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25. 23:31
연예와 문화
[한겨레21] [레드 기획] 60에 70에 90에 시를 쓰기 시작한 사람들…
‘남아 있는 나날’을 헤아리며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매일의 힘’
마감이 됐다는데도 직원에게 졸라서 들어간 문학강좌반. 선생인 김용탁 시인(김용택)이 묻는다. 시를 써보신 분? 10여 명 학생 중 한 명이 손을 든다. 시를 한 편도 안 써보신 분, 하고 묻자 대부분의 학생이 손을 든다. 미자(윤정희)도 쭈뼛거리며 손을 든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2010)의 앞부분이다.
시가 쉽지 않다. ‘여러분은 사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선생의 말을 듣고 미자는 사과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러다 사과를 깎는다. “사과는 역시 보는 것보다 깎아먹는 거야.” 선생께 물어도 보았다. “시상은 어떻게 오는 건가요?” 미자는 메모장을 가지고 다니며 떠오르는 대로 적는다.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한 달 예정인 강좌의 숙제는 한 편의 시 쓰기다. 마지막 날 선생은 시를 써오신 분, 하고 묻는다. 손을 드는 사람이 없다. 단상에 꽃을 놔두고 자리에는 없는 미자만 시를 냈다. 그 전날 부엌에서 열심히 쓴 시다. 제목은 ‘아녜스의 노래’.
두서없던 감정을 정리하니 시가 되네
전순예(66)씨는 <시>를 극장에서 보았다. 죽은 여자애를 찾아다니고, 그 아이를 위해 시를 쓴 것이 감동적이었다. 전씨도 시를 쓴다. 초등학교 때 백일장에서 상을 받기도 했는데, 60이 넘어서야 다시 시를 쓰게 됐다. 자식들이 사다준 시집을 읽고, 끼적끼적 조금씩 썼다. 좋은 풍경을 봤을 때, 혼자 길 가다가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 누군가 그리울 때, 화가 날 때, 내 힘으로 뭘 어쩌지 못할 때, 그런 감정들을 삭이고 굴리다가 정리한다. 지난해 남편을 따라 베트남으로 떠날 때의 공항 풍경은 시가 됐다. 제목은 ‘공항의 이별’이다.
“친구야 잘 가 잘 있어/ 손 흔들며/ 1분도 안 되어 출국하고// 한참을 기다려/ 멀리 떠가는/ 비행기 배만 바라보고/ 허탈한 한숨을 쉰다// 차라리/ 먼먼 옛날/ 친정 온 딸 고갯마루까지 배웅하고/ 멀어져가는 뒷모습 바라보며/ 어서 가거라 보일락 말락/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는/ 싸한 이별이라도 좋으련만// 칼 같은 공항의 이별이 서럽게 한다/ 먼먼 기억 속으로 묻힐 이별이// 새록새록 생각날/ 공항의 이별이.”
김용자(72)씨는 얼마 전 시집을 냈다. <푸른 침묵은 무죄다>(책나무 펴냄)라는 상큼한 제목을 달고 있다. 2005년 처음 시 강좌를 들었다. 경기 평택에 있는 남부복지회관에서다. 시 강좌는 일주일에 한 번 있다. 정해진 입학도 정해진 졸업도 없다. 12명으로 시작한 친구들은 지금 8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몇 년을 어울려 시를 짓고 보여주고 품평해준다.
김 시인은 안성에서 나 평택으로 시집왔다. 시집올 당시의 집에 지금도 그대로 살고 있다. “학교는 요즘으로 말하면 초등학교를 나온 게 다다. 한 가지, 내가 책을 놓지는 않고 살았다. 그것밖에는 없다.” 마당가, 집, 밭에서 일하고, 놀러가서 느껴 적은 것을 모으니 100편이 됐다.
‘내 손’은 “늘 내가 하자는 대로 순종하며/ 나를 지켜”온 비명 지르는 손에 보습크림을 바르며 지은 시다. ‘하얀 고무신’은 하얀 댓돌 위에 놓여 있던 신들을 회상하며 지었다. 가족이 딸려 들어왔다. “희미한 등잔불 아래서/ 구멍 난 세월을 꿰매시던 어머니/ 앉은뱅이책상에 붙어 하품하던 둘째와/ 할머니 사랑에 기대어 잠든 막내/ 조약돌 같은 꿈길을 더듬을 때면/ 마실 다녀오시는 아버지의 발자국 들리곤 했다.”
그는 시에서 시를 쓰는 이유를 말한다. “시를 쓰는 것은 나를 찾기 위함이다/ 내 안의 미로를 따라나서는 일이다/ 원과 선을 따라/ 추억과 그리움을 따라/ 심중에서 그어지는 획을 따라잡는 일이다/ 제 그림자를 내렸다 거둬들이는 산처럼/ 움트는 기억 속의 나를 들여놓는다.”(‘나를 찾는다’ 일부)
시집에 해설을 쓴 진춘석 시인은 김용자 시인이 그간 지냈던 삶의 침묵을 “태양광 스펙트럼”이라고 말한다. 꽃을 좋아하고 나무를 좋아하는 시인에게 걸맞은 표현이다. 진 시인은 김용자 시인의 시 쓰기가 두서없던 감정을 정리해주었다고 말한다. “시 창작 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시인의 내면 깊숙이 자리해 두서없이 떠돌던 감성적 인식들이 비로소 시인이 선택한 시어를 통하여 통일성 있게 질서를 획득하면서 대상과 세계를 평가하거나 해석하는 시인의 가치 기준적인 시선이 확립됐다.”
앞니가 빠지고 시를 쓰다
김진기(73) 시인은 2010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차우차우’로 당선됐다. 신춘문예 최고령 당선자로 기록됐다. 그의 당선 소감은 지나온 세월을 몇 자로 요약하고 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했으나 일에 바빠 시를 돌볼 틈이 없었다. 여유를 찾은 2007년부터 시를 붙잡았다. 그 사이 시는 “신출귀몰”해져 있었다. 평생교육원에서 시 창작 강의를 듣고 남들이 하루에 10편의 시를 읽을 때 15편을 읽으면서 공부했다. 그러나 당선 소감에서 그는 “정확한 길을 모르겠”노라 했다. 2011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 가지 시를 쓰려고 해보았다. 젊은 사람들의 시, 톡톡 튀는 시를 흉내를 내려고 공부를 했다. 그런데 역시 힘이 들었다. 그 역시 나이 든 사람은 맞는 시가 있는 것 같더라. 가능하면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시를 써야 되겠다 했다.” 거기에는 젊은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있다. 이를 테면, 앞니가 빠지는 일 같은 것. “단단하던 내 집/ 대문이 돌풍에 떨어져 나갔다/ 바람은 소리치며 안방까지 몰려온다/ 시린 바람이 내 가슴을 때린다// (…) 혀에 올려놓고 자근자근,/ 낯선 놈은 귀신같이 찾아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상처 입힐 말은 막아서고/ 분을 삭이지 못해 파랗게 떠는 입술/ 지그시 깨물어 달래던 문지기.”(‘앞니’, <우리 시> 2010년 5월)
그는 소설이 아니라 시를 택한 이유를 기력이 쇠해서라고 말한다. “그 나이에 어떻게 시를 쓸 수 있느냐고 사람들은 묻는다. 힘으로 하는 거면 안 되겠지만, 자기가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감성 가지고 하는 거니까,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시가 위로가 된다고 한다. “컴퓨터를 켜놓고 머릿속에 메모해놓은 것을 글로 써놓고, 완성해놓고 나면 쾌감을 느낀다. 이 길을 선택 잘했다. 이 나이에 이름을 날리는 시인이 되려는 건 아니고, 스스로 만족하면서 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성공이다.”
신춘문예의 심사평 끝에는 항상 “건필을 빕니다”가 들어간다. 신춘문예는 ‘등용문’이다. 하지만 문단의 ‘신입사원’을 뽑는 곳에 나이 든 이들의 파이팅이 놀랍다. 올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도 나이가 많은 이가 대거다. <서울신문>에는 52살의 강정애씨, <부산일보>에는 59살의 김후인씨가, <강원일보>에는 52살의 김영삼씨가 당선됐다. <세계일보>는 홍문숙(53)씨의 ‘파밭’을 당선작으로 했다. 그는 말한다. “시는 내 삶의 숨구멍이다.”
“비가 내리는 파밭은 침침하다/ 제 한 몸 가려줄 잎들이 없으니 오후 내내 어둡다/ (…) 어머니도 젊어 한 시절/ 그곳에서 당신의 시집살이를 용서해주곤 했단다/ 그러므로 발톱 속부터 생긴 서러움들도 이곳으로 와야 한다/ 방구석의 우울일랑은 양말처럼 벗어놓고서/ 하얗고 미지근한 체온만 옮기며 나비처럼 걸어와도 좋을,/ 나는 텃밭에서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러했듯/ 한줌의 파를 오래도록 다듬고는/ 천천히 밭고랑을 빠져나온다.”(‘파밭’ 부분)
홍문숙의 시에 대한 심사평은 이랬다. “시를 쓴다는 경직된 포즈가 안 보이면서, 자연스럽고 신선하게 읽혔다. 속도감도 있는데다 요즘의 유행과도 한 발 떨어져 있는 것도 미덕이었다.”
생활어의 발견이다. 나이 든 이들이 좋은 시를 쓰면서 생활어들이 시어가 된다.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생활’을 시로 만드는 일의 편을 든다. “쓸쓸하고 고단한 줄로만 알았던 하찮은 세계가 한 권의 시집(신경림 시인의 <농무>를 말함) 속에 그렇게 눈부신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 있다니! 게다가 구태여 말을 비비 꼬지 않더라도 시가 태어날 수 있으며, 한 토막의 이야기도 서정을 만나면 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새롭게 배웠다.”(<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한겨레출판 펴냄)
쉬운 언어, 생활어의 발견
서정주 시인은 자신의 마지막 시집에서 ‘늙은 것’을 표내기를 좋아했다. 마지막 시집이 <80소년 떠돌이의 시>(1997), 그 전의 시집이 <늙은 떠돌이의 시>(1993)다. 관념적이고 유미적이던 시는 소박해졌다.
“내 연인은 잠든 지 오래다./ 아마 한 천년쯤 전에….// (…) 아 내 곁에 있는 누어 있는 여자여./ 네 손톱 속에 떠오르는 초생달에/ 내 戀人의 꿈은 또 한 번 비친다.”(‘눈 오시는 날’, 1968년 <동천>에 수록) 잠든 여인의 손톱 끝에 떠오르는 초승달을 바라보던 젊은 미당은 1995년작 ‘늙은 사내의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내 나이 80이 넘었으니/ 시를 못 쓰는 날은/ 늙은 내 할망구의 손톱이나 깎아주자/ 발톱도 또 이쁘게 깎아주자/ 훈장 여편네로 고생살이 하기에/ 거칠 대로 거칠어진 아내 손발의/ 손톱발톱이나 이뿌게 깎어주자/ 내 시에 나오는 초승달같이/ 아내 손톱 밑에 아직도 떠오르는/ 초사흘달 바래보며 마음 달래서/ 마음 달래자 마음 달래자.”
지난해 10월 한국에서도 출간된 <약해지지 마>는 99살의 할머니가 써 일본에서 화제가 된 시집이다. ‘하찮은 세계’가 시가 되어 피어난다.
“목욕탕에/ 설날 아침에 해가 비춰와/ 창가의 물방울이/ 눈부시게 빛나는 아침/ 62세 아들이/ 썩은 나무 같은 몸을 씻어주네// 도우미보다 능숙하진 않지만/ 나는 지긋이 눈을 감네// “새해를 시작하는 관례로….”/ 등 뒤에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들려오네/ 그건 예전에 내가/ 너에게 불러줬던 노래.”(‘목욕탕에서’ 전문)
시바타 할머니는 목욕을 좋아한다. 일주일에 여섯 번 도우미가 오고 일주일에 한 번 아들이 온다. 늦은 결혼에서 얻은 아들이다. 스무 살 때 맞선을 봐서 결혼한 남편이 너무 무서워 대리인을 통해 이혼을 했다. 33살 때 일하던 온천 마을 음식점에 일하러 오던 주방장이 그를 마음에 들어했고 결혼했다. 이듬해 목욕을 시켜주는 아들이 태어났다.
시바타 도요는 90살이 넘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허리가 아파서 취미였던 일본 무용을 할 수 없게 되자, 문예잡지 등에 투고해 입선하기도 한 ‘문청’ 아들이 글을 써보라고 했다. <산케이신문>의 ‘아침의 시’에 입선했다. 그가 펴낸 <약해지지 마>는 일본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그의 시를 읽은 이들은 “매일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는 감상평을 쏟아냈다. ‘매일의 힘’이다.
이생진 시인은 82살이다. 그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말이 없었다. ‘늙은 시인의 노래’를 쓴다는 기획 취지가 못마땅한 듯했다. “늙은이들 시 쓰는 거 소개하는 거 창피하고 말이야.” 전국의 수많은 식당·술집의 이름인 ‘취하는 건 바다’는 그의 ‘술에 취한 바다’(1978)에서 왔다. “나는 내 말만 하고/ 바다는 제 말만 하며/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긴 바다가 취한다.” 그의 낭만은 고즈넉해졌다.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아내와 나 사이’ 전문)
기억이 아스라해진 데서 떠오르는 새로움
이생진 시인은 여전히 새로움이 시를 쓰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시가 사물을 새롭게 보는 것이니 맞는 말이다. 그가 소화기를 보면서 쓴 시도 시인의 눈길로 포착했기에 새롭다.
“종로 복지관에서 밥과 떡을 먹고 나오는데/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죽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늙어가며 얻어먹기만 하는 내가 미안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전철을 탄다/ 노인석 옆에 빨간 소화기消火器가/ 인체표본의 소화기消化器처럼 벽 속에 들어 있다/ <소화기 사용요령>/ 이거라도 외워서 밥값을 해야지 하고/ 외운다 (…)// 오늘은 전철도 나도 무사했다/ 내일도 소화기 옆에 앉아/ 그것을 외워야지.”(‘지하철 노인석’ 부분, 2011년 2월12일 홈페이지에 올린 시)
미자처럼 물어보자. 당신들의 시상은 어디서 오나요. 김진기씨가 시상을 떠올리는 방식은 지그재그다. 영화 <7급 공무원>을 보았다. 액션은 안 보이고 ‘공무원’이 자꾸 시어로 떠올랐다. 사업하다가 고생을 했는데, 공무원으로 들어갔으면 고생 안 했을 텐데, 하는 감상도 들었다. 나와서 길을 걸으니 은행이 보였다. 그래서 ‘은행나무와 은행’이라는 시를 썼다. “떨어진 은행알을 주머니에 넣는데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밀린 돈 안 갚냐고 한다. 얼른 몸을 감춰 극장으로 들어갔다. 영화관은 좋다. 여름에 시원하고, 어두우니 독촉하는 것에서도 풀려난 것 같고. 그런 내용의 시다.” 액션 스토리가 안 보인 것이 시로 탄생한다. 늙은 시인의 기억이 아스라해지는 것도 시에는 부적격하지 않다.
어쨌든 시인은 단어를 붙들어매야 한다. 시인 지망생 미자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 의사는 명사가 사라지고 동사가 사라질 것이라 말한다. 미자는 중요한 말을 하러 가서는 왜 여기에 왔는지를 잊는다. 뇌 속 세포를 잃어가는 그가 잊지 않고 붙드는 것은 ‘시’다. 명백한 죄를 ‘부성’의 이름으로 덮으려 하고, ‘다수주의’에 복종하는 자들이 슬픔을 쓸모없다 하고, 죄인들이 가난한 자를 죄인으로 만드는 상황에서 시를 붙든 자만이 분노한다. “일어나. 일어나. 너 왜 그랬어.” 미자가 선택하는 것은 속죄다. 언어를 잃어가는 속에서 남은 것은 인간 근원의 도덕이다. 인간 근원의 철학이다. 영화에 시가 없었다면 이 진실은 설득이 어려웠을 것이다. 시인은 언어를 잃어도 맨몸뚱어리로 세상에 부딪히는 사람들이다. ‘늙은 시인’이라면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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