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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25. 15:42 와인의 향기

삼나무ㆍ시트러스ㆍ 젖은 낙엽향? …보진 못해도 느껴요

#“후루룩, 꿀꺽.” 와인은 이미 목을 타고 넘어갔지만 입술을 떼기가 두렵다. 뭐라고 평을 해야할지 고민하면서 “음…음…”하고 한참을 음미한다. 그리고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몽롱해질 즈음 나오는 한 마디. “이 와인, 괜찮네요.” 와인에 대한 무지함을 드러낸 것 같아 괜히 혼자 얼굴이 붉어진다.

#‘향신료 향과 구운향, 스모크한 오크향을 보여주며 토스티한 오크의 맛이 나기 전에 풍부하고 부드러운 무화과 멜론의 향과 맛이 난다’ ‘월귤나무, 서양자두, 삼나무, 크림, 박하의 향이 나며 기품있고 우아한 탄닌이 순간 번쩍이게 만든다’ ‘건포도 블랙체리, 나무연기 향이 나며 농밀하고 응집적이다’ 지난해 와인스펙테이터가 선정한 최고의 와인들에 대한 시음평이다. ‘토스티한 오크’란 무엇이고 ‘삼나무 향’이나 ‘나무향기 향’이란 또 어떤 향일까.

향긋한 와인을 머금고도 이 향과 맛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와인을 마시기 전 걱정부터 하는 이들이 많다. 드라이하고 스위트함 정도는 알고 가벼움과 묵직함은 구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향으로 들어가면 복잡해진다. 딸기향이나 건포도향 정도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블랙커런트향이나 분필향은 여전히 생소하다. 젖은 낙엽이나 야생고기 냄새는 왠지 어색하고 고양이 오줌향에 이르면 민망함까지 더해진다.

그렇다고 ‘향에 대한 표현’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냄새는 와인시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맛은 단 네가지 단맛, 신맛, 쓴맛, 짠맛이 전부지만 사람이 맡을 수 있는 냄새는 무려 2000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인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도 200가지 이상이다. 처음 와인을 흔들어 부케를 발산시켰다면 그 이후 최소 세번은 와인 향을 맡아보라고 하는 이유다.

전문적으로 와인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소믈리에의 경우 30~50가지의 향 샘플을 모아둔 아로마키트로 향을 익힌다. 그러나 50만원이 넘는 아로마키트는 일반인에겐 부담스러운 가격.

시음평이나 상품 정보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향들부터 익히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포도 품종 별로 냄새를 기억해두는 것. 쉐라톤 워커힐의 유영진 소믈리에는 “향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때까지 냄새를 몇 번이고 맡아보라”며 “미사여구를 앞세우기보다는 냄새 자체를 기억하려고 애쓰라”고 조언한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표현은 블랙커런트(Blackcurrant)향. 최근엔 백화점에서 블랙커런트를 판매하는 곳도 있지만 한국에 자생하지 않아 접하기조차 어려운 향이다. 보르도 메독 지역의 훌륭한 샤토 와인들에서 느껴지는 향으로, 까치밥나무 열매와 비슷한 분류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탈리아의 바롤로와 미국 나파밸리의 진판델, 그리고 칠레의 까르미네르, 아르헨티나 멘도사 지역의 말벡 품종에서도 블랙커런트 향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블랙커런트만큼 시음평에 빠지지 않고 자주 언급되는 바닐라(Vanilla)향은 일반적인 바닐라 아이스크림 향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유영진 소믈리에는 “오크 숙성하는 와인 거의 대부분 바닐라향이 포함돼 있는데 오크통을 불로 그을리는 과정에서 나는 향”이라며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향보다 농축미가 강하다”고 설명했다.

시트러스(Citrus)는 화이트와인 시음노트에 자주 등장한다. 감귤류인 시트러스는 라임, 레몬, 자몽, 오렌지 등 강약에 따라 세분화해 표현된다. 서양자두(Prune)는 우리가 아는 자두향보다 무겁고 매력적인 감칠맛이 난다. 캘리포니아 와인과 호주산 쉬라즈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향(Clove)은 치과에서 진통제로도 쓰이는 향으로 달면서도 매운 맛을 가졌다. 잘 숙성된 보르도 화이트와인에서 주로 나타난다. 특히 고급 화이트 와인 산지로 유명한 소떼른 지역 와인에서 주로 발견되며 게부르츠트라미너 포도 품종의 와인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후각을 예민하게 길들이면 불량 와인도 구분해낼 수 있다. 식초 냄새가 나면 와인에 초산이 너무 많이 함유된 것이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나면 와인이 불량 코르크의 향을 빨아 들였다고 보면 된다. 성냥이 타는 유황냄새가 나면 발효의 부산물인 이산화황이 너무 많이 함유된 와인이다. 범준규 롯데아사히주류 와인팀 팀장은 “오크통에서의 숙성이 길어져도 훈연, 그슬린 향, 토스트 냄새, 탄 냄새가 와인의 향을 방해할 수 있다”며 “오래 되거나 더러운 통에서 숙성된 와인은 산화로 인해 식초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신 와인이 무슨 향을 지니고 이 향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조상덕 금양인터내셔날 부장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통일돼 있는 표현들을 익히면 와인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와인을 부담 없이 즐기려면 이런 용어에 얽매일 필요 없이 자기만의 표현법을 만들어 느낌만 전하면 된다”고 말한다.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어차피 개인차가 있고 후각의 기억도 결국은 경험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윤정현 기자(hit@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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