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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21. 10:41 살며 사랑하며

집단 출가한 서울대 출신 스님들의 ‘특별한 해후’

기사입력 2011-08-20 03:00:00 기사수정 2011-08-20 09:03:57

“동아리서 만났다… 불교에 꽂혔다… 그후 코 꿰였다”

“일묵 스님이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강 거사에게 큰절을 하면서 ‘스승으로 모시겠습니다’ 이랬죠.”

“맞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차례로 일어나 절을 했죠. 코가 꿰인 거죠.”

“20년 가까운 일이 됐네. 기억력들도 좋네.(웃음)”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제따와나 선원’(www.jetavana.net). 스님 10명과 재가불자 3명이 18년 전 얘기로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다.

1993년 12월 4일, 서울대 불교동아리 ‘선우회’ 회원 10여 명은 부산 광안리 근처 강정진 씨의 집을 찾았다. 재가불자로 평생 치열하게 수행한 강 씨의 구도기 ‘영원한 대자유인’을 읽고서 그를 만나려고 내려온 것이었다. 오후 4시경 시작된 학생들과 강 씨의 대화는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 날 오전까지 계속됐다.

그것이 계기였다. 3년 뒤인 1996년 일묵 스님(서울대 수학과) 등 3명이 잿빛 승복을 입은 것을 시작으로 선우회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10여 명이 잇달아 출가했다. 행정고시 합격자, 수학박사, 유학을 앞둔 경제학도 등 장래가 촉망되던 터였기에 이들의 출가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어 선우회가 중심이 된 불교수행학교에서도 여러 출가자가 나왔다. 2003년에는 일묵, 종원, 명인 세 스님을 주인공으로 한 KBS 다큐멘터리 ‘선객’이 방영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날 승속(僧俗)이 어울린 특별한 모임은 제따와나 선원장으로 21일 오전 10시 반 선원 이전 법회를 여는 일묵 스님을 격려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들의 대화는 세월을 뛰어넘어 격의가 없었다.

“스님, 요즘 어디 계세요?”

“여기요.”

최근 근황을 묻자 선문답(禪問答)으로 이어졌고 이내 “아이고 스님, 졌어요. 절묘한 대답”이라며 박장대소가 터졌다. 선방에서 집중적으로 참선수행하는 하안거(夏安居)를 마친 스님이 많아 수행 경험을 둘러싼 이야기가 많았지만 세속적인 관심사도 대화 중간 중간을 수놓았다.

“2개월이 채 안 돼 선원을 이전하느라 쉽지 않았는데 A 스님의 덕을 많이 봤어요.”(일묵 스님)

“부동산 중개수수료가 3%인가요. 계좌번호도 알려 드릴까요. 하하.”(A 스님)

“A 스님이 대학시절 딴 공인중개사자격증 있잖아요. 그래서 무조건 시키는 대로 했죠.”(일묵 스님)

출가 여부를 두고 고민하던 젊은 시절의 기억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95학번 동기인 혜안 스님과 일성 스님은 하안거 수행 경험을 주고받으며 지인들의 소식을 물었다. 태국과 미얀마 등에서 공부한 혜안 스님은 “오랜만에 도반들을 보는데 모두 얼굴이 밝아서 수행에 큰 진전이 있는 것 같아 즐겁고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들이 출가할 당시만 해도 녹록지 않은 절집 생활을 감당하겠느냐는 말도 나왔지만 기우였다. 선우회 출신의 경우 군 문제로 3개월 만에 퇴속(退俗)한 1명을 빼면 나머지 12명 모두 선방 등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하고 있다.

광안리 만남 이후 대학생이던 이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강 씨와의 인연은 2003년경 끊어졌다. 일묵 스님은 “스님들이 출가 이후 성장하면서 법(法)의 인연이 자연스럽게 정리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오기 위해 출국을 미룬 채 선우회에서 만나 결혼한 부인과 동행한 이승환 씨(미국 거주)는 “같이 공부한 도반들이 출가해 자랑스럽다”며 “미국 땅에서도 쉽게 한국불교를 접할 수 있도록 스님들이 더욱 정진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승속이 어우러진 이들의 만남은 이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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