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고 믿을 만큼 이름은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예로부터 귀함을 나타내거나 장래의 바램을 담아 한자로 이름을 짓고, 최근에는 불리기 편하고 정감 어린 단어로 한글 이름을 지어 좋은 운을 기대하곤 한다..
이런 의미가 요즘 PC 시장에도 종종 적용된다. 단순히 제품 구분만을 위해 이름을 짓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성능과 디자인을 쉽게 알리고 이를 고려한 마케팅 수단으로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유통사의 센스가 돋보이는 이름들을 살폈다.
사람의 이름처럼 제품에도 이미지 전달을 목적으로 제품명이 정해진다. 강조하고 싶은 제품의 성향이나 디자인을 제품명으로 정해 소비자들에게 제품에 대한 인식을 빠르게 전달하고자 한다.
▲ '샤방샤방한(양끝)'은하이그로시 광택을 강조하기 위해 정해진 이름이며, '불도저(가운데)는 이름만큼이나 강인함을 상징하기 위해 제품명이지어졌다. |
ODD가 상하향 방식으로 나오는 GMC의 ‘토스트’는 원래 R-2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빵을 구워 나오는 토스트기 모양을 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됐다. 전면에 동그란 빛을 발하는 ‘코로나’도 원 뜻인 광원을 강조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다. 토스트와 비슷한 형식의 ODD임에도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불도저’는 제품의 성능과 힘을 특수장비의 이름에서 착안했다. 비슷한 디자인임에도 이름에 따라 제품의 성능과 느낌을 다르게 전달한다.
▲ 'VAAX 안아파(왼쪽)'마우스는 성능에 초점이 맞춰진 이름이며, '웨이브 프로(오른쪽)'는 곡선미의 디자인을 강조한 이름이다. |
곡선형 디자인을 가진 로지텍의 '무선 데스크톱 WAVE PRO' 키보드는 제품 이름에서 그 디자인을 연상할 수 있다. 또 ‘VAAX 안아파’ 마우스는 제품이름을 들었을 때 마우스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하며, 하이그로시의 광택을 강조한 BIGS 케이스는 샤방샤방한, 깔끔쌈박한 등의 이름으로 제품의 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강조한다.
GMC의 문영준 과장은 “제품의 이름만 들어도 그 제품의 생김새와 스펙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라며" 제품의 성능과 디자인을 고려해 제품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딱딱한 PC제품명을 숫자나 영어로 길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기 편한 한글 이름으로 제품군을 나누기도 한다. 보기 편한 한글이름의 제품이 친숙도를 높여 구매의욕을 더 자극하고 매장에서 구입할 때도 기억하기 쉬운 장점이 있어 최근 유행하고 있다.
▲ 이엠텍은 그래픽카드 '제논 제포스 9000시리즈'에 한문의 이름을 한 자씩 달아 통일감을 주고 있다. |
그래픽카드 유통사 이엠텍은 시리즈마다 제품의 통일성을 두어 제품명을 정하고 출시한다. HV 지포스 시리즈는 ‘착한 놈’, ‘대단한 놈’, ‘멋진 놈’, 등으로 이름을 지었다. 기억하기 쉬운 것은 물론이고 제논 지포스 9000 시리즈의 스펙을 길게 설명 하지 않아도 제품명만으로 쉽게 설명하고 구매할 수 있다.
또한 제논 지포스 9000 시리즈에도 강할 ‘강(强)’, 착할 ‘선(善)’, 빼어날 ‘수(秀)’, 밝을 ‘명(明)’처럼 한문의 한 글자씩 이름을 달아 판매하는 등 이름을 내세운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렉스텍 또한 ‘블랙라벨’과 ‘소울’이라는 이름으로 제품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엔비디아 고급유저를 겨냥한 제품군 ‘블랙라벨’은 고급 청바지의 이름에서 착안됐으며, ATI제품군 ‘소울’은 정열과 영혼이라는 의미와 ATI의 붉은색 이미지를 심어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품의 이름만으로 제품군을 나누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엠텍의 오병찬 마케팅 팀장은 “상가 내에서도 제품명을 이야기하며 구매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사실 제품을 구입하는데 스펙을 길게 이야기 하는 것보다 제품명 하나로 제품군을 이야기 할 때가 더 편리하다”라며 “제품명은 어느정도 소비자들의 구매의사에 영향을 영향을 미친다”라고 말했다.
제품명은 경쟁사와 차별을 주기도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그래픽카드 제조사 브랜드인 지포스와 라데온이다. 지포스라는 이름만으로 엔비디아를 떠올리고 라데온이라는 이름만으로 ATI를 연상케하는 일은 제품에 대한 경계와 제조사를 구분 짓는 역할을 한다.
PC부품들은 대부분 수입 물품으로 이뤄져 유통회사에 의해 판매된다. 이 과정에서 제품명은 제원을 이름으로삼아 출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제품특성에 대해서는 쉽게 알겠지만 기억하기 어렵고 친밀도도 떨어뜨린다.
특히 한글 이름이 아닌 영어와 숫자로만 이뤄진 스펙명의 제품은 딱딱하고 어려운 제품으로 느껴지게 한다. 초보자들이 PC를 어려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픽 카드 유통사 렉스텍의 김동원 팀장은 “제조, 유통 업체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해도 제품명은 쉽게 인지하기 때문에 제품명을 아는 과정에서 회사이름을 아는 경우가 생긴다. 또 경쟁사와 구분 짓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케이스 유통업체 빅스테크놀로지의 경우 ‘샤방샤방한’ ‘깔끔쌈빡한’ ‘완전소중한’처럼 통일성 있는 제품명으로 이름만 봐도 이 회사 제품인 것을쉽게 알 수 있다. |
하지만 아직도 그래픽카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PC 부품들은 스펙을 줄줄이 늘어놓은 이름을 쓴다. 정확한 제원을 알려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초보자들에게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름 뒤에 쓰여있는 회사명까지도 스펙 명으로 혼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온디앤아이가 유통하는 '스파클 지포스 9500GT DDR2 512MB 잘만 가온'의 경우 이름 안에 세 개의 회사 이름이 섞여 있다. 스파클은 제조사고 잘만은 쿨러 회사를 뜻한다. 맨 뒤의 가온은 유통사다.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단번에 알아듣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6년 전 PC부품의 케이스에서 한글이름의 제품이 출시돼 소비자와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일이 있다. 숫자와 영어로 조합된 제품들 중에서 한글이름의 등장은 신선함을 불러일으키면서 딱딱한 IT제품에 대한 친숙도를 높인다.
그래픽 카드를 자주 구입하는 서동훈(25)씨는 “영어와 숫자로 조합된 제품명은 보는 것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라며 “제품명을 간단하게 적어놓은 제품은 제품에 대한 인식을 쉽게 하고, 시리즈 별로 구분해놓은 제품명은 회사명까지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게 만든다”고 말했다.
제품군과 제품별로 이름을 지어주는 유통사의 센스는 소비자들이 기억하기 쉽고 구매의욕을 자극시킨다. 엔비디아의 지포스처럼, ATI의 라데온 처럼 브랜드명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일은 유통사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다. 제품에 대한 인식과 회사에 대한 힘을 길러주는 원천이 되기때문이다.
다나와 정소라 기자 ssora7@dana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