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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19. 09:18 생활의 지혜
인생의 깊이와 즐거움을 맛보라!
요ㆍ리ㆍ미ㆍ학 (下)
어느 케이블TV의 요리 프로그램 채널의 광고를 보노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있습니다.
“요리를 아는 자, 인생을 아는 자”라는 문구가 그것이지요. 요리를 먹기 위한 일련의 조리과정, 즉 기능적인 면으로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요리에 맛이 있고 그 맛에 희로애락이 담겨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단순히 원조집과 시시각각 변하는 맛집에 연연하는 깃털 같은 요리가 아닌, 요리에서 맛의 추억과 인생의 진리를 새록새록 꺼내는 묵직한 보따리 말입니다.
이쯤에서 던지고 싶은 질문 하나, 당신에게 요리의 미학은 어떤 것인가요?

Special Part 2

요리 마니아들의 요리 예찬론

“나에게 요리는 ○○다”

음식을 단순히‘먹을거리’로 규정했다면 오산이다 “.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그때 그 시간을 먹는다”는 어느 명사의 말처럼음식은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이 살아 숨쉬는 문화의 퇴적층이다. 따뜻한 밥 한그릇이 어느 사람에겐 소중한 추억이요,
자신을 대변하는 정체성이자, 화해와 위안의 소우주다. 쓴맛, 단맛 등 희로애락의 집결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요리에 마음을 빼앗겨 새롭게 살아가는, 우리 시대 대표 요리 마니아들과 함께 지금부터 요리 예찬론을 시작한다.

국내 1세대식 환경디자이너 황규선 회장
나에게 요리는 자부심이다.

푸드코디네이터, 푸드 스타일리스트, 식환경디자이너 등 국내 최초로 푸드 스타일링 개념을 들여온 사람. 한국식 환경디자인포럼 황규선(59) 회장이다.
식환경디자이너란 주방, 식탁 등 먹는 활동에 관계된 식(食) 공간을 테마에 맞게 연출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테이블 세팅뿐만 아니라 음식의 맛과 특징, 모임의 성격, 나아가 계절이나 날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식공간을 연출한다. 요즘에야 국내 1세대식 환경디자이너로 손꼽히지만, 그녀 역시 처음부터 식문화에 대한 존중(?)감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30여 년 전주재원으로 발령난 남편과 함께 일본에서 살았어요.
당시만 해도 요리를 ‘삼시 세 끼 때우는’ 정도로 여겼죠.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더라고요. 평범한 주부라도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어요.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여긴다고 할까요? 신선한 충격이었죠.”

황규선 회장은 일본 생활 초창기에 동네 아줌마들과 정기적으로 점심모임을 가졌다. 특이하게도 각자 도시락을 싸왔다고. 황회장은 가족이 없으면 대충 끼니를 때우는 여느 아줌마들처럼 아무렇게나 집에 있는 반찬으로 도시락을 싸갔다가 깜짝 놀랐다.

“평범한 도시락인데도 각기 다른 집안의 문화가 숨어 있었어요. 자기만을 위한 요리인데도 규모가 있고, 가치가 담겨 있었죠. 화려한 음식이 아닌데 그 집안의 스토리가 느껴졌어요. 참 신기하죠? 우리 나라는 잘사는 조건 1순위가 수입이잖아요. 하지만 일본에선 대대로 내려오는 요리가 있는지 따져요. 그만큼 식문화의 가치를 일찍 깨우친 거죠.”

영문학을 전공한 그녀가 식환경디자이너로 급선회한 것도 식문화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 있었기 때문. 물론 처음부터 관련 직업에 종사하기 위해 시작한 건 아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틈틈이 오치아이 나오코테이블 코디네이트스쿨, 마루야마 요코테이블아트 등 관련기관에서 공부를 했고, 후쿠오카 유니버사이드주최 <식탁의 미학> 전에서 한국 식탁을 출품하는 등 각종 대회에 참여해 경력을 쌓았다. 이러한 경험들이 한국에 서식공간 디자이너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밑거름이 될 줄은 본인도 몰랐다고.

“1998년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제가 배운 식문화에 대한 정보를 엄마들과 공유하고 싶었죠. 새로운 식문화를 이끄는 주역은 주부들이거든요. 숙명여자대학교 디자인 대학원, 신라호텔 등 각종 관련기관에서 수업을 진행했어요.
처음에는 대부분제가 모은 식기들에 관심을 보였죠. 하하하.”

다행히 10여 년 전만 해도 푸드 스타일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던 엄마들도 요즘에는 180도 달라졌다고. 황규선 회장은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단순히 굶주림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여겨지던 요리가 식문화로 격상되는 현실을 체감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결혼 뒤 주부들은 자기를 표현할 기회가 점점 사라지잖아요. 요리로 자신을 표현해 보세요. 어렵다고 느낄 필요가 전혀 없어요. 아파트단지에 핀 민들레도식공간을 새롭게 꾸밀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됩니다. 중요한 건 마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마음이 담긴 요리는 세치 혀가 아닌,몸이 기억합니다.”

한식의 세계화에도 각별한 관심이 있는 황회장. 우리 나라 대표 음식인 비빔밥조차 나물, 고기, 달걀 등 음식 세팅이 규격화되지 않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사진은 한국식 환경디자인포럼에서 제안하는 비빔밥 세팅법. 비빔밥에 음양오행의 철학을 도입해 북쪽에는 검은색 계통인 고기와 버섯을 남쪽에는 붉은색 계통인 당근 등을 놓도록 했다.

감동과 추억을 조리하는 이수연 요리연구가
나에게 요리는 리액션이다.

“나에게 요리는 리액션이다”
용인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난, 생활요리연구가 이수연(38)씨. 그녀가 전하는 요리 예찬이유는 지극히 감성적이다.
“요리연구가로 활동한 뒤 손목인 대가 늘어나고, 목디스크, 주부 습진 등 각종 병에 시달리고 있죠. 그런데도 요리는 포기할 수 없더라고요.”

그녀가 요리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요리과정을 통해 음식이 완성됐을 때 사람들의 반응 때문이란다. “와!” “음~”
“이 맛이야…” “맛있어요!”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감동섞인 ‘리액션’은 그녀가 요리를 사랑하고 예찬하는 원동력이 됐다.
“저희 친정엄마가 종갓집 며느리예요. 하루가 멀다하고 제사상을 올리고 명절에는 진귀한 음식들을 차려내시는데 그 푸짐함도 놀랍지만 맛이 정말 좋았죠.”
가족은 엄마가 차려준상을 받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맛있다, 또 먹고 싶다, 이거 무엇으로 만들었냐, 엄마는 요리사”라는 칭찬과 함께 말이 다. 자칫 노동으로 평가 절하될 수 있는 요리의 과정이 숭고한 작업이 되는 순간이다.
“그게 요리의 진정한 미학이 아닐까 싶어요. 엄마도 가족의 그런 리액션에 힘을 얻고 한평생 요리를 즐기셨는지도 모르겠어요.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란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요리로는 가능해요. 정성을 쏟아 마음을 담으면 어떤 것보다 오래 남을 감동을 줄 수 있죠.”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경영학과 출신의 평범한 주부에서 인기 요리 선생으로 변신한 이력이 이내 이해가 간다. 이렇듯 요리에 살고, 요리에 웃고 운다는 그녀에게 철학이 있는 요리가 무엇인지 물었다.

“엄마가 싸 주신도시락이오. 찬합을 열면 찰밥에 달걀말이, 장조림,김치볶음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친구들은 제도시락을 보며 환성을 질렀죠.”

도시락은 누구에게나 설렘이고 기다림이며 기쁨을 준다는 게 이수연씨의 도시락철학. 작은 감동이 ‘요리=정성’의 공식을 증명해 주는 것은 아닐는지.

‘요리를 잘한다’는 기준은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좌우된다고 말하는 그녀.
제철채소를 이용, 적기에 장아찌를 담그고 철철이 마련하는 김치는 노력 없이 제 맛을 낼 수 없단다.

“요리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타인의 맛에 대한 감동 그리고 정성과 노력이 어우러진 것 말입니다.”
‘맛있다’의 동의어는 ‘감동’이라고 말하는 그녀. 간단한 요리라도 그 안에 타인을 향한 정성이 있다면 감동적인 요리일 수 있단다. 요리는 거창한 수식어가 필요 없는 순수한 마음이 그려낸 예술 작품이라는 이수연 씨의 얘기를 듣자니요리가 식문화가 아닌, 미학으로 다가선다.

생명의 밥상을 차리는 이명희 대표


나에게 요리는 생명이다.

“10여 년을 워킹 맘으로 사는 게 쉽지는 않았죠. 업무 스트레스로 심신이 지쳐 가던 저에게 요리는 생명과 같았습니다. 남들은 쉬면서 스트레스를 풀지만, 저는 휴식을 ‘변화’라고 생각해요.
본업이 아닌 다른 새로운‘무엇’을 할 때 심신의 평온을 얻죠. 그‘무엇’이 저에겐 요리였어요.”
프랑스 레스토랑 부케 가르니 이명희 대표의 말이다.6년 전 수입의류관련 일을 그만두고 매사에 의욕을 잃었던 그녀에게 요리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작은 요리 하나에도 온몸이 쩌릿쩌릿할 정도로 행복했다. 남들에겐 지극히 평범할 수 있는 ‘,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세포 하나 하나 살아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제가 요리할 때 활력이 넘치니까 남편이 덩달아 즐거워해요. 하루는 저에게 숙명여대 르꼬르동블루에서 요리를 배워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더군요. 당연히 좋다고 했죠.”르꼬르동 블루는 11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 요리학교. 해외 출장 당시 그곳의 명성을접한 터라 한번쯤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온 터다.
“수업료가 꽤 비쌌어요. 남편은 얼마 되지 않는 입학금을 수업료로 착각해서 저에게 권했죠. 후후. 취미삼아 하는 요리에 돈을 많이 쓴다는 게 부담은 됐지만, 두 눈 딱 감고 신청했어요. 엄마들이 자신만을 위해 온전히 투자하는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젊은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고 수업을 듣고, 다양한 식자재를 접할 수 있어 하루하루기뻤다고 ‘. 요리홀릭’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배움의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요즘 네팔, 아프리카 등에 의료봉사활동을 나가요. 저는 의사 선생님들 요리담당이죠.
그런데르꼬르동 블루에서 배운 요리 지식이 도움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현지에선처음 보는 식자재가 대부분이에요. 요리할 때르꼬르동 블루에서 습득한 식자재정보들 덕을 톡톡히 봤죠. 의사 선생님은 물론 현지 아이들이 제가 만든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할 때의 그 기쁨이란….”

덩달아 건강상태까지 좋아졌다. 요즘이 명희 대표의 관심사는 ‘매크로바이오틱’이다. 동양의 자연 사상과 음양 원리에 뿌리를 둔 식생활법으로, 제철 음식과 유기농곡류,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한다. 텃밭에서 가꾼 제철식자재로 만든 소박한 음식들로 식탁을 채우니 자연건강해질 수밖에.

이처럼 요리의 힘을 체득한 이 대표에겐 또 다른 꿈이 생겼다 ‘. 생명의 밥상’을 테마로 한 식당을 여는 것. 프랑스 음식만으로 식당을 꾸리려니, 본인의 요리 철학을 펼치는데 한계가 느껴져서다.

이 대표는 대박신화에 빛나는 식당을 꿈꾸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나누며, 요리에 대한 배움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로 생명의 밥상을 채워갈지, 이 대표는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며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심정민 리포터equest0863@naver.com
SPECIAL (2011년 07월529호) ⓒ www.miznaeil.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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