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짜리 지폐를 꺼내 앞면을 보면 밝은 색의 심의를 입고 검은 색의 복건을 쓴 선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꽉 다물고 있는 입과 긴 수염의 그림 속 주인공이 바로 퇴계 이황선생이다. 이번에는 뒷면을 보자. 산자락 끝에 집이 있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선비 한분이 앉아 계신다. 양 옆으로 튀어나온 절벽과 그 사이 강물엔 나룻배도 한척 띄워져 있다. 이곳은 퇴계가 관직에서 물러나 후진양성을 위해 직접 설계하고 지은 도산서당이다. 양 옆 절벽은 그가 이름 붙인 천연대와 운영대인 셈. 안동에 가면 지폐 속 그림과 쏙 빼어 닮은 자리에 도산서원(http://www.dosanseowon.com)이 자리한다. 퇴계 이황의 자취가 담긴 첫 번째 길은 도산서원에서 시작해보자. 물길 너머로 봉긋하게 솟은 언덕이 보인다. 그 위에 올라앉은 기와지붕 건물은 시사단이다. 조선 영조임금 시대에 퇴계 이황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도산별과를 치르게 되는데 이곳은 시험을 치르기 위한 장소였다. 안동댐에 건설되고 수몰 될 뻔했던 것을 단을 쌓아 높이를 올려 지금의 모습이 된 것. 별과는 지금으로 말하면 공무원 특별채용 시험이다. 지방의 인재를 서울로 올리기 위해 별과가 시행되곤 했다. 구불하게 휜 오솔길을 걸어 도산서원으로 향한다. 도산서원은 두 권역으로 나뉜다. 퇴계가 생전에 살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 권역과 사후 그의 학문과 업적을 배향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산서원 권역이 그것. 입구를 들어서면, 도산서원으로 들어가는 진도문이 한눈에 들어오지만,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하고직사를 먼저 보자. 그의 유물전시관인 옥진각에서 옆구리 터진 베개를 보지 않더라도 방 한 칸, 마루 한 칸, 부엌 한 칸의 검소한 공간을 보면 그가 어떤 학자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제자들이 기거하던 기숙사인 농운정사와 하인들이 기거하던 하고직사를 보고 진도문을 지나 전교당으로 들어선다. 한때는 글 읽는 소리로 가득했을 이곳에 여름 볕이 오래 머문다.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에서 봉화 청량산까지 낙동강 물길을 따라 걷곤 했다. 길을 걷는 그가 그 시간동안 무슨 생각을 품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열 살도 채 되기 전 학문을 위해 숙부를 따라 걸었던 초심을 떠올리기도 함께 걸었던 제자들과 친구들을 떠올리기도 했을 것.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할 때면 위로가 되어주고 다복솔 우거진 길이 어느 때 보다 반갑기도 했을 듯. 그를 떠올리면 그 길도 함께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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