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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 10. 23:59 경제야 놀자
[전자정보분야 20세기 이후 10대 사건 7]

인터넷 혁명의 시작, WWW의 등장



입자물리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원자보다 작은 단위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원자안의 뮤온이나 파이온 등의 소립자의 성질을 연구하는 분야다. 세상에서 가장 큰 정보공간인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은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소립자를 연구하는 연구소에서 탄생했다.


국제 원자력 연구소에서의 WWW의 탄생


그림 1 www을 개발한 팀 버너스리 사진제공 : CERN
월드 와이드웹은 스위스에 있는 세계 최대의 입자물리학 연구소인 유럽 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만들어졌다. CERN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컴퓨터 과학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1955~)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연구정보를 관리하는 데 큰 불편함을 느꼈다. CERN에는 입자물리학 연구를 위해서 전 세계에서 온 수 천명의 사람들이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각국에서 가져온 컴퓨터 시스템이 모두 각각 달라 정보를 공유하고 사용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또 장비와 소프트웨어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공동으로 장비나 소프트웨어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일도 거의 불가능했으며, 연구원들이 새로 들어오고 나가면서,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기존의 정보들이 계속 사라지고, 기록된 정보를 찾을 수도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림 2 우리몸의 신경계 뉴론처럼 연결되어 있는 WWW 구조 사진제공 : stock.com
1990년 팀 버너스리는 이런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하이퍼넥스트’를 기반으로 한 정보시스템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하이퍼텍스트는 1950년대 테드 넬슨이 제안한 개념으로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정보가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연결된 것’을 의미한다. 팀 버너스리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매우 복잡하고 방대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던 CERN에 이 하이퍼텍스트를 이용한 정보교류를 제안하고, 자신이 직접 최초의 하이퍼텍스트용 문서 형태를 개발해 HTML(Hyper Text Markup Language)라 이름 붙였다.

팀 버너스리는 HTML을 열어 볼 수 있는 브라우져와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서버 소프트웨어도 직접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1991년, 팀 버너스리는 문자 뿐만 아니라 그림을 표현할 수 있으며, 하이퍼텍스트를 통해 다른 문서로 손쉽게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 완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최초의 WWW(World Wide Web)이다.


정보 공유와 링크라는 아이디어


그림 3 WWW 이전에 정보 공유의 개념을 제안한 바네바 부시

문서를 링크라는 개념을 통해, 손쉽게 연결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는 팀 버너스리 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일찍이 컴퓨터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1945년 미국의 과학자 바네바 부시(Vannvar Bush, 1890~1974)는 개인의 정보를 손쉽게 저장하고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한 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과학기술에 관련된 새로운 지식들이 쏟아지던 시절, 부시는 과학기술 지식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정보의 양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지만, 정보가 아무리 많더라도 그 지식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거나, 지식을 후대에 체계적으로 전달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부시는 일종의 개인 서재와 같은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있는 한 개인의 정보를 관리해 줄 수 있는 기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사용자가 가지고 있는 책이나 각종 의사소통 기록 같은 정보를 저장하고 있으며, 나중에 이 정보가 필요할 때 빠른 속도로 쉽게 찾아 낼 수 있게 하여 인간의 기억력을 보조해주는 이 기계를, 부시는 메멕스(MEMEX)라 이름 붙였다.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이 완성되기도 전인 시절, 부시는 마이크로 필름을 이용하여 이 기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용자가 책상처럼 생긴 이 기계 위에 문서를 올려놓으면, 이 기계는 그 문서를 자동으로 저장하고, 화면에 보이는 특정 글자를 가리킬 경우 그 글자와 관련된 마이크로 필름을 빠르게 찾아 다른 화면에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또 마치 가구의 일부분처럼 쉽게 사용할 수 있고, 심지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으며, 버튼이나 레버와 같은 조종 장치가 있어 편리하게 자료를 입력하고 조작할 수 있을 것이라도 했다.




그러나 부시의 이 기계는 실제로 구현되지는 못했다. 정보의 효율적인 저장과 검색 그리고 연결이라는 아이디어는 40여년이 흘러, 컴퓨터와 인터넷이 개발된 후 팀버너스 리의 손을 거쳐 비로소 구현 될 수 있었다.


모자이크와 검색엔진


그림 4 초기 인터넷 웹브라우저로 사용된 넷스케이프.
월드와이드웹이 만들어진지 단 몇 년 만에 월드와이드웹은 급속하게 확장되었다. 초기에는 CERN 내부의 정보교류만을 위해 만들어진 WWW은 학교, 정부, 기업들이 앞다투어 웹사이트를 개설하면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창기의 웹브라우져는 연구소나 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고성능의 워크스테이션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 사용자들은 월드와이드웹에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일리노이 대학의 NCSA라는 슈퍼컴퓨팅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WWW을 사용할 기회가 있었던 대학생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en, 1971~)은, 소형 컴퓨터나 개인용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용자들도 WWW에 접속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가 생각했다. 그리고 모자이크(Mosaic)이라고 이름 붙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는데, 이 브라우져는 연구자들만이 아닌 대중에게 WWW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었다. 모자이크는 네스케이프(Netscape)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어오다, 지금은 공개 소프트웨어로 전환되어 파이어폭스(Firefox)라는 이름으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그림 5 최초의 웹브라우저 ‘모자이크’를 개발한 마크 앤드리슨이 표지로 등장한 타임지. 사진 제공 : 타임(time)
WWW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서버들이 접속하면서, 정보의 양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팽창했다. WWW에 접속한 사람들이 도메인(웹페이지 주소)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뿐더러, 하나의 서버에도 엄청난 양의 정보가 저장되었기 때문이다.
검색엔진이라는 아이디어는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나왔다. 검색엔진은 ‘로봇(Robot)’이라 불리는 가상의 프로그램이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으고, 이를 빠르게 검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

WWW을 위한 최초의 검색엔진은 1993년에 개발된 점프스테이션(JumpStation)인데, 웹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웹페이지를 사용자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정도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1994년부터는 라이코스(Lycos), 야후(Yahoo), 알타비스타(AltaBista) 등의 다양한 검색엔진이 출연하여, 인터넷 정보 검색을 더욱 원활하게 해주었다.


월드와이드웹의 미래


그림 6 사회적 네트워크 구성이 강화된 web 2.0의 주요 구성 키워드.
우리는 월드와이드웹을 통해 지난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엄청나게 많은 정보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버니바 부시의 아이디어와 팀 버너스 리의 실천이 인터넷과 컴퓨터 기술의 발전과 만난 결과다. 월드와이드웹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는 Web 2.0, 동영상을 볼 수 있는 HTML5 등의 기능이 추가되면서 더욱 기능이 강화되고 성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들의 노력은 바로 많은 정보를 널리 알리고 공유할 수 있는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가장 작은 세상의 연구를 위해 태어난 월드와이드웹을 처음에 꿈꾸었던 사람들이 상상했던 정보의 공유를 목표로 더 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다.

출처 : 즐거운 과학세상 사이언스올

posted by bluewa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