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26. 17:34
생활의 지혜
모든 것이 빨라만 지는 세상… 부부도 연인도 他人이 되다
“언젠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햄릿이라는 인물이 비현실적이라는 한 독자의 질문에, ‘이보게, 젊은이. 햄릿은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자네보다 훨씬 더 살아 있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다가 문득, 나라는 인간과 내 소설의 관계 역시 그와 비슷하지 않은가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라는 존재는 어지러이 둔갑을 거듭하는 허깨비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살아 있는’ 것은 지금껏 내가 쓴 것들일 것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소설가 김영하(42)씨가 신작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문학동네)를 펴냈다. 단편소설집으론 2004년 출간한 ‘오빠가 돌아왔다’ 이후 6년 만이다. 특히 이번 소설집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대부분 문예지에 실리지 않은 신작들이어서 눈길을 끈다.
작가는 “원고 청탁을 받지 않고 쓰다 보니 분량이나 형식에서 훨씬 자유로웠다”며 “등단할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썼다”고 말했다.
책 제목은 수록작 ‘밀회’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옛사랑을 우연히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국음식점에서 만난 주인공 남자가 1년에 한 차례씩 여자와의 만남을 이어나가는 줄거리다. 매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찾는 주인공은 남편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그녀를 7년 전에 다시 만났다. 그녀가 독일로 이주한 것은 남편이 ‘카푸그라증후군’이라는 특이한 뇌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 이 질환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을 보인다.
이민 전 경기 안양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남편은 취미로 시작한 레슬링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를 더 좋아했다. 어느날 제자와 스파링을 하다 남편은 학생의 기술에 걸려 허공으로 붕 떴다 매트 밖으로 떨어졌다. 이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며칠이 지나자 남편은 이상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작가는 “뚜렷이 표제작으로 삼을 만큼 전체를 아우르는 작품 제목이 없었다”며 “‘밀회’에 나오는 이 문구가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정보 유통이 급속도로 이뤄지는 첨단 정보사회에서 정작 연인간에도, 부부간에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오늘날 사회, 즉 ‘정보와 이해의 격차’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소설집에 실린 수록작들은 이 같은 ‘이해의 불가능성’을 여러 형태로 보여준다.
이번 소설집의 또 하나 특징은 ‘남녀간 사랑’을 다룬 작품들이 많다는 것. 작가는 “등단 초기부터 사랑 얘기를 본격적으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다소 엄숙한 한국문학에서 신인 작가에게 요구하는 것이 알게모르게 있었다”고 밝혔다.
신인 작가가 사랑 타령만 늘어놓기엔 다소 눈치보이는 분위기였다는 말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남녀간 사랑을 소재로 많이 다룬 또다른 이유는 연인간에도 서로의 내면에 깊이 다다르기 힘들다는 점을 뚜렷이 보여주기 위함이다.
로봇과 ‘원 나잇 스탠드’를 하는 여자, 어느날 갑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가수, 휘발유 냄새가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은 부부의 이야기 등 현실에서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을 작가는 태연히 펼쳐 보인다. 김씨 특유의 현대적 감수성과 속도감이 돋보인다. 소설집에 실린 13편의 단편들은 형식에서도 매우 자유롭다. 두 페이지에 불과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중편에 가까운 분량의 작품도 있다.
1년7개월간 외국에 머물다 지난 연말 귀국한 작가는 오는 9월쯤 다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1∼2년간 머물 예정이다. 1995년 등단한 작가의 ‘빛의 제국’,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은 해외 10여 개국에서 번역·출간되는 등 외국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빛의 제국’은 오는 9월 미국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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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영하(42)씨가 신작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문학동네)를 펴냈다. 단편소설집으론 2004년 출간한 ‘오빠가 돌아왔다’ 이후 6년 만이다. 특히 이번 소설집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대부분 문예지에 실리지 않은 신작들이어서 눈길을 끈다.
작가는 “원고 청탁을 받지 않고 쓰다 보니 분량이나 형식에서 훨씬 자유로웠다”며 “등단할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썼다”고 말했다.
책 제목은 수록작 ‘밀회’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옛사랑을 우연히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국음식점에서 만난 주인공 남자가 1년에 한 차례씩 여자와의 만남을 이어나가는 줄거리다. 매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찾는 주인공은 남편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그녀를 7년 전에 다시 만났다. 그녀가 독일로 이주한 것은 남편이 ‘카푸그라증후군’이라는 특이한 뇌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 이 질환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을 보인다.
이민 전 경기 안양의 한 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남편은 취미로 시작한 레슬링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를 더 좋아했다. 어느날 제자와 스파링을 하다 남편은 학생의 기술에 걸려 허공으로 붕 떴다 매트 밖으로 떨어졌다. 이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며칠이 지나자 남편은 이상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었다.
작가는 “뚜렷이 표제작으로 삼을 만큼 전체를 아우르는 작품 제목이 없었다”며 “‘밀회’에 나오는 이 문구가 소설집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정보 유통이 급속도로 이뤄지는 첨단 정보사회에서 정작 연인간에도, 부부간에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오늘날 사회, 즉 ‘정보와 이해의 격차’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소설집에 실린 수록작들은 이 같은 ‘이해의 불가능성’을 여러 형태로 보여준다.
이번 소설집의 또 하나 특징은 ‘남녀간 사랑’을 다룬 작품들이 많다는 것. 작가는 “등단 초기부터 사랑 얘기를 본격적으로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다소 엄숙한 한국문학에서 신인 작가에게 요구하는 것이 알게모르게 있었다”고 밝혔다.
신인 작가가 사랑 타령만 늘어놓기엔 다소 눈치보이는 분위기였다는 말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남녀간 사랑을 소재로 많이 다룬 또다른 이유는 연인간에도 서로의 내면에 깊이 다다르기 힘들다는 점을 뚜렷이 보여주기 위함이다.
로봇과 ‘원 나잇 스탠드’를 하는 여자, 어느날 갑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가수, 휘발유 냄새가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은 부부의 이야기 등 현실에서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을 작가는 태연히 펼쳐 보인다. 김씨 특유의 현대적 감수성과 속도감이 돋보인다. 소설집에 실린 13편의 단편들은 형식에서도 매우 자유롭다. 두 페이지에 불과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중편에 가까운 분량의 작품도 있다.
1년7개월간 외국에 머물다 지난 연말 귀국한 작가는 오는 9월쯤 다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1∼2년간 머물 예정이다. 1995년 등단한 작가의 ‘빛의 제국’,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은 해외 10여 개국에서 번역·출간되는 등 외국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빛의 제국’은 오는 9월 미국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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