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의 건망증
박근형 님|연극 연출가
부모님은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신촌 로터리 근처에 식당을 차리셨다. 전쟁 직전 혈혈단신 남으로 내려온 부모님에게 일가친척 하나 없는 서울살이는 무척이나 고달픈,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다. 일자무식 한량인 아버지는 직업도 없이 태평세월을 보내시는 분이었다. 평안도 사나이답게 욱하는 성질에 툭하면 밥상을 엎고, 주머니가 비면 하루 종일 괴로워 어쩔줄 모르셨다.
어머니는 철부지 아버지를 대신해 돈 되는 것이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억척스럽게 한 푼 두 푼 모아 드디어 식당까지 내셨다. 새벽 도매 시장에 나가 물건을 떼어 오고 설거지에 주방 일까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식당을 운영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식당 일에는 통 관심 없이 아침 늦게 용돈을 받아 들고 나가 통금 시간 직전 얼큰하게 취한 몸을 끌고 와 바로 곯아 떨어지셨다.
어머니의 손맛 덕분인지 식당에는 손님이 북적거렸다. 어머니는 밤마다 하루 매상액을 세어 보는 즐거움으로 고생을 달래셨다. 그렇게 애써 모은 돈을 저축하면 아버지가 가끔 씩사고를 치셔서 어머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무도 모르게 돈을 모으셨다. 어머니의 비밀 금고를 지키면서 혼자 행복을 누리셨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우리 가족은 신음 소리에 잠을 깼다. 어머니가 “아이고, 아이고. 이걸 어쩌냐.”하며 장탄식을 하셨다. 사연인즉 금고가 비었다는 것이다. 물론 도둑이 든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밤마다 다락방을 오르내리는 것도 모자라 왜 그리 소란을 피우냐?”라며 화를 버럭 내셨다. 우리는 모두 겁을 먹었고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그때 어머니가 “맞네, 다락방!”하며 올라가 고이 모아 둔 500원짜리 지폐 다발을 가지고 내려오셨다. 그제야 “아이고, 다행이네.”하고 안심하셨다.
그 뒤로도 우리 가족은 수시로 한밤중에 깨어나 돈을 찾는 소동을 치러야했다. 소동이 끝날 때마다 어머니는 당신의 건망증을 원망하셨다.
다 지난 옛날이야기다. 이젠 다시 들을 수 없는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점점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머니 기일도, 얼굴도 잊어가는 나는 왜 나의 건망증을 걱정하지 않는 것일까.
[출처: 월간 좋은생각 > 2011년07월호 오픈콘텐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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