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문양과 동심원, 나선형, 마름모 등 추상적인 문양들 위로 신라시대행렬모습과 돛을 단 배, 말과 용 등의 세선화가 있으며, 신라시대 명문등이 덧새겨져 있다. 천전리암각화가 각석(刻石)으로 불리는 것은 발견당시에는 암각화보다 신라시대 명문에 큰 비중을 두었기 때문이다.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추상적인 문양들이 암면의 전면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며, 형태를 볼 때 마름모꼴, 원형의 둥근 무늬, 물결무늬 등 형상들이 서로 연관 반복된 것들이 많은 것을 볼 때, 일종의 장식무늬로 여겨진다. 암면 아랫부분은 신라시대 세선화와 명문으로 인해 암각화가 대부분 훼손되어 있다. 신라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세선화는 날카로운 금속도구를 이용하여 그어서 새긴 그림이다. 암면에서 식별이 가능한 그림은 말을 끄거나 타고 있는 인물상, 돛을 단 배, 말 등이 행렬을 이루고 있으며, 용 그림도 발견된다. 신라시대 명문은 을사(乙巳), 기미(己未) 등을 통해 6세기 초의 기록으로 짐작된다. 명문은 크게 둘로 나눠져, 법흥왕(法興王)의 동생 사부지갈문왕(徙夫知葛文王)이 을사년(525년) 6월 18일 새벽에 천전리로 놀러와 새긴 것과 사부지갈문왕의 부인 지몰시혜(只沒尸兮)가 남편이 죽자 그리움에 사무쳐 그의 흔적이 남은 천전리 계곡으로 어린 아들과 함께 찾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