분이 점점 둥글둥근한 원이 되어가는 것으로 깨달음의 과정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다보탑은 다보부처가 탑으로 현신하면서 다보여래의 깨달음이 얼마나 장엄하고 숭고한 것인가를 건물의 형태로 웅장하고도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조각해낸 이탑형의 최고 모습을 보여주는 탑이다.


다보탑
다보탑과 석가탑(불국사삼층석탑,국보 제21호)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4m로 같다.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탑이 다보탑이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석가탑을 보면 2단의 기단(基壇)위에 세운 3층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十)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된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 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다보탑의 정식 명칭은 석가탑과 함께 불국사 삼층석탑으로 정해져 있지만 불교식 풀네임은 다보여래상주증명탑이다. 다보여래가 항상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탑이라는 뜻인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바로 다음의 묘법 연화경의 구절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묘법연화경(법화경)의 다보탑의 설명

견보탑품에는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높이는 500유순(由旬 : 인도의 거리를 재는 단위. 1유순은 약 40리)이요, 평면의 넓이는 250유순이나 되었고, 땅에서 솟아나 공중에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가지 가지의 보물로 장식된 난순(欄楯 : 난간의 기둥과 난간 옆으로 가로지른 것)이 5천이요, 감실(龕室)이 천만이요, 옆으로 나부끼는 깃발, 길게 늘인 깃발, 그리고 줄줄이 늘어뜨린 구슬들, 또 무수히 걸린 보배로운 방울이 화려하고 사면으로 아름다운 향이 풍겨나와 사계에 가득찼으며, 금·은·유리 등 칠보로 된 지붕은 사천왕(四天王) 궁전까지 닿아 있었다. 하늘나라에서는 둥근 꽃을 비오듯 뿌려 탑을 공양하고, 천상계의 많은 신중(神衆)들이 꽃·향·구슬·깃발·음악으로 이 탑을 향해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다보탑은 위의 이야기를 조형을 통하여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하나하나의 형태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칠보는 부처의 본질인 ‘깨달음〔覺〕’의 일곱가지 덕성, 즉 칠각지(七覺支 : 擇法·精進·喜·輕安·念·定·捨)를 표시한 것이다.

탑의 높이가 500유순이라 한 것은 인과의 종적인 관계가 깊음을 표시하며, 평면의 넓이가 250유순이라고 한 것은 밑으로 그 덕이 널리 이웃에 미침을 표시한 것이다. 그리고 난순은 무궁무진한 정신의 힘을 간직함을 상징하였으며 비어 있는 감실은 한량없는 공(空)의 집, 아무런 집착도 없이 자비롭기만 한 마음을 상징하고 있다.

다보탑은 눈에 보이는 물질의 아름다움이요, 석가탑은 마음에 비치는 정신세계의 아름다움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신비한 탑이다. 법당 안에 있는 부처님과 정삼각형을 이룬 위치에 자리잡고 하늘과 땅이 하나로 융합된 가운데 석가여래의 설법은 다보여래의 증명에 의해서 영원히 불국에 다함이 없다.

불국사의 다보, 석가 두 탑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것이다.탑은 원래 인도의 에서 나온 말인데 음을 따서 한자로 率塔婆라고 썼던 것이 줄어서 <塔>이 된 것이다.

참고
불교에서의 탑의 의미
탑은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 성불하신 곳, 진리를 가르치신 곳, 그리고 돌아가신 곳 등에 세워졌던 것인데, 그 이후 불교가 중국, 우리 나라 기타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로 전해지면서 탑은 곳곳에 세워져 불교도들의 신앙의 표시가 되었다.때로는 부처님의 유해의 일부를 나누어 모시기도 하고 때로는 영원히 살아계신 부처님을 상징하는 경(經)이나 불상, 그 밖에 귀중한 보물들을 모셔 부처님이 계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그러므로 탑은 부처님의 육신이 담긴 무덤은 아니더라도 부처님의 정신이 담긴 부처님의 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었다.이런 의미에서 다보탑은 다보여래(多寶如來)라는 부처님이며 석가탑은 석가여래(釋迦如來)라는 부처님의 두 분의 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 속에는 탑을 매우 신성시하여 탑돌이 같은 신앙행위들을 즐겨 하였다.

[관련기사]

  • 2012/03/21 불국사, 신라인들이 만든 부처의 나라(3) (1) by 그곳2012
  • 2012/03/19 불국사, 신라인들이 만든 부처의 나라(2) by 그곳2012
  • 2012/03/15 불국사, 신라인들이 만든 부처의 나라(1) by 그곳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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