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기업가는 늘 현장을 지켰다 [조인스]
1세대는 모두 야전사령관
이병철·정주영·박태준·조중훈 … 십장·해결사·따뜻한 어머니 역할
현역 기업인 가운데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은 현장경영 신봉자로 꼽힌다. 울산이든 당진이든, 미국 앨라배마든 현대차그룹 사업장에는 어디든 정 회장의 흔적이 배어 있다. 최근 그는 당진 제철소 공사현장을 찾는 것으로 주목 받는다. 일주일에도 한두 차례씩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당진까지 헬리콥터로 날아간다고 한다.
엄동설한도 그에겐 전혀 장애물이 아니다. 부친인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 때부터 필생의 사업으로 추진해온 일관제철소 현장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만큼 그에게 ‘현장’은 기업가로서 뜨거운 희열을 확인해주는 곳인지도 모른다. 2003년 8월, 기아자동차가 고급 세단인 오피러스 수출을 앞두고 있을 때 일이다.
마침 현대기아차 남양연구소를 방문한 정 회장은 주행 시험장에서 오피러스를 몰고 시험운행을 했다. 이때 ‘윙’하는 작은 소음을 확인하고 “이 소리를 잡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결국 오피러스는 수출 시기를 40여 일이나 늦춰야 했다. 이런 정 회장의 현장경영은 정 명예회장에게서 대물림됐다는 게 주변의 분석이다.
정 명예회장은 현장에서 해답을 찾는 기업가다. 경부고속도로,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울산 현대조선소 등 굵직한 사업을 일군 그는 ‘현장주의자’로 통했다. 현장에서 그는 ‘저승사자’이면서 ‘해결사’였다. 정 명예회장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업현장을 찾았다.
어느 순간 불시에 나타날지 몰라 현장 직원들은 긴장과 초조의 날들을 보냈다고 한다. 게으름을 피우다간 언제 정 명예회장의 따귀가 날아올지 모를 일이었다. 시멘트 공장에서든, 조선소 블록 현장에서든 그는 어느 순간 지프를 타고 나타나 조는 기사가 있으면 “얼마나 비싼 장비인데 이렇게 한가하게 졸고 있느냐”며 상소리를 해대기 일쑤였다.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 공사장. 충북 옥천군 이원면 우산리와 영동군 용산면 매금리의 4㎞ 터널이 애물단지로 떠올랐다. 소백산맥이 드러누운 이곳으로 당제터널을 뚫기로 했는데 줄곧 공사장 벽이 무너졌다. 무려 13차례의 낙반 사고가 발생했다. 현장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때 정 명예회장은 “일반 시멘트보다 빨리 굳는 조강 시멘트를 사용하면 공기를 맞출 수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조강 시멘트는 일반 제품보다 값이 몇 배나 비쌌다. 하지만 주판알을 튕길 입장이 아니었다. 정 명예회장은 현장에서 190㎞나 떨어진 단양 시멘트 공장에서 조강 시멘트를 트럭으로 공수해올 것을 지시한다. 시멘트 운반에만 500여 명의 인력이 필요했다. 결국 3개월 넘게 지체된 당제터널 공사는 25일 만에 마무리됐고 70년 7월 착공한 경부고속도로는 예정대로 2년5개월 만에 준공식을 할 수 있었다.
“비싼 장비 앞에 두고 졸고 있나!”
“태풍을 휘어잡으려면 태풍의 눈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막의 여우’로 통했던 독일의 에르빈 롬멜 장군. 롬멜은 연합군과 사막에서 전쟁을 벌이며 “태풍의 눈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전차 기동전을 지시한다. 그의 탁월한 직관력과 결단, 기발한 아이디어 덕분에 연합군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런 롬멜의 결단력을 본받고 싶었을까.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68년 4월 포항제철 현장사무소를 ‘롬멜 하우스’라고 이름 지었다.
박 명예회장은 일단 목표가 생기면 그 길로만 매진했다. 공사가 시작되자 그는 영일만 앞에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이른바 ‘우향우 정신’으로 불리는, 동해 앞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제철보국’을 이뤄내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긴 명언이 여기서 나온다.“선조의 피의 대가인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짓는 제철소요.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가 저 영일만에 몸을 던져야 할 것이오. 모두 ‘우향우’해야 한단 말이오.”
70년 열연공장 공기가 석 달이나 지연됐다. 추운 날씨 탓이었다. 외국 출장 중에 이런 사실을 보고받은 그는 당장 포항으로 돌아와 공기 단축 비상령을 내렸다. 하루 700㎥씩 콘크리트를 타설(打設)하라고 지시했고 공장은 24시간 풀 가동됐다. 피곤함에 지친 레미콘 기사는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지휘봉을 든 ‘호랑이’ 박 명예회장이 나타났다. 그는 하루 3시간만 자면서 현장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리고 결국 예정된 공기를 3분의 1로 단축했다. 통상 4~5년 걸린다는 제철소 건설이지만 포항에서는 예외였다. 포스코는 창립 3년 만에 쇳물을 쏟아냈다. 건설 기간이 단축되면서 1기 고로 건설의 투자비도 t당 500달러에서 절반 수준인 260달러로 줄었다. 그 후 92년 광양제철소 4기를 완성할 때까지 박 명예회장은 25년간 현장에서 승부를 걸었다.
미래를 읽는 탁월한 전략가로 알려진 故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역시 현장주의자였다. 특히 경기도 수원의 반도체 공장을 일굴 당시의 일화는 유명하다. 1983년 2월 6일 밤, 일본 도쿄에서 이 창업회장은 사돈인 홍진기 당시 중앙일보 회장에게 국제전화를 건다. 대화는 간단했다.
“내가 반도체를 하기로 했소. 3월 15일을 기해 삼성이 반도체와 컴퓨터 산업에 뛰어든다는 것을 공표해주시오.”
1년에 걸친 치밀한 검토가 있은 다음, 이 창업회장이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는 “철강은 t당 340달러, 석탄은 40달러, 텔레비전은 2만1300달러, 반도체는 85억 달러의 부가가치가 있다”며 반도체 사업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의 나이 63세, 생애 마지막 도전이었다. 이뿐만 아니다.
그는 반도체 공장을 6개월 만에 완성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보통 18개월이 걸리는 일이었다. 수원 기흥공장엔 말 그대로 불호령이 떨어졌다. 우선 공장 설계부터 생산라인 조성, 장비 조달, 용수·전력 공급 등으로 과제를 나눴다. 그런 다음 책임자가 정해졌다. 현장은 전쟁터였다. 온풍기를 틀어 시멘트 바닥을 말려가면서 공사를 진행했다.
밤낮도 없었고, 일요일도 추석·설날 휴가도 없었다. 2000대의 건설 장비와 연인원 26만 명이 공사에 투입됐다. 그는 공사 진척 상황을 일일이 체크했다. 그리고 84년 3월, 반도체 1라인이 완공됐다. 6개월 18일 만의 일이었다. 치열했던 전쟁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바로 이 창업회장이다. 10년 뒤인 94년, 삼성은 256MD램 반도체 칩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96년부터는 메모리 분야 세계 1위 자리를 한 번도 내놓지 않고 있다.
‘1등 반도체’ 초석 일군 6개월 전쟁
1970년대 초반 한진이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반(半)강제로 대한항공공사(현 대한항공)를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그는 새벽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정비공장과 활주로를 누볐다.
“항공사업에서는 무엇보다 안전과 정시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특유의 소신에서 현장경영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강조한 것이 항공기 정비 상태다. 조 회장은 “항공기의 안전은 정비사들에 의해 좌우된다.
그래서 나는 이른 새벽 오토바이를 타고 공장을 누볐다. 오토바이는 소리가 크지 않아 공장 순찰에 제격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현장에 뒹구는 나사못을 주워 작업대 위에 올려놓거나 한겨울에는 정비사용 방한복을 따로 지급하는 등 ‘어머니’ 같은 역할을 주로 맡았다고 한다.
거의 매일 현장을 누비고 다니다 보니 엔진 소리만 들어도 어떤 타입의 비행기인지, 어떤 항공연료를 쓰는지까지 꿰뚫게 됐다는 얘기는 지금도 현장에 남아 있다.
참고문헌 : 정주영 『이 땅에 태어나서』, 홍하상 『이병철 경영대전』, 조중훈 『내가 걸어온 길』, 박태준 『각하 이제 마쳤습니다』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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