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볼 것도 없는 마을인데 요즘 들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와. 담마다 그림이 그려져 있으니까 그것 보려고 오는 거겠지 뭐. 사진도 찍고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다가 가지.” 마을 초입에서 만난 박덕주(69)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박 할아버지가 안동네에 들어온 때는 1983년. 전포동에서 사진관을 운영했던 박 할아버지는 사진관 운영이 여의치 않자 이곳으로 들어왔다. 당시만 해도 집은 고작 열두 채가 전부. 1986년 부산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포플러 나무가 많았는데 나무 사이에 집을 지으면 밖에서 잘 띄지가 않아 단속을 피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근처에 미군들 군수물자를 날랐던 폐상자가 많았던 탓에 판잣집을 지을 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도 마을이 커지게 된 이유다. 안동네 골목길은 빗 모양으로 생겼다. 차가 한 대 정도 지날 만한 도로가 있고 그 길 왼쪽, 산 아래 쪽을 향해 작은 골목이 6개 곁가지를 치고 있다. 차례대로 돌산 1길, 돌산 2길, 돌산 3길 식으로 이름이 붙어있다. 편의상 이름만 이렇게 붙였을 뿐이지 큰 의미는 없다. 골목을 따라 10~20m 정도만 내려가면 마을 가운데를 관통하는 골목이 나오는데 이 골목으로 인해 모든 골목은 다시 이어진다.골목은 사람 두 명이 어깨를 스치고 겨우 지날 만큼 좁다. 바닥에는 거친 시멘트가 발라져 있다. 집들은 대부분 블록집이다. 지붕에는 슬레이트를 얹었다. 집은 작고 지붕은 낮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 설 만 한 크기의 대문이 있고 도화지만한 창문이 나 있다. 골목은 급한 꺾임도 없고 오르막과 내리막도 심하지 않은 편이다. 평탄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느릿느릿 걸어도 좋을 만한 호흡이다. 길 양 옆으로는 낮은 담이 이어진다. 많은 골목들의 담이 사람 키보다 훨씬 높지만 안동네 골목의 담들은 가슴 높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이 집주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훤히 알 수 있을 정도다. 김기보(67) 할아버지는 안동네에서 25년째 살고 있다. 건설 관계 일을 하다 몸이 아파 퇴직 후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다. 김 할아버지 집의 대문 역시 무릎 높이 밖에 되지 않는다. 문 앞에 열쇠가 매달려 있지만 그다지 소용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살림살이라고 해야 숟가락 몇 개랑 이불 밖에 더 있나. 가져갈 것도 없으니 문을 잠글 필요도 없지. 이십 년 넘게 살면서 아직 도둑 들었다는 소리는 한 번도 못 들어 봤어.” 골목을 걷다 보면 심심찮게 무덤을 만날 수 있다. 마을이 들어선 자리가 원래 공동묘지였던 까닭이다. 지금도 명절이면 성묘를 하러 오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