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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2. 1. 02:43 연예와 문화

전시장은 도화지, 관람객도 작품 일부

기사입력 2009-01-31 11:15


[한겨레]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난해한 현대 미술, 시문 읽기 어려운 동양화 어떻게 친해질까 전문가 조언


극장에서 나오는 이들은 말한다. ‘별로네’, ‘보길 잘했다’, ‘와, 굉장한 걸!’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내뱉는 반응은 여론이 되고 별점 평이 되고 인터넷 댓글이 된다. 그런 반면, 전시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예측 불가능인 경우가 많다. 작품이 좋았던 걸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작가의 의도를 얼마나 알아차렸을까? 쉽게 알 수 없다.

미국 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서 큐레이터로 등장하는 샬럿은 미술작가의 작품이라면 나무 한 토막처럼 보이는 사물에도 호들갑을 떨며 공감한다. 샬럿의 ‘절친’ 캐리도 때론 그녀의 감탄을 의심스러워한다. 미술에 대한 샬럿의 안목과 이해력에 공감할 자 몇이나 될까. 미술 전시를 보고 마음껏 대화를 나누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전문가들에게 전시를 보는 특별한 방법은 없는지 간단한 조언을 구했다.

1. 설치미술 오리무중이라면

일단 현대 미술 전시에서 관람자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건 난해한 설치미술의 존재. 설치물이 아니라 회화나 사진 작품이라 해도 내용 파악이 불가능한 작품들도 상당수다. 어느 위치에서 어떤 각도로 어떤 점에 유의하며 바라봐야 할까. 한 문화재단의 큐레이터는 “전시장에 들어와 한가운데서 1분가량 좌우로 고개를 힐끗힐끗 돌리곤 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전시 제목과 설명도 읽지 않고 나가 아쉽다는 것. ‘덕수궁 미술관’의 류지연 학예연구사는 “전시의 기획 취지문을 읽고 작가명, 제목, 제작연도, 재질 등을 주의 깊게 볼 것”을 조언했다.

반이정 미술평론가는 “동시대 미술은 완결된 이야기 구조를 따르지 않는 편”이라며 “‘순탄한’ 작업이 없는 게 동시대 미술의 특징이자 생존방식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전시를 볼 때 이야기의 단서를 메모하고 관객 반응을 유의해 본다. “관심을 갖고 관련기사와 글을 찾아 읽는” 정공법을 조언했다. 실제 다양한 매체로 설치미술 작업을 하는 한 젊은 작가는 “전시 공간을 흰 캔버스로 생각하라”는 발상의 전환을 제안했다. 잘 알려진 피카소와 고흐의 그림이 평면에 대상을 재현했다면, 동시대 현대 미술은 전시장이라는 공간에 작품을 하나하나 배치해 큰그림을 만드는 것. “전시장 어디를 비우고 어디를 채우냐에 따라 작가의 취향과 관점이 보인다”고 했다.

2. 동양화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동양화와 서양화 전시장에 들어서면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야 좋을까? 서양화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동양화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눈길을 이동하는 편이 그림을 더 잘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다. 동양화의 시문(時文)이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 있어 이를 따르는 것이 그림의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정해진 규칙은 아니다.

갤러리 ‘학고재’의 우찬규 대표는 “옛 선인들은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것이었다”며 “사실 오른쪽에서 왼쪽이라는 이동경로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사의(寫意)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인화나 수묵화의 경우 작가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선 그림 속 초가집과 눈오는 풍경, 작게 그려진 인물들 같은 그림적 요소 뿐 아니라 여백에 쓰인 문구를 이해해야 한다. ‘학고재’에서 지난주까지 열렸던 ‘근대서화의 재발견’은 한시의 뜻을 풀이해 적어 놓았다. 덕분에 천천히 작품을 감상했다면 석파 이하응의 ‘묵란도’에 적혀 있는 ‘봄비 봄바람에 아름다운 얼굴 씻고 신선의 섬 한번 떠나 인간의 세상에 왔네’라는 글을 읽을 수 있었다.

3. 그림 위치, 알고 보면 재밌다

작품은 경외하듯 올려다 보는 게 좋을까, 아니면 살짝 내려다 보는 게 좋을까? 작품의 크기도 천차만별인데 큐레이터들은 대체 어떤 규칙으로 작품의 위치를 정하는 걸까? 먼저 높이에 관해선 정해진 법칙은 없다. 하지만 가장 좋은 높이는 두 눈의 높이에서 수직으로 선을 그었을 때 그 위치가 작품의 한가운데서 살짝 내려오는 정도다. 사람 키가 다르다 보니 자신에게 적절한 눈높이도 다를 수밖에 없다.

작품운송 및 설치 업체인 ‘동부아트’의 관계자는 “큐레이터들의 키도 다르고 취향과 다르다 보니 작품의 위치에 정도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에서 전시를 열었던 한 작가는 “해외에서는 내 작품이 더 높게 걸렸다”고 했다. 작품의 위치를 정한 후에는 수평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엔 레이저 수평기를 사용해 전시 벽면에 붉은 레이저선이 뿜어져 나오면 거기에 맞춰 작품이 기울지 않게 설치한다.

관람객과 작품의 거리는 사실 관람자가 서는 위치에 달렸다. 그림의 크기에 따라 적정거리가 달라지지만 대략 작품과 1m정도의 거리를 띄우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작품을 보느냐에 따라 디테일한 차이가 생긴다는 점도 흥미롭다. 추상 표현주의의 대가 로스코가 자신의 작업은 ‘50cm 거리에서 봐야 한다’고 꼭 집어 말했다면 작품 크기가 1cm도 안 되는 작가 함진의 작업은 얼굴을 들이대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

과거 전시장은 하얀 박스를 뜻하는 ‘화이트 큐브’로 규정됐지만 이젠 전시장 벽면도 전시 기획 의도에 따라 자유롭게 변한다. 전시장 벽면의 각도를 기울여 그림을 걸기도 하고, 천장이나 바닥에 작품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까만 벽이 될 수도 있고 화사한 살굿빛은 물론, 공간 연출이 강하게 개입하는 전시도 늘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전시장에 서 있는 당신도 작품 일부분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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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현시원 기자
qq@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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