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27. 11:57
마음의 등불
아름다운 소풍 같았던 이승의 삶을 마감하고 다음 생을 준비하는 죽음의 길이 두렵지 않을 수는 없다지만, 그 여정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인지했던 우리 조상들의 사유체계. 그 안에는 죽음을 또 다른 삶으로 받아들였던 선인들의 인식이 선연히 녹아 있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의 시에서 우리는 순진무구(純眞無垢)와 무욕(無慾)을 읽을 수 있다. 그는 현란하거나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사물을 맑고 투명하게 인식하고 담백하게 제시한다. 죽음을 말하면서도 결코 허무나 슬픔에 빠지지 않고, 가난을 말하면서 구차스러워지지 않는다.
그의 시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 시사(詩史)에서 매우 이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인이라는 세속적 명리(名利)를 떨쳐버리고 온몸으로 자신의 시를 지킨, 진정한 의미의 순수 시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한국의 전통적인 토종의 시인이자 영원한 자유인으로, 오직 술과 문학만으로 살았던 시인의 삶과 비애를 평이한 말과 형식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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