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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22. 21:39 역사와 유물
<부처님 오신 날 특별기획 3부작>

미소의 길


제1부 불상의 탄생 : 520() 1130-1230

제2부 대륙의 불상 : 521() 1130-1230

제3부 동방의 미소 : 522() 0800-0900


이 다큐멘터리는 동서문명의 첫 융합으로 탄생한 불상의 원류와 그 전파와 변천을 소라는 표현을 통해 기록한 문명사적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불교문화 가운데는 미소를 짓고 있는 자비스러운 불상들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으뜸으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 대불이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불상으로는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과 충남 서산에 있는 마애삼존불을 손꼽고 있다. 이 불상들의 특징은 사람들의 마음을 한없이 편안하게 해 주는 신비스럽고 고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점 이다. 과연 이 미소는 어디에서 탄생되어 어떤 길을 통해 우리나라까지 전해져 온 것일까.


이 프로그램의 연출자 정수웅 감독은 카메라를 둘러메고 홀연 단신 실크로드 나그네가 되어 탈레반의 위험지역을 드나들기도 하고 사막을 걸기도 하며 25천 킬로 대장정 미소의 길을 10개월에 걸쳐 추적하였다.



제1부 불상의 탄생

불상의 탄생지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 북부로 예부터 간다라 지방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최근에는 탈레반의 테로로 무척 고통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특히 불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바미안 대불이 2001년에 탈레반에 의해서 포격으로 없어져버려 세계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불상의 탄생지 간다라 지방과 불교가 탄생한 나라 인도의 각지를 돌면서 불상이 어떻게 탄생, 전파되었는 지를 추적해 들어간다.

석가모니가 탄생한 기원전 6세기경 이후 5, 6백년간에는 불상이 없었는데 기원전 3세기경 그리스로부터 알렉산더 대왕이 이곳에까지 정벌해 들어오는 것을 계기로 간다라 지방이 그리스의 식민지가 되어 3세기 간 지속되었는 데 그때 불교에 귀의한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불상이 탄생되었다. 그래서 최초의 불상들은 그리스식 의상을 걸치고 있으며 얼굴 또한 그리스인 모습이다.

그리고 명상에 파묻힌 내면의 미소가 한결 같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 미소를 아르카익 스마일이라 부른다. 그 원류지인 그리스에 찾아가 불상 미소의 원형이 당시 그리스인들이 가장 신앙하던 아폴로 였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간다라 지방 북부 카라코람 산맥 깊은 산 속에 살아 있는 그리스인들의 후손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제2부 대륙의 불상

히말라야 산맥의 서쪽 끝자락 카라코럼 산맥을 넘어서면 타쉬쿠르칸이란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해발 35백 미터나 되는 하늘 아래 첫 동네라 일컫는 곳이다. 바로 이곳은 혜초 구법승도 머물고 고선지 장군도 지났으며 마르코 폴로도 이곳을 통해 중국 대륙으로 들어갔다.


카라코람 산맥을 내려가면 타크라마칸 사막이 펼치어진다. 한 때는 옥토였던 땅에 불교사원들이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었으나 지금은 쿠챠와 투루판 및 돈황 등 몇 군데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사막 속에서 발굴된 불두들이 어느 것 하나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리고 1900년대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의 탐험대들에 의해 도굴해 간 불상들 속에서도 미소가 넘쳐난다.


위구르의 신장지구를 벗어나면 황하 상류의 병용사, 맥적산 석굴이 나타나 는데 그야말로 불상 박물관이라 말할 만큼 수천 기에 이른다. 불상 대부분이 선비족 국가인 북위시대 것들인데 얼굴이 갸름하고 눈이 가는 여인 보살상들로 매우 매혹적이다. 이러한 불상들의 흐름은 북위의 수도 대동에 있는 운강석굴에서 집대성된다. 그러나 북위가 수도를 대동에서 낙양으로 옮기고 한족화 정책을 펴기 시작하면서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지고 근엄한 얼굴로 바뀐다. 그 대표적인 석굴이 낙양의 용문석굴이다.


2부를 통해서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아르카익 스마일이 어떻게 발전되고 소멸되었는 지를 추적한다.





제3부 동방의 미소

당시 불교제국이었던 당나라에서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구법승 및 사신들이 어떤 발자취를 남기었고 그 사람들에 의해서 불상의 미소는 어떤 경로로 한반도에 건너 갔을까.


오늘날의 서안을 찾아가기에 앞서 낙양에 들렀다.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고만 백제, 고구려 유민들이 주로 낙양으로 끌려와 거주하면서 북망산에 묻히었다. 그러한 기록 등은 정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비석들에 잘 나타나있다. 그 중에는 당나라의 고관으로 박탁된 사람도 있는 데 고구려 출신의 고선지 장군과 순장군, 그리고 이정기 장군이 대표적이다. 순장군은 백제의 흑치상지 장군의 딸과 결혼하여 산서성 부사령관으로 있었을 때 망국의 한을 달래려 천룡산에 불상을 조성하였다. 1940년대에 도굴당해 할켜진 자국만 남아있다. 미국 교포학자에 의해 불상 한 기가 밝혀지기도 했다.


옛 실크로드의 종착지 장안에는 오늘날 옛 사원은 거의 남아있지 않아 불상을 찾을 길이 없지만, 당나라에서 불교경전을 번역하는 사업에 큰 공을 세웠던 원측선사를 모신 사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고종황제의 아들 장의태자의 장례식에 찾아온 신라 사신도 남아있어 당시 한반도와 빈번하게 왕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불상은 이러한 교류 속에 한반도로 전달되었는데 대표적인 길목이 산동성의 등주와 석도의 장보고 기지인 적산 법화원이며 절강성의 영파이다. 영파에는 오늘날 고려사관이 남아있고 주산군도에는 신라초가 있으며 불상을 전했다는 심청전의 전설도 남아있다.


이러한 경로를 통해 불상은 6세기경부터 한반도에 전해졌는 데 초기 불상에는 미소가 완연하게 남아있다. 대표적인 불상으로는 서산 마애삼존불과 반가사유상이다. 이 두 불상에는 그리스의 아르카익 스마일이 그대로 투영되어있다. 이역만리 그리스에서 한반도까지 수세기에 걸쳐 전해져 온 것이다.


이 프로그램이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석굴암 대불이 현재 박제처럼 유리관에 갇혀 있는데, 동짓날 해를 마지하고 자비의 은은한 미소를 짓던 옛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광창을 복원하는 일이다. 석굴암의 방각이 동남동 30도를 가르키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동난동 30도각은 진, 용 방위이고 동지와 일직선을 긋고 있다. 그 가운데 감포 앞바다 해중릉이 있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의 혼을 지키기 위해 토함산에 석굴암을 조성하고 자비의 미소를 창출, 후대에 남겼던 것이다.


[출처: kbs스페셜>금주의 Special]

http://www.kbs.co.kr/1tv/sisa/kbsspecial/preview/index.html

posted by bluew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