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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10. 17:15 구름에 달가듯

천원짜리 지폐를 꺼내 앞면을 보면 밝은 색의 심의를 입고 검은 색의 복건을 쓴 선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꽉 다물고 있는 입과 긴 수염의 그림 속 주인공이 바로 퇴계 이황선생이다. 이번에는 뒷면을 보자. 산자락 끝에 집이 있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선비 한분이 앉아 계신다. 양 옆으로 튀어나온 절벽과 그 사이 강물엔 나룻배도 한척 띄워져 있다. 이곳은 퇴계가 관직에서 물러나 후진양성을 위해 직접 설계하고 지은 도산서당이다. 양 옆 절벽은 그가 이름 붙인 천연대와 운영대인 셈. 안동에 가면 지폐 속 그림과 쏙 빼어 닮은 자리에 도산서원(http://www.dosanseowon.com)이 자리한다. 퇴계 이황의 자취가 담긴 첫 번째 길은 도산서원에서 시작해보자.

물길 너머로 봉긋하게 솟은 언덕이 보인다. 그 위에 올라앉은 기와지붕 건물은 시사단이다. 조선 영조임금 시대에 퇴계 이황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도산별과를 치르게 되는데 이곳은 시험을 치르기 위한 장소였다. 안동댐에 건설되고 수몰 될 뻔했던 것을 단을 쌓아 높이를 올려 지금의 모습이 된 것. 별과는 지금으로 말하면 공무원 특별채용 시험이다. 지방의 인재를 서울로 올리기 위해 별과가 시행되곤 했다.

구불하게 휜 오솔길을 걸어 도산서원으로 향한다. 도산서원은 두 권역으로 나뉜다. 퇴계가 생전에 살면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 권역과 사후 그의 학문과 업적을 배향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산서원 권역이 그것.

입구를 들어서면, 도산서원으로 들어가는 진도문이 한눈에 들어오지만,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하고직사를 먼저 보자. 그의 유물전시관인 옥진각에서 옆구리 터진 베개를 보지 않더라도 방 한 칸, 마루 한 칸, 부엌 한 칸의 검소한 공간을 보면 그가 어떤 학자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제자들이 기거하던 기숙사인 농운정사와 하인들이 기거하던 하고직사를 보고 진도문을 지나 전교당으로 들어선다. 한때는 글 읽는 소리로 가득했을 이곳에 여름 볕이 오래 머문다.

퇴계 이황은 도산서원에서 봉화 청량산까지 낙동강 물길을 따라 걷곤 했다. 길을 걷는 그가 그 시간동안 무슨 생각을 품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열 살도 채 되기 전 학문을 위해 숙부를 따라 걸었던 초심을 떠올리기도 함께 걸었던 제자들과 친구들을 떠올리기도 했을 것.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할 때면 위로가 되어주고 다복솔 우거진 길이 어느 때 보다 반갑기도 했을 듯. 그를 떠올리면 그 길도 함께 떠오른다.

사색의 길, 명상의 길이라고도 부르는 퇴계 오솔길은 그가 옛집에서부터 청량산까지, 도산에서부터 청량산까지 오가던 길이었으나 지금은 단천교에서 가송리까지 3km를 일컫는 말이다. 그 길도 중간에 사유지가 있어 산 능선을 타고 돌아가야 하니 쉽진 않다. 단천교에서 녀던길 전망대까지는 포장된 길이다.

걷기에 무리 없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듯 수려한 경치에 푹 빠져 걷는 길이다. 이곳에서 옹달샘 정자까지 길이 막혀있다. 무시하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어쩐지 찝찝한 길이라 걷는 이의 맥을 끊어놓는다. 능선을 타고 돌아가는 방법도 있다. 가파르니 준비를 제대로 해야 한다. 가기 전에 해당 관청에 문의를 해보고 떠나면 좋을 것.

그렇지 않고 녀던길을 걷는 또 다른 방법은 가송리 농암종택에서 시작하는 것. 농암 이현보의 집으로 농암은 평생을 관직에 있었으며 굵직굵직한 이목구비의 초상화에서도 보여지 듯 호방한 기세를 가진 선비였다. 생전엔 퇴계의 재주를 아꼈으며 퇴계도 그런 그의 마음을 잘 알아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교류하며 지냈다.


농암종택에서 녀던길을 걸을 때는 이곳에 숙소를 정하고 하룻밤 묵으며 1.2km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옹달샘 정자까지 산책하듯 걸어보길 권한다. 짧은 거리가 아쉽지만 보이는 풍경은 장관이다. 1500년대를 살았던 선비가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걸었을 지 어디에 눈을 두고 걸었을 지를 생각하며 걸어보면 뜻 깊을 것. 시대는 달라도 고뇌는 다르지 않았을 한 사람의 걸음의 무게를 생각하며 걷다보면 내 마음속 깊은 시름도 한 꺼풀 날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강물을 끼고 걷는 길도 그렇고 간간히 만나게 되는 경암, 의지의 나무, 풍혈, 학소대, 옹달샘 등의 볼거리들이 소소한 재미를 준다. 옹달샘 정자에서 쉬어가며 마음을 정하자.

더 가도 좋고 힘내서 산등성을 올라도 좋을 순간이다. 정자 주변으로는 그의 시를 새긴 바위들이 있는데 오래전 선비의 마음이 되어 그의 시를 읽어봐도 좋겠다. 슬렁슬렁 산책하듯 걸어도 한 시간은 훌쩍 지난다.

도산서당에서 가송마을을 지나 고산정을 두고 걸어 청량산으로 갔던 퇴계의 뒷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면 다음 여정은 봉화 청량산으로 정하면 어떨까? ‘학문을 하는 것이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했던 그의 뜻을 새기며 천천히 걸으면 그만인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고, 머물렀던 청량산에서 그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 봐도 좋겠다.

[출처: 하이트웹진8월호]
posted by bluew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