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덕고개와 빼빼영감 -
(출처 : 東萊의 역사 / 동래구 / 1992)
옛날 장꾼들의 통로는 주로 고개였다.
오를땐 숨이 가쁘기는 해도 등에 진 물건과 새로운 물건을 바꿔오거나 몇 푼의 돈이라도 생기면 고된 줄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장꾼이 붐비는 만큼 조개주변엔 도적떼도 들끓었다. 특히 동래사람이 구포장을 보러갈 때 넘는 만덕(萬德) 고개는 옛날부터 동래부관하에서는 최대의 조적소굴로 소문난 험한 산길로 지금 양정동(楊亭洞)의 마비현(馬飛峴, 모너머 고개) 화적떼도 이 고개의 무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때문에 이 만덕고개를 만등(萬登)고개라고도 불렀는데, 만사람이 무리지어 올라가야 도적을 피할 수 있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어느날 이 고개를 동래 남문밖에 사는 삿자리장수 영감이 구포장에 들렀다가 다른 장꾼들과 함께 넘게 되었다. 항상 말이 없는 이 영감에 대해 사람들은 그가 홀아비라는 것 외엔 이름도 성도 몰랐던 까닭에 그저 빼빼영감이라 불렀다. 어찌나 여위고 피골이 상접했던지 붙여진 별명이었다.
이들은 지친 다리를 좀 쉬어보려고 만덕고개에 있는 주막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 순간 갑자기 십수명의 도적무리가 달려들면서 "꼼짝마라, 이놈들! 움직이면 죽인다"고 고함쳤다.
서슬이 퍼런 도적들의 기세에 질려 꼼짝도 못하고 있는 장꾼들을 한사람씩 묶은 뒤 괴수로 보이는 자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물건을 판 돈과 가진 것을 모조리 내놓으라고 위협했다.
이때 빼빼영감이 감연히 앞으로 나서며 도적들을 항하여 "여기있는 장꾼들은 이 험한 고개를 나들면서 겨우 끼니나 이어가는 불쌍한 사람들이옵니다. 아무리 도적질을 하고 산다지만 사람을 보고 물건을 털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묶인 장꾼들은 평소와는 다른 빼빼영감의 태도에 깜짝 놀라면서도 당할 일이 너무나 뻔해 눈을 질끔 감아버렸다.
아니나다를까, 도적들은 이 빼빼영감에게 달려들면서 "이놈봐라, 뼈만 남은게 그래도 입이 있다고 떠드는구나"라며 뭇매를 때리고 발길로 차는 등 무지막지하게 영감을 쓰러뜨렸다. 영감은 주저하듯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더니 벌떡 일어섰다.
"이놈들아! 어서 이끈을 풀어주지 못하겠느나"고 외치는 그의 눈에는 살기가 등등했다.
어이가 없어진 도적들이 아주 영감을 죽여 버리겠다고 다가갔을 땐 이미 영감의 몸뚱이에 묶인 밧줄은 모두 끊어진 뒤였다.
이놈 저놈을 공격하는 솜씨는 이미 영감의 그것이 아니었다. 날씬 비호와 같았다. 이 비상한 완력을 당해내지 못하자 도적들은 모두 도망쳐 달아났다. 영감은 묶인 장꾼들을 전부 풀어주었다.
"영감님, 정말 놀랐습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옵니까?"라고 장꾼들은 감탄하면서 다쳐서 못달아난 도적들을 끌고 동래로 가자고 아우성쳤다.
그러나 영감은 "우리들에게 소득이 없는 일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겠소. 그자들은 이제 더 이상 도적질을 하지 않을 것이오. 자, 술이나 한잔 합시다"라면서 술과 안주를 있는대로 가져오라고 주모에게 청했다.
그리고 "여러분, 이 술은 제가 모두 사겠으니 마음껏 잡수시오. 대신 마을에 내려가거든 오늘 일어난 이야기만은 절대하지 말아주세요."라고 거듭 당부했다.
술대접까지 잘 방는 장꾼들은 흐뭇한 마음으로 고래를 내려와 각기 제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사흘후 장꾼 중 한 사람이 빼빼 영감의 집을 찾았더니 그 집은 텅텅 빈집이 되어있었다.
이 소문이 밖으로 새어나오자 나라에서는 빼빼영감이 비상한 힘을 가진 장사인 것을 알고 방방곡곡 수소숨을 해 찾았으나 그 행적을 찾을 길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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