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20. 21:10
연예와 문화
뉴욕·파리·밀라노 패션무대 서다 [중앙일보]
해외 진출 2년 만에 ‘수퍼 모델’ 대우받는 한혜진씨
그는 사진 기자를 위한 포토타임이 시작되던 11시께 현장에 도착했다. 포토타임은 후배 모델들의 몫. “신참들은 훨씬 일찍 나와서 화장도 하고 머리 손질도 먼저 받죠. 선배가 되니 이 시간은 좀 짧아졌어요. 그래도 우리나라 패션쇼는 여전히 모델을 계속 기다리게 하죠. 신참들은 패션쇼 한번 섭외되면 예닐곱 시간을 한 장소에서 기다려야 한답니다.”
오후 1시가 다 돼서야 리허설을 끝내고 잠시 짬을 내 무대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자리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책을 하나 꺼내 들었다.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장편 소설 『구해줘』였다. “특별히 좋아하는 종류의 책이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기다리기 위한 도구로 보였다. “해외에선 모델도, 디자이너도 모두 시간을 최대한 아껴써요. 다 비용이거든요.”
그는 2006~2008년 시즌에 그는 뉴욕·파리·밀라노의 패션쇼 무대에 모두 선 드문 한국 모델이다. 구치·살바토레 파레가모·돌체&가바나·켄조·루이 뷔통·클로에·이세 미야케 등 50개에 가까운 브랜드를 위해 일했다. 이런 모델이 왜 한국 무대에 섰을까. 그의 주모대는 뉴욕일텐데.
“지난해 미국 뉴욕 활동에서 벌어들인 수입이 한국에서 번 것보다 훨씬 많지만, 나의 주활동 무대는 여전히 한국이기 때문이죠.”
의외의 답이었다. 톱 클래스든 아니든, 누구나 패션쇼에 서기 위해선 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그가 약해진 것은 아닐까. 한 시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가 이내 사라져간 ‘반짝 슈퍼모델’이 될까 하는 불안감에 ‘한국이 주무대’라고 하는 건 아닐까.
“해외 무대, 좋죠. 개런티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고. 작업 시스템도 더 합리적이에요. 저 신인 시절엔 한국에서 ‘버릇 없다’라는 얘기 너무 많이 들었어요. 패션쇼 한번 하는데 왜 그리 기다리는 시간이 많은지, 그냥 기다리며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운 것 같아 짜증을 많이 냈거든요. 그렇지만 나는 역시 한국 모델이니 주무대가 한국이죠.”
그는 한때 국내 패션 모델계에서 ‘악동’으로 통했다. 자기 의견이 분명한 성격 때문이다. 그의 이런 성격은 오히려 해외에서 통했다. “해외 무대에선 주장이 확실해야 해요. 화보 촬영을 하면서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확실하게 표현해 줘야 해요. 그래야 사진작가,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스태프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죠. 결국 패션 모델은 능력껏 옷과 나를 보여주는 직업이거든요.”
2006년 2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났던 그는 당시 인터뷰(2007년 3월 17일자 5면)에서 “파리에 가면 샤넬쇼에 꼭 서고 싶다”라고 했다. 그는 그해 파리 컬렉션에서 샤넬의 프레타 포르테 무대에 입성했다. 그 뒤 샤넬 패션쇼는 지난해 9월 몸이 아파 포기한 한 차례를 제외하곤 한 번도 빠짐없이 참가했다. 샤넬 패션쇼에 서는 동양 모델은 1~2명이 고작이다. 샤넬 패션쇼에 데뷔한 뒤로 그는 위상의 변화를 실감했다. 다른 패션쇼에 모두 ‘다이렉트 부킹’이 된 것이다. 오디션 없이 캐스팅 디렉터가 소속사에 직접 예약하는 방식이다. 톱클래스 모델에게만 적용되는 방식이다.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그는 샤넬 무대에 서기 직전인 2006년 2월 파리에서 일어난 일을 예로 들었다. “발렌시아가 패션쇼장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파리 한복판에서 마라톤이 열리고 있었어요. 돌고 돌아 쇼 시작 30분 전에 도착했더니 직원이 화를 내며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돌아서는데 나보다 더 늦게 도착한 모델과 마주쳤어요. 당시 잘 나가던 모델이었는데, 그렇게 늦게 와도 무대에 서더군요. 인기에 따라 차별대우가 확실한 곳이 패션계죠.”
이렇게 신인의 설움을 겪었지만, 요즘은 그가 그런 대접을 받고 있다. 해외 진출 2년 만에 이룬 성과다.
그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에스팀(www.esteemmodels.co.kr)의 김지영 실장의 설명은 한씨의 훌쩍 올라간 위상을 짐작케 한다. “혜진씨의 해외 활동 근거지는 미국 뉴욕입니다. 2006년 1월 뉴욕에서 처음 데뷔했을 때 혜진이는 ‘패키지’였죠. 소속사의 유명 모델을 원하는 디자이너에게 ‘그 모델 보내줄 테니 신인 한 명 더 세워달라’라며 끼워 보내는 마이너 모델이었어요. 하지만, 해외 무대 진출 2년 만에 그의 위치는 완전히 역전됐습니다. 요즘은 ‘우리 소속사 신인 모델을 끼워 넣어 주면 한(한씨가 해외 무대서 쓰는 예명)을 보내 주겠다’라고 제안할 수 있게 됐을 정도지요.”
‘슈퍼 모델 한혜진’의 올해 계획은 뭘까. “국내에서도 활동 범위를 넓히고 싶어요. 윤주 언니(얼마 전 앨범을 내고 가수로 데뷔한 패션 모델 장윤주)처럼 노래할 계획은 없어요. 노래는 잘 하지만요.”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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