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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23. 00:08 Bluewave사랑방

정조와 우의정의 소통

<일성록 정조11년 정미(1787,건륭52) 4월5일(임인)기록에서

정조11년(1787년) 4월 5일 정조는 창덕궁 희정당(煕政堂)에서 대신(大臣)과 비변사 당상을 소견하였다.아래는우의정 유언호(兪彦鎬)가 정조임금에게 아뢰는 내용과 정조임금의 하교가 기록된 것으로 출처는 한국고전DB의 국역일성록에서 가져 온 것이다.

조선의 국왕이 평상 시에 거처하던 창덕궁 희정당에서 있었던임금에게 보고하는신하의 대화를 살펴보자.

“신이 춘궁(春宮)에서 시강(侍講)하던 초기부터 예학(睿學)이 고명(高明)하고 식견이 초절(超絶)하여 성덕(盛德)과 대업(大業)이 도달하게 될 경지를 헤아릴 수 없음을 흠앙(欽仰)하였습니다. 등극하신 이후에 의리를 크게 밝히고 정령(政令)을 크게 펴시어 정사의 기강을 세우고 펼치신 것이 우뚝하고 광명정대(光明正大)하여 사람들이 모두 눈을 씻고 다시 보았고 사책에는 이루 다 쓸 수 없었기에, 삼대(三代)의 훌륭했던 정치를 날을 꼽으며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스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매번 조정에서 탄식을 하셨고, 일이 처음과 같지 않아 식자들이 근심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는 모두 훌륭한 임금은 있는데 보좌할 신하가 없어 인도하고 대양(對揚)하지 못한 소치입니다만, 또한 성상께서 스스로 반성하실 때 어찌 그 까닭이 없겠습니까. 삼가 생각건대, 이는 전하께서 행하시는 바가 아는 바와 똑같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릇 알면서도 능히 행하지 못하고, 행하면서도 능히 오래가지 못하고, 오래가더라도 능히 끝마치지 못하는 것은, 성찰(省察)의 공부와 실천하는 힘이 완전히 성실(誠實)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표리(表裏)가 차이가 없지 못하고 시종(始終)이 한결같지 못한 것이니, 이렇게 된 것은 자기의 사욕(私欲)을 모두 제거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아, 한 가지 생각의 성위(誠僞)와 한 가지 일의 공사(公私) 사이에 드러나는 징험은 가릴 수가 없어서 기미(幾微)의 사이에 동(動)하고 천 리 밖에까지 응하는 것이니, 진실로써 하지 않으면 말해도 믿음을 받지 못하고, 명령해도 따라 주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도 감사할 줄 모르고, 위엄을 부려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리와 형세가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성지(聖志)를 굳게 세우고 아는 바를 실천하기를 고인(古人)이 말한 것처럼 하여, 말을 낼 때는 반드시 그 행동을 돌아보고,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처음에 잘 도모하며, 타고난 덕성을 반드시 굳게 지키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대학》에서 말한 전체(全體)와 대용(大用)의 학문과 《중용》에서 말한 유구(悠久)하고 광대(廣大)한 사업이 밖에서 구하지 않아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여, 하교하기를,

“경의 말이 매우 좋다. 체념(體念)하겠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인주(人主)가 한 몸의 총명함으로 천하의 일을 관섭(管攝)할 수 없기 때문에 관직을 만들고 직분을 나누어 그 일을 맡겨 주므로, 신하는 아래에서 노고하고 임금은 위에서 편안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백관(百官)과 서료(庶僚)가 감히 현직(見職)으로 자처하지 못하고 모두가 남에게 떠넘기고 핑계 대는 것으로 일을 삼으니, 임금의 명령에 대해 가부(可否)를 다투고 논란하는 것은 우선 논하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거행(擧行)까지도 번거롭게 재결을 청하고 있습니다. 이는 지극히 밝으신 성상이 위에 계셔서 잘잘못을 숨길 수 없고, 위엄이 앞에 있어서 지레 겁을 먹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 때문에 나약하고 고식적이 되어 모든 법도가 해이해지니, 부득이 성상께서 심려하시어 세세한 일까지 친히 수고롭게 처리하시느라 해가 기울어도 쉴 겨를이 없고 한밤중이 되어도 피로를 잊고 일을 하십니다. 이는 절선(節宣)의 도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지존(至尊)께서 아래로 대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대신이 아래로 서료의 일을 하며 서료가 아래로 이례(吏隷)의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니, 체통을 높이고 사방에 모범을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모두 뭇 신하들이 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소치이기는 합니다만, 진실로 능히 그 소장(所長)을 취하여 맡겨서 의심하지 않고 부리기를 각각 소장에 맞게 한다면, 또한 어찌 서로 도와 함께 공을 이루는 데 도움이 없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혼자서 국정을 운영하여 총괄하려 하지 말고 반드시 뭇사람의 장점을 자기 것처럼 사용하시어 각기 맞는 직임을 맡겨 공을 이루도록 요구한다면, 성상의 정신을 보호하고 아끼는 방도와 국정의 뼈대를 잡는 도리가 둘 다 유익한 바가 있을 것입니다.”

하여, 하교하기를,

“이 말은 더욱 좋으니 특별히 체념하겠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바삐 서둘면 일을 그르친다는 것은 필부도 오히려 경계할 줄을 아는데 하물며 군사(君師)의 지위에 계신 분이겠습니까. 그러나 예로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운 임금들이 대부분 이 병통을 면하지 못한 것은 왜이겠습니까. 영민하고 날카로운 기세가 지나치면 일을 볼 때 어려운 것이 없고, 근면하고 가다듬는 것이 지극하면 효과를 구하는 것이 너무 빠르게 됩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이와 같기 때문에 남에게 요구할 때에도 이와 같이 하게 됩니다. 전하께서는 학문이 고명(高明)하시니 함양(涵養)하고 성찰(省察)하는 도리에 대해 이미 익히 알고 계실 것인데, 무릇 일을 시행하실 때 매번 급박하게 하시는 문제가 있습니다. 삼가 성상의 뜻을 엿본다면, 습속이 나약하고 모든 일이 퇴폐해져 있으므로 진작시키고 바로잡을 것을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일에는 완급(緩急)의 차서가 있고 인재는 우둔하고 영민한 한계가 있으므로, 미치지 못하는 일을 하라고 요구할 수 없고 능하지 못한 일을 억지로 하게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생각건대, 지금 성명께서 위에 계시어 정신을 가다듬고 다스림을 도모하고 계시니, 모든 관직에 있는 신료들이 누가 감히 나태하고 소홀한 생각이 싹틀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평소 위축되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갑자기 불시에 독촉하는 명을 받으면 거행하는 데 어두운 데다 기한에 촉박하여 거조가 바쁘고 어지럽게 되고 보는 사람들이 놀라게 됩니다. 이 때문에 기강을 진작시키려는 것이 거의 독책(督責)에 가깝게 되고, 체통을 높이려는 것이 도리어 구차하게 되어 버립니다. 삼가 바라건대, 존양(存養)의 공부에 더욱 노력하시고 엄하고 급한 정사를 힘써 제거하소서.”

하여, 하교하기를,

“바로잡으려는 것이 고식적이 되고 폐단이 급박하게 재촉하는 데에서 생긴다는 경의 말이 또한 좋다. 유의(留意)하겠다.”

하였다. 또 아뢰기를,

“군신과 부자는 의리를 위주로 하는 것과 은혜를 위주로 하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섬길 때에 또 정면으로 간쟁하고 정면으로 간쟁해서는 안 되는 구분과 섬길 때 할 수 있는 도리만 하고 모든 방도를 다하는 구별이 있으니, 여기에서 임금과 어버이를 섬기는 즈음이 이일분수(理一分殊)의 실상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후세에 와서는 신도(臣道)는 날로 낮아지고 군도(君道)는 날로 높아져서, 아래에 있는 자가 전적으로 자식의 도리로 임금을 섬기고, 위에 있는 자 역시 자식의 도리로 그 신하에게 요구합니다. 그리하여 오직 복종하여 따르기에 겨를이 없어, 진퇴(進退)와 어묵(語默), 가부(可否)와 종위(從違)에 의리를 지켜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고 오직 임금의 명만을 따르면서 ‘이는 임금은 명령을 내리고 신하는 공경히 따르는 의리이다.’라고 합니다. 이것이 근래에 와서는 하나의 규모(規模)가 되어 아무도 바로잡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도(世道)가 무너지고 사습(士習)이 낮아졌으며, 조정이 존중되지 않고 인심이 복종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임금에게 하기 어려운 일을 하도록 요구하고 선(善)을 진달하는 의리가 없어지고 임금의 비위나 맞추고 아첨하는 버릇이 이루어졌으며, 분의(分義)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중해지고 명절(名節)을 돈독히 숭상하는 뜻이 가벼워졌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이 습속을 크게 변화시켜 사대부(士大夫)로 하여금 모두 자기를 바르게 하여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알게 해서, 사욕을 따르고 의리를 망각한 풍습을 일소(一掃)한 뒤에야 나라가 제대로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깊이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부시(婦寺)의 충성을 충성이라 여기지 말고 고식적인 사랑을 사랑이라 여기지 말며, 두려울 만한 사람을 취하고 기쁘게 해 줄 만한 사람을 취하지 말며, 자기의 부족함을 보충해 줄 사람을 구하고 자기의 비위를 맞추어 줄 사람을 구하지 말아서, 속히 자신을 비우고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도량을 넓혀서 정면으로 감히 간하는 기풍을 키우고, 넉넉하게 용납하는 방도를 힘써 다하여 청렴결백하고 미덥고 사양하는 조행(操行)을 길러 주소서.”

하여, 하교하기를,

“경의 말이 좋으니, 유의하겠다.”

하였다. (이하 생략)

일성록(日省錄)은 영조 36년인 1760년 부터 경술국치가 일어나는 1910년 순종4년까지의150년간 날마다 역대 임금의 동정과 국정의 제반사항을 기록한 일기체 연대기로 흔히 "왕의 일기"라고 표현한다.


보물 제1504호인 유언호 초상

(사진출처: 문화재청)


우의정 유언호( 兪彦鎬 1730~1796)는 누구인가? 조선 후기의 문신. 벽파로 시파 홍봉한 중심의 척신정치를 없애는 것이 청의와 명분을 살린다고 생각한 정치적 모임인 청명류 사건에 연루되어 정배되었다. 정조 즉위 후 시파로 태도를 바꾸고 이조참의, 이조참판, 형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지냈다.

우리 사회는 소통의 문제로 인하여 곳곳에서 갈등을 빗고있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간, 학교에서 스승과 학생간, 특히기업과 근로자간 노사문제는 관련 산업은 물론 국가 경제를 좌우하기도 한다. 또한정부와 국민간은 물론이고 정부와 이익단체간에원활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아 불만의 목소리가 높기만 한 실정이다. 한국최고의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이 대학본부를 점거 농성하고 있는 실정이니 설명할 나위가 없다. 소통의 실종이 가져 온 사회적 병폐는 우리사회를 차츰 멍들게 하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자기 주장에 목소리를 높이기 때문이지 않을까.한번쯤 상대방의 입장에서 서보고 상대의 주장을 들어 보면서이해하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앞에 일성록의 내용을 읽어 보면서 지난날 조선에서 신하의 올곧은 보고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의임금과나라를 위해 올바른 소리를 하는 충성된 신하의 모습을보게된다. 종종 사극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임금들의 국사보다 왕비와 빈 사이에 갈팡질팡하는모습이나, 매관매직하며 일신의 영달에 열중하는 대감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위에 예를 든일성록의 내용은 새삼스럽기하다. 임금께 잘 못된 점을 간하는 용기있는 신하와신하의 말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는 절대권력을 갖인 왕조시대에도 조차 임금과 신하와의원활한 소통이 있었다.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불과 220여년전 이땅의 일임을 상기하자.


posted by bluew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