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25. 11:28
세상사이야기

가야금 명인 황병기
황병기가 가야금을 처음 만난 건 6·25로 부산에 피난 해 있던 시절, 한 고전무용연구소에서였다. 가야금 소 리에 마음을 빼앗긴 그의 음악 인생은 그렇게 해서 시 작됐다. 황병기의 음악 세계는 신비로운 영감으로 가득 한 동양의 수묵화와 같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예 술을 향한 끝없는 탐험을 해나가고 있다.

장한나는 리게티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연주했고, 그날 가야금 명인 황병 기도 공연장을 찾았다.
“리게티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는 음악 애호가들에게도 쉽지 않은 작품이 지. 그러나 객석은 꽉 찼어. 그곳에 모인 관객 모두가 두 시간짜리 무반주 첼로 무대를 지루함 없이 감상하며 리게티의 음악을 백분 이해했을까. 나는 아니라고 봐. 음악만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이끌려 거기 모였을 게야. 그 것이 바로 기획의 힘이지. 국악도 마찬가지야. 전통에 담긴 정신은 지키되, 어떤 방법으로 대중에게 다가서냐를 고민해야 해.” 올해로 70세를 맞은 국악계의 원로는 아직 20대인 기자 앞에서 마케팅 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었다. 젊은이들만큼이나 깨인 생각을 가진 황병기 앞에서, 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년 후 ‘2005국악축전’ 기자 간담회에서 황병기를 다시 만났 다. 점심 식사를 겸한 자리라 몇몇 행사 관계자들과 함께 둥근 테이블에 모 여 앉았다. 서먹한 분위기에 어울릴 만한 의례적인 덕담들이 오가고, ‘좀 지루하다’고 느끼며 천천히 밥을 씹고 있는데 무슨 얘기 끝에 황병기 선생 이 입을 열었다.
“사람이 너무 똑똑해 보여도 안 돼. 조금은 바보스러운 면이 있어야 마 음을 열게 되지. 나보다 잘나 보이면 경계를 하거든.” 소탈하고 덤덤한 그의 한마디에 무겁던 공기가 순간 가벼워졌다. 괜히 신이 나 기자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럼 선생님을 인터뷰할 때는 어눌해 보일수록 더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네요..” “허허. 어눌하지도 않은데 어눌해 보이려고 하는 게 어디 쉽나. 그리고 그냥 바보스러워서는 안 되지. 뭔가 부족해보이면서도 진실된 노력이 엿보 일 때 ‘저 사람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저렇게 더 열심이구 나.’ 하면서 마음을 열게 되는 거야.”처음 만났을 때 황병기는 “전통에 담긴 정신은 지키되 대중에게 다가서는 방법은 늘 새롭고 쉬워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 만 남에서는 “사람을 대할 때 조금 어눌해 보 이되 그 마음은 늘 현명하고 진실 되라”고 주문했다. 두 가르침 속에는 하나의 뜻이 있다. 겉은 세상 돌아가는 데 맞춰 유연해 야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혼은 변치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악 대중화에 주저함 없다 이러니 황병기가 국악 분야 단일 사업으로 는 가장 규모가 큰 ‘국악축전’의 수장을 맡 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국악축전은 ‘젊 음과 참여’를 주제로 대중들이 좀 더 쉽고 편하게 우리 음악에 다가설 수 있도록 도와 주는 복합 문화 잔치다. 특히 ‘옛것은 느리 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꼭 필요한 문화 행사라 할 수 있 다.
국악축전은 첫 회였던 지난해, ‘종뻈무진 우리음악’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10월 1일 부터 10일까지 성황리에 개최돼 국악의 대중화에 크게 일조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예산도 늘고 기간도 길어졌다. 전국 11개 도시에서 14회에 걸 쳐 열리는 국내 공연, 사할린과 베트남을 찾는 해외 공연, 창작국악 경연대 회, 국악 애니메이션 DVD 제작 및 보급 등 사업도 늘어났다. 그리고 전면 에는 젊은이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신세대 국악인들과 대중음악인들이 서 있다. 겉으로 봐서는 양적 저울에서 전통이 퓨전과 대중음악에 밀린 게 아 닌가 싶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룀로서는 대중 스타를 앞세워 사람들의 이목 을 집중시키고 그 다음 은근슬쩍 우리의 참된 멋을 내세우는 게 최선의 방 법일지도 모른다.
처음 황병기가 이 행사의 조직위원장을 맡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주변에서는 전통과 젊은 판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 궁금해 했었다. 그러 나 앞서 말했듯, 황병기는 국악이 대중에게 다가서는 데 있어서 주저함이 없는 사람이다. 지난 40여 년 음악 인생을 되돌아봐도 그는 늘 신선한 발 걸음으로 저만치 앞서 갔다.
황병기는 1936년 5월 서울에서 태어났다. 재동초등학교 시절 노래에 재능을 보였던 그는 음악반에서 활동했는데, 1948년 정부 수립식 당시 중 앙청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소년 합창단에는 그도 끼여 있었다. 노래 부르기 를 좋아하던 어린 소년은 중학생이 되자 ‘나도 악기 하나쯤 제대로 다뤄봤 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그러나 당시 교과 과정에서 가야금이란 악 기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역사 시간에 가야금이란 악기가 있 다는 사실 정도만 배웠을 뿐이다.
그러던 중 6·25가 일어나 부산으로 피난해 있던 시절, 황병기는 한 고전무용연구소에서 가야금 소리를 처음 듣게 된다. 소리는커녕 생김새조차 낯선 악기인 가야금 앞에서 황병기는 발을 돌릴 수가 없었다. 가야금에 마 음을 빼앗긴 그의 음악 인생은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처음으로 가야금의 소리를 들려준 고전무용연구소 노인에게 황병기는 가 야금을 배웠다. 그리고 부산 용두산에 있는, 역시 피난해온 국립국악원에 다녔다. 하교 길에 국립국악원으로 직행, 가야금을 만지다 귀가하는 생활이 꽤 오래 지속됐다. 그렇게 청소년 시절을 보낸 황병기는 대학에 진학할 나 이가 되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그의 법대 진학은 이상한 일 도 아니다.
법학을 통해 얻은, 음악을 향한 더 넓은 가슴 요즘 세상에야 ‘부모님이 음악을 못하게 해서’, ‘취직하기 좋은 과에 들어가 기 위해’음악 전공을 포기한다는 말이 있지, 당시 대학교에는 국악과조차 없 었다. 황병기 자신도 음악이 그냥 좋아서 한 것이지 전공하겠다거나 세계적 인 음악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가야금은 그저 생활이었다. 그래 서 법을 공부하면서도 악기를 놓지 않았다. 법학 공부는 오히려 음악을 대하 는 가슴을 더욱 넓게, 귀를 더욱 크게 만들어줬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세상 살아가는 모양새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세상에 대한 관심은 곧 나 자신 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예술은 결국 나 를 찾는 과정이 아닌가.

황병기의 용기와 기호가 빚어낸 음악들 은 다행히 대중의 마음에도 깊게 와 닿았 다. 국내에서 첫 음반을 발매한 이후 벌써 1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음반들은 국 악 음반 중 유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스 테디셀러다. 첫 번째 음반은 아이러니컬하 게도 1965년, 우리 땅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출반됐다. 국내에서는 이보다 13년 뒤진 1978년‘황병기 가야금 작품집’이란 타이틀로 처음 소개되었는 데, 이 음반에는 우리 음악 최초의 창작 현대 가야금 작품인 ‘숲’(1963)이 수록돼 있다. 이후 황병기는 1993년까지 총 4집의 가야금 작품집을 선보 였으며, 현재는 ‘초기연주집 가야금’, ‘침향무’, ‘비단길’, ‘미궁’, ‘춘설’ 등 총 5장의 CD를 통해 그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황병기의 작품 중 인터넷을 비롯해 세간에 가장 자주 회자되는 것은 다 름 아닌 ‘미궁’이다. 인터넷 검색 창에 ‘미궁’을 쳐보면 ‘이 곡을 들으면 미 친다는데’, ‘귀신을 본다는데’등 황당한 질문들이 올라와 있는 것을 심심찮 게 볼 수 있다. 물론 세계 현대 음악계의 흐름을 살펴봐도 이미 오래 전부 터 작곡가들이 소음, 퍼포밍 등 안 해본 시도가 없을 정도다. 무대 위에서 자동?의 타쳀어를 두드리기도 하고, 타악기 스틱을 입에 넣고 입 모양을 바꿔가며 요상한 소리를 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30년 전의 한국에서 시도된 황병기의 ‘미궁’은 당시 청중들에게 대단히 충격적인 작품으로 다가왔다. 21세기를 맞이한 현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궁’을 처음 듣는 이들은 백이면 백, 소름 돋는 생경함을 맛본다. 서정주 작시로 황병기의 가야금과 장구, 김경배의 창, 홍종진의 대 금, 김선환의 거문고가 함께 하는 ‘미궁’은 홍신자의 괴기스러운 웃음소리 와 흐느낌이 등장하는(전체 18분 중 4분을 조금 넘긴) 시점에서부터 듣는 이에게 공포나 충격으로 다가온다. 홍신자의 목소리는 마치 귀신의 소리처 럼 머릿속을 휑하게 만들지만 긴 울부짖음 끝에 그녀가 던지는 말은 현 시 대를 살고 있는 민초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황병기 공식 홈페이지에 오른‘ 미궁’가사에 대한 황병기의 글은 다음과 같다.

‘미궁’은 술·담배·커피처럼 성숙한 사람들 위한 것 황병기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오른 글들에 ?해 친절히 ?해주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세상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미궁’인 만큼 황병기는 작 품에 대한 자세하고 솔직한, 동시에 가장 정확한 답변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그 는 “이 곡을 듣고 미쳐 죽어나간 사람이 있 다는데, 사실이냐”는 질문에 “한 사람도 없 습니다. 미궁을 들으면 죽는다는 말은 허약 한 사람들이 지어낸 헛소문입니다”라고 답 한다. ‘미궁’을 처음 들었을 때 느끼는 공포 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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