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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2. 30. 01:05 구름에 달가듯

<박경일 기자의 길에서 만난 세상>

불편했지만 정감넘치던 ‘옛날 여행’이 그리워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간다’고 했을 때, ‘쏜살’이란 다들 아시다시피 ‘쏜 화살’을 뜻합니다. 그러나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말하고자 한다면 ‘쏜 화살’이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듯합니다. 화살은 쏘아진 힘이 다하면서 속도가 느려지기 마련이지만, 시간은 갈수록 가속도가 붙어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가니 말입니다. 세밑에 되돌아 보는 시간은 더욱 그렇습니다.

취재를 나선 길에서는 주로 시골 어르신들을 만나 옛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어르신들은 가물가물했던 기억을 되살리면서도 말끝마다 ‘엊그제 같다’며 한숨을 쉬곤 합니다. 어르신들에게 옛날이란 고되긴 했으되 푸근했고, 또 정감이 넘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너나없이 함께 어려웠던 시절. 삶은 단순했고, 생활은 소박했습니다. 강원 영월의 옹정리 선암마을에서, 전남 보성의 강골마을에서 어르신의 손에 이끌려 받아든 아침 밥상을 앞에 두고 들었던 구수한 옛이야기들은 가난과 추억이 엇갈립니다. ‘지독했던 가난의 기억’이 세로줄이었다면 가로줄은 가진 것을 서로 나누던 정감 넘치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여행이 불편하긴 했으되,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오래된 여행의 기억이 더 또렷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건 확실한 듯합니다. 비둘기호 열차에 몸을 싣거나 완행버스를 타고 떠나던 여정. 지금처럼 호텔이나 콘도는 언감생심이었고, 웃풍으로 자리끼가 얼어붙는 역전의 낡은 여인숙이라도 뜨끈한 아랫목이 있었으니 견딜만 했습니다.

30여년 전쯤 겨울 설악산을 가던 가장 낭만적인 행로는 이랬습니다. 청량리역에서 경춘선을 타고 강원 춘천까지 가서, 춘천에서 다시 소양댐까지 버스를 타고 간 뒤 소양댐에서 배를 타고 강원 양구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 떠났다고 해도 양구에 당도할 즈음이면 어둑어둑해졌지요. 양구에서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서 여기서 다시 진부령을 넘는 강원 속초행 막차를 타면 깜깜한 밤중에 속초에 닿을 수 있었습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질러가는 고속버스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바삐 목적지로 가는 여정을 이렇듯 기차와 배와 버스의 정취를 즐기며 느긋하게 이동하는 여정에 댈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습니다. 마지막 저무는 해를 마주하거나, 새로 돋는 해를 맞는 여정이 어울리는 때입니다. 하지만 구제역 여파로 전국 곳곳의 명소에서 열리는 해넘이와 해돋이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습니다. 어디 해가 명소에서만 지고, 또 뜨겠습니까. 이참에 일출명소 대신 과거의 추억이 어린 곳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젊은 날의 추억이 잠겨있는 곳으로 가도 좋겠고, 어린 시절의 익숙했던 골목으로 떠나는 여정도 좋겠습니다. 되도록 먼 시간 속으로 떠나가서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여정이 어쩌면 해넘이와 해돋이보다 한 해를 보내고 맞는 여정에 더 어울릴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근사한 숙소와 풍성한 먹을거리는 없더라도 말입니다.

문화일보신문에 게재되었으며 33면의 TOP기사입니다.33면신문에 게재되었으며 33면의 TOP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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