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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9. 16:57 영화와 스토리

[리뷰] <마루 밑 아리에티> 그저 생생하고 아름다운 지브리 동화

[맥스무비 2010-09-06 20:25]
[리뷰]  그저 생생하고 아름다운 지브리 동화
[리뷰]  그저 생생하고 아름다운 지브리 동화
[맥스무비=김영창 기자]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이 손을 뻗지 못하는 곳이 어디 있으랴. 이번에는 마루 밑이다. 그곳에 누가 사는가 하면, 작은 인간이 산다.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의 삶을 살고 있는 소인들이 거기 산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소인 소녀 ‘아리에티’와 인간 소년 ‘쇼우’가 교감을 나누는 이야기다. 그것은 우정 같기도 하고, 사랑 같기도 하다. 둘의 만남을 주선한 것은 일종의 ‘사고’였다. 인간의 물건을 빌려서 살아가는(훔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소인들이 떠받드는 제일의 철칙은 결코 인간의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는 것. 하지만 아리에티는 그것을 어기고 결국 쇼우의 눈에 발각되고 만다.

아리에티가 쇼우에게 정체를 들키는 장면을 보자. 쇼우는 아리에티를 정면으로 응시할 법도 한데, 그저 딴청을 피우 듯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말을 건다. 혹시 그녀가 도망칠까 봐서 같다. <마루 밑 아리에티>의 근간을 이루는 사려와 배려를 보여주는, 정말 사소하지만 매우 단적인 증거다.

사실, <마루 밑 아리에티>의 이야기를 이끄는 것은 쇼우의 유년 시절 기억이다. 당시 심약한 소년은 요양차 방문한 시골 집에서 소녀를 만났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궁금해지는 것은 아리에티의 ‘그 후 이야기’다. 하지만 그건 알 방도가 없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존재가 선물한, 하지만 아리에티의 키보다 몇 뼘은 더 클 그리움은 쇼우 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현재의 곤경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수 있는 제작사가 어디일까? 그림체만 보고도 알아챌 조금은 싱거운 질문이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지브리의 인장은 영화 여기저기에 선명하다. 판타지 소재야 지브리의 전매특허가 되다시피 한 것. 대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국내에서도 크게 성공한 전작들과 비교하자면, 이번 상상력은 오히려 소박한 편이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현실에 없을 법한 소인을 소재 삼았으나, 그들은 크기를 제외하고는 인간과 비슷하달 수 있다. 하지만 영화가 선사하는 각종 재미는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다. 소인과 인간의 대비, 그 중에서도 크기의 차이가 막중한 역할을 한다. 인간이 사용하는 일상의 물건들은 때로 장관이 되기도 하고, 때로 위압이 되기도 한다. 마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마루 밑 아리에티>가 구축한 판타지의 진수다.

기왕 지브리의 수장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연출했을까 싶지만, 그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서정적인 주제와 감독의 필치를 꼭 닮은 그림이 오해를 부추긴다. 그런데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브리에서 애니메이터로 일해온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감독 데뷔작이다. 이번 작품은 하야오의 적자임을 과시하는 히로마사 감독의 야심작이며, 하야오 역시 각본을 맡아 그것을 도왔다.

촌각을 다투며 3D 애니메이션을 쏟아내는 요즘이다. 하지만 지브리는 앞으로도 3D 작품을 만들 생각이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수작업의 셀 애니메이션으로 끝장을 보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진다. 괜한 호기가 아닌 것이, 그들이 믿는 구석은 얼마든지 많다. <마루 밑 아리에티>도 유력한 증거다. 향기로운 풀, 따사로운 햇살, 찰랑거리는 시냇물 등등. 3D 안경을 쓰지 않고서도 손을 뻗쳐 만져보고 싶고, 코를 내밀어 냄새맡고 싶어질 만큼 모든 것이 그저 생생한데 말이다.
posted by bluew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