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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30. 21:03 연예와 문화

명품가방, 그 치명적 유혹


지난 8월 10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면세점 루이비통 매장에서 쇼핑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명품가방에 목매는 그녀들

여자들은 대체로 딱딱한 경제 뉴스는 관심조차 없다.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미국발 경제위기는 남편이 즐겨 보는 헤드라인 뉴스일 뿐 그녀에겐 먼나라 이야기다. 그런 그녀들도 경제 뉴스에 관심을 보일 때가 있으니 그건 바로 ‘환율 악화로 인해 해외 명품 가격 줄줄이 인상’ ‘샤테크를 아시나요?’ ‘에르메스에 이어 샤넬도 가방 가격 인하’라는 제목의 경제 뉴스다. 미국의 국가신용도가 한 등급 낮아져 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는 것보다 환율이 또다시 요동쳐 해외 명품 브랜드의 가격이 올라가진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 명품에 중독된 여자들의 솔직한 마음이다.

“나는 명품 중독자”

명품 좀 안다는 이유로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명품 중독자다. 완전 인정한다. 럭셔리 멤버십 잡지에서 패션디렉터로 6년이나 일한 여자로서 10여개의 명품 가방은 절대 많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 역시 중독이기에 할 수 있는 주장이다. 소유의 대상을 넘어 잡지 기사를 위해 꼭 알아야 했던 명품 가방은 필자의 월급으로 쉽게 살 수 없는 비싼 것이었다. 그러다 점차 해외 출장이 많아지고, 새 시즌의 새로운 컬렉션을 접하고, 패밀리 세일(명품 브랜드 직원이나 기자, 스타일리스트에게만 공개하는 세일)이라는 별천지를 만나는 순간, 필자의 옷장엔 명품 가방이 하나씩 늘어갔다. 밀라노에서 구입한 프라다와 구찌, 패밀리 세일 때 구입한 펜디와 불가리, 파리의 아울렛에서 구입한 YSL(입생로랑)과 셀린, 그리고 뉴욕의 소호 매장에서 300만원 정도 가격으로 구매한 샤넬 백까지…. 명품 가방의 수가 늘어날수록 통장 잔고는 줄어만 갔지만 스타일에 따라, 기분에 따라 바꿔 들 수 있는 명품 가방을 보며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았다.

그런 나 자신에게 제일 먼저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명품을 사 모았니?”라고. ‘딱히, 그냥… 예쁘니까?’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 뿐 무언가에 홀린 듯 사 모았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처음엔 명품 가방을 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부러움 가득한 그 눈동자를 대하는 느낌은 참으로 짜릿했다. 단지 그런 이유로 100만원이 훨씬 넘는 가방을 아무렇지 않게 사 모았다는 사실을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어, 필자와 비슷한 명품 가방 중독 증상을 겪고 있는 지인들에게도 질문을 던져봤다. “당신은 왜 명품 가방에 열광하십니까?”라고.

“왜 사냐고? 있어 보이잖아!”

스마트폰 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톡으로 후배 A씨에게 제일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채 5분도 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있어 보여서요.” 그녀의 답은 간단하고도 명료했다. 30대 초반의 미혼인 A씨의 직업은 필자와 같은 패션잡지 에디터. 그녀에게도 명품 가방은 갖고 싶은 물건이자 직업적으로도 꼭 알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월급과 맞먹는 가격의 명품 가방을 1년에 두세 개씩 사는 이유가 바로 ‘있어 보여서’란다. “명품 가방을 메면 ‘나는 패션도 알고, 그것을 살 만한 능력도 된다’는 것을 굳이 말하지 않고도 남에게 과시할 수 있는 거죠.” SMS 메시지를 받은 20대 중반의 평범한 직장인 P씨도 A씨와 비슷한 의견이었다. “명품을 들면 일단 ‘간지’가 나고, 디자인도 확실히 예쁘기 때문에 들고 다니면 자연스럽게 자신감이 생겨요.” 실제 P씨는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이지만 세 개 정도의 명품 가방을 갖고 있다. 대학생 때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으로 수십만원짜리 국내 브랜드 가방을 들던 P씨는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해외 명품 브랜드 가방만을 주로 구입했다. 또래 친구들이 결혼 자금을 위해 돈을 모을 때 P씨는 그 돈으로 명품을 샀다. 그녀는 국내 명품 가방 가격이 너무 비싸서 홍콩으로 원정 쇼핑을 갈 계획도 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홍콩에서 1년에 두 번 하는 빅 세일 기간을 이용하면 국내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명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은 여행도 하고 쇼핑도 즐기기 위해 홍콩을 즐겨 찾는다.

자신감 때문이지!

A씨와 P씨의 경우처럼 월급을 많이 받든 그렇지 않든, 나이가 적든 많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대부분의 여자들이 명품 가방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신감과 자부심’ 때문이다. 월급을 쪼개고 쪼개서 할부로 명품 가방을 구입하는 여자들은 루이비통이나 구찌, 프라다처럼 대중적인 명품 브랜드의 엔트리급(가격 100만원 내외로 가죽이 아닌 패브릭으로 만든 스타일)의 명품 가방을 멘다. 경제적 수준이 높아지고 상류층으로 올라갈수록 일반인들은 잘 알지도 못하고 또 설령 안다 해도 쉽게 구입할 수 없는 하이엔드 명품 가방을 메며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낀다.

자기만족을 위해 한 달 월급보다 비싼 가방을 사는 여자를, 남자들 혹은 명품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한번 명품에 눈을 뜬 여자라면 길을 가다가도, 카페에 앉아서도, 백화점에 가서도, TV 드라마를 보다가도 연기자 혹은 다른 여자들이 무슨 가방을 들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드라마 속 러브라인보다 여주인공이 그날 든 가방에 더 관심을 가진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급기야는 ‘김남주 가방’ ‘공효진 가방’이라는 타이틀의 브랜드 마케팅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명품 가방을 향한 여성들의 초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명품 가방 쇼핑으로 이어진다. 실제 생애 첫 명품 가방이 주는 ‘대단한 자부심’과 TV 속 등장한 명품 가방을 들고 외출했을 때 주변에서 보인 뜨거운 반응을 느껴본 여자들은 그 후, 더 비싼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노력하고 또 구입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여자들이 처음에는 수십만원짜리 가방에서 시작해 결국에는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하는 명품 가방으로 그 취향이 옮겨 간다.

다른 엄마들에게 기죽기 싫어서…

지난 3월 큰딸을 초등학교에 보낸 30대 후반의 전업주부 K씨. 그녀에게도 명품 가방에 열광하는 이유를 묻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명품 가방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학부모 모임에서 기가 죽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난 겨울 남편을 졸라서 부랴부랴 생애 첫 명품 가방을 구입한 그녀였다. “당연히 학교 갔을 때 선생님이나 다른 학부모에게 기죽지 않기 위해서지. 학부모회의 가보니깐 엄마들 대부분이 명품 가방을 들고 왔더라고. 그중에 루이비통(그녀가 구입한 가방도 루이비통이었다)은 정말 대중적인 것이고 샤넬이나 에르메스 정도는 들어줘야 더 있어 보이더라.” K씨의 말처럼 주부들에게도 명품 가방이 사회적·경제적 지위를 나타내는 잣대가 된 지 오래다. 우리 아기가 얼마나 똑똑하고, 남편이 한 달에 얼마를 벌고, 시댁에서 물려받을 유산은 얼마인지를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것보다 일단 명품 가방 하나를 어깨에 메는 것이 다른 학부모들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 년이면 수도 없이 있는 학부모 모임뿐 아니라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새롭게 만나는 학부모와 선생님에게 매일 같은 가방만 드는 여자로 보일 수 없기 때문에 K씨와 같은 이유로 명품의 세계에 발을 들인 여자는 또다시 새로운 명품 가방을 갈망한다.

K씨 같은 전업주부가 남편을 설득할 가장 좋은 단어가 있으니 바로 ‘샤테크’다. 샤넬을 이용한 재테크의 신조어인 샤테크는 해마다 명품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다 보니 샤넬 같은 명품 브랜드 제품을 미리 사두었다가 나중에 팔면 돈이 된다는 뜻에서 생겼다. 명품 브랜드는 ‘본사 차원의 세계적인 가격 정책의 일환’이라는 이유로 해마다 큰 폭의 가격 인상을 감행하기 때문에 빨리 구입할수록 이득이 된다는 것이 K씨를 비롯한 많은 명품 가방 애호가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필자가 2008년 뉴욕에서 구입한 300만원 상당의 샤넬 백은 현재 두 배 정도로 가격이 올랐다. ‘국내 가격보다 200만원 정도 싼 샤넬 백을 사기 위해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할 수 있는 것도 모두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되는 국내 명품 가격 때문이다. 명품 가방밖에 다른 어떤 것도 관심 없는 여자에게 ‘샤테크’라는 말은 명품을 구입해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를 설명하는 그저 고마운 단어일 뿐이다.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 만한 해외 명품 브랜드 홍보 담당자인 J씨. 그녀에게도 조심스럽게 “당신은 왜 명품 가방에 열광하십니까?”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개인적인 생각을 먼저 말씀드리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명품 브랜드 가방은 일단 구입할 때는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3년 후, 혹은 5년 후에 다시 꺼내 들어도 품질과 상태가 거의 그대로이며, 당시의 트렌드와 비교해도 별로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트렌디해 보이기도 합니다. 20만~30만원짜리 가방을 여러 개 사는 것보다 100만원짜리 명품 가방을 하나 사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경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재 100만원짜리 명품 가방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명품 가방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요.(^^)” 그녀의 답변은 처음 질문에 답했던 후배 A씨나 전업주부인 K씨보다 훨씬 더 논리적이었다.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방

“명품 브랜드 홍보 담당자로서도 대답하자면 명품 브랜드가 무조건 비싼 가격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명품 브랜드는 말 그대로 소재부터 제작 과정까지 최고의 품질만을 고수합니다. 디자이너는 트렌드를 리드하면서도 동시에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진부해 보이지 않는 타임리스 디자인을 위해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여성들이 갖고 싶은 디자인의 명품은 단지 가격을 높인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엄마가 딸에게 물려줘도 품질부터 디자인까지 전혀 구시대적이지 않은 것, 그것이 진정한 명품의 힘이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명품 가방을 즐겨 드는 대부분의 여자들도 J씨의 의견에 공감한다. “대학생 때 엄마의 옷장에서 발견한 루이비통이나 샤넬 가방을 들고 다니던 친구가 정말 부러웠어요. 그래서 저도 명품 가방을 구입할 때 유행보다는 앞으로 10년, 멀게는 30년을 들 수 있는 클래식한 스타일의 가방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나중에 제 딸이 제가 지금 들던 가방을 숙녀가 되어 언제든지 다시 들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젠가 명품 가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사석에서 누군가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명품 가방을 세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명품 가방을 사랑하는 여자들이 그들의 입장에서 과장해 만들어낸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무남독녀 외동딸인 40대 중반의 H씨는 지난해 칠순을 맞이한 친정어머니에게 에르메스 버킨백을 선물했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남은 생애 동안 ‘정말 좋은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시길 바란 마음이 가장 컸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선물한 그 가방을 물려받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H씨는 그녀의 버킨백과 다른 소재, 다른 컬러의 가방을 친정어머니에게 선물했다. 아버지가 차던 오래된 기계식 시계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처럼, 엄마도 주얼리뿐 아니라 명품 가방을 딸에게 물려주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고 있다.

여자들이 명품을 열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부심과 자신감’ 때문이다.

한동안 명품 가방 구입에 열을 올리다가 최근 시큰둥해진 L씨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이 명품 가방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녀의 답은 “다 부질없어. 처음엔 몇 달, 나중엔 몇 주, 일주일, 며칠 그리고 몇 시간 지나니까 갖고 싶던 가방을 가졌다는 만족감이 금방 사라져 버리더라. 그래서 난 요즘 명품 가방에 관심이 없어졌다. 대신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새로운 대상을 찾았어. 바로 주얼리랑 시계야.” L씨의 대답은 정말 예상 밖이었다. 100만원 조금 넘는 명품 백도 구입하기엔 비싼데 수백만원부터 시작해 수천만원이나 하는 주얼리 또는 시계라니. “근데 시계나 주얼리는 명품 가방 사듯이 그렇게 일 년에 몇 개씩 살 생각은 절대 없어. 앞으로는 물건을 소유하는 데 집착하지 않고 그 물건이 지닌 가치를 소유할 생각이야. 가방이 아닌 주얼리와 시계에서 그 가치를 조금씩 발견한 거 같거든.”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도 읽은 듯, 그녀가 갑자기 철학적으로 변한 듯 보였지만 수많은 명품 가방도 다 부질없다 말하면서 그보다 훨씬 비싼 시계나 주얼리를 갈구하는 모습은 또 다른 중독 증상의 시작처럼 보였다.

명품가방도 시시해, 이젠 주얼리!

솔직히 고백하건대, 마지막 L씨는 필자 본인이다. 커피나 담배, 마약처럼 명품에 중독된 필자는 명품 가방이 유일한 탈출구라 믿으며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을 소유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열심히 신용카드를 긁었다. 그것을 가졌고 그래서 기뻤지만 언젠가부터는 그 모든 것이 허망해졌다. 그렇다고 여전히 명품 가방과 사랑에 빠진 수많은 여자들을 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녀들 역시 언젠가 필자처럼 그런 시기를 겪을 수도 있을 테니까.

남자들은 ‘여자는 왜 명품 가방에 열광하는가’에 관한 이 기사를 읽으며 ‘혹시 내 마누라도…?’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여자들이 명품 가방을 좋아하는 이유는 앞서 다섯 명의 명품 가방 소유 여성들이 말한 것과 절대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이 명품 가방에 열광하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남성이라면 아내에게 그녀가 평소 갖고 싶어 하던 명품 가방 하나를 선물해 보라. ‘살면서 내 아내가 이렇게 기쁜 표정을 지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는 부인의 미소를 보게 될 거다. 그리고 그 순간 당신도 명품 가방의 진정한 매력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뉴스로 본 명품가방

“가방 사려고” 노래방 도우미 나선 주부·후배 돈 뺏은 10대

해외 여행을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국내에 입국하기 전 ‘세관신고서’라는 것을 작성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출국 시 구입한 면세품과 해외에서 구입물품을 포함하여 미화 400달러를 초과한 일반 휴대품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예’가 아닌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명품 브랜드의 여름 세일 기간에 맞춰 저렴한 가격에 명품을 구매하기 위해 홍콩으로 쇼핑 여행을 다녀온 20대 직장 여성도, ‘샤테크’를 위해 겸사겸사 프랑스 파리를 다녀온 30대 주부도, 아내 등쌀에 못 이겨 출국하기 전 국내 면세점에서 100만원이 훨씬 넘는 명품 브랜드 가방을 구입해 트렁크에 몰래 숨겨온 40대 남자도 모두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400달러가 넘는 제품을 구매했으면서도 버젓이 ‘아니오’라고 답하는 것은 ‘외국환거래법’상 명백한 위법이다. 대한민국을 뒤덮고 있는 ‘명품 열풍’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400달러 이상의 제품을 해외 또는 국내 면세점에서 구입하고 신고하지 않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보다 안도의 한숨을 먼저 내쉴 정도로, 대한민국에는 명품 가방이라는 것을 얻기 위해 크든 작든 범법행위를 자행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한다.

지난 5월, 중소기업에 다니는 20대 직장 여성이 명품 쇼핑과 성형수술을 위해 2년여 동안 공금 16억원을 횡령해 결국 회사가 부도까지 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신문 사회면에 실렸었다. 신문에 보도된 내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아이의 사교육비 마련을 위해 노래방 도우미를 자처했던 주부들이 사교육비뿐 아니라 명품 가방 구입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또다시 노래방 도우미를 비롯한 불건전한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그녀들에게 명품 가방은 아이의 기를 살려주는 또 다른 사교육의 수단이었다고 한다. 명품 가방을 향한 여자들의 삐뚤어진 열망은 20~30대 여성뿐 아니라 어린 10대들에게도 해당된다. ‘여고생도 명품 가방 위해 명품계 만들어’ ‘명품 가방 사려고 상습적으로 친구와 후배의 금품 갈취’ 등 명품 가방 관련 뉴스는 경제면이 아닌 사회면에 더 자주 등장한다.

명품 가방을 가지고 싶어하는 여자는 많지만 원한다고 해서 모두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시 경제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명품 가방을 갖고 싶어하는 아내를 못마땅해 하는 남편도 적지 않다. 이 경우 명품 가방은 부부 사이를 갈라놓는 촉매 역할을 한다.

가방 본래의 목적은 휴대폰과 지갑, 수첩을 비롯한 휴대품을 넣고 가지고 다닐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가방을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또 다른 신분증으로 여긴다. 수백만원짜리 가방을 들면 그녀의 신분도 그만큼 올라간다고 믿기에 범법자가 되는 줄도 모른다. 해외에서 구입한 400달러가 넘는 제품을 세관에 신고하지 않으면 위법이라는 사실을 세관신고서를 쓰는 그 순간에도 인식하지 못한다. 국내의 해외 명품 가방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파리나 뉴욕에서 샤넬 백을 국내보다 저렴하게 구입했다 하더라도 인천공항에서 세관에 신고하지 않고 입국하면 당신은 이미 범법자다. 운이 좋았다고 한도의 한숨을 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범법자다. 진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의 홍콩산 특A급 짝퉁(진짜와 구별이 어려운 가짜 제품)을 주변 사람 모두가 진품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고 좋아하는 당신도 이미 범법자다.

‘천재적인 감각을 지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하고, 수십 년간 한길만을 고집한 장인이 한 땀 한 땀 완성한 그것’이 명품의 진정한 가치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치’가 아닌 ‘그것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그럴 능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로만 생각한다. 대부분의 물건이 그러하듯이 명품 가방 자체는 죄가 없다. 그것을 무리하게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의 욕심이 문제일 것이다. 명품 가방, 그게 도대체 뭐기에 여자들은 물불을 안 가리고 그것을 갖기 위해 몸부림치는 걸까?


주간조선기사원문
/ 이은경 자유기고가·‘에비뉴엘’ 전 패션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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