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리지 [連理枝]란?
연리지란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나무처럼 자라는현상을 말한다.
連 : 이을 연
理 : 이치 리, 결 리
枝 : 나뭇가지 지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나무처럼 자라는현상이다. 매우 희귀한 현상으로 남녀 사이 혹은 부부애가 진한 것을 비유하며 예전에는 효성이 지극한 부모와 자식을 비유하기도 하였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소나무 연리지가 유명하며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송면리의 소나무도 연리지로 알려져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에는 동백나무 연리지가 있으며 마을사람들에게 사랑을 상징하는 나무로 보호되고 있다.
《후한서(後漢書)》 채옹전(蔡邕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후한 말의 문인인 채옹(蔡邕)은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채옹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삼년 동안 옷을 벗지 못하고 간호해드렸다. 마지막에 병세가 악화되자 백일 동안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고 보살피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시묘(侍墓)살이를 했다. 그 후 옹의 방앞에 두 그루의 싹이 나더니 점점 자라서 가지가 서로 붙어 성장하더니 결(理)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한그루처럼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연리지 어휘에 관한 출전은
<후한서(後漢書)의 채옹전(蔡邕傳)>과 당나라 백거이의 <장한가(長恨歌)>
후한의 채옹(蔡邕)은 본성이 독실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으로 눕자 3년동안 계절이 바뀌어도 옷한번 벗지 않았으며 잠자리에 들지 않은 것이 70일이나 되는 때도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옆에 초막을 짓고 모든 행동을 예에 맞도록 하였다. 그 후 채옹의 집 앞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자랐는대, 점점 가지가 서로 붙어니 나중에는 나무 결까지 하나가 되었다한다. 여기서 나온 연리지(連理枝)라는 말은 지극한 효심을 뜻하는 말이었다. 채옹은 붓글씨의 명필가로도 이름이 특출하다.
그런데 후대에는 이말이 부부간의 지극한 사랑을 뜻하는 말로 쓰였는데 백낙천의 장한가에 나온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대당제국(大唐帝國)의 영화(榮華)가 차츰 기울기 시작했을 때였다그것은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로맨스 때문이었다. 楊貴妃에 빠진 玄宗이 정치에 뜻을 잃었던 것이다. 둘의 로맨스가 워낙 유명했으므로 그는 詩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것이 유명한『장한가(長恨歌)』다.생전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이 언약했다고 한다."7월 7일 장생전에서/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 있는데/이 한 끝없이 계속되네."
[원문]邕性篤孝, 母常滯病三年, 邕自非寒暑節變, 未嘗解襟帶, 不寢寐者七旬 母卒, 廬于 側, 動靜以禮. 有 馴擾其室傍, 又木生連理, 遠近奇之, 多往觀焉. 與叔父從弟同居, 三世不分財, 鄕黨高其義. 少博學, 師事太傅胡廣. 好辭章,數術,天文, 妙操音律.<'後漢書' 蔡邕傳>
<백락천(白樂天)의 장한가(長恨歌)>
七月七日長生殿(칠월칠일장생전)7월 7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和語時(야반무인화어시)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재지원위연리지)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
天長地久有時盡(천장지구유시진)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 있는데
此恨綿綿無絶期(차한면면무절기)이 한 끝없이 계속되네.
- 위시는장한가중의 일부 임-
연리지 - 사랑나무 이야기
맞닿은 두 나무의 세포가 서로 합쳐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연리(連理)라고 부른다. 연리는 두 몸이 한몸이 된다 하여 흔히 남녀간의 사랑에 비유되는 ‘사랑나무’이다.
숲 속의 나무들은 좁은 공간을 나눠 갖고 살아간다. 나눔의 방법이 정해진 것은 아니니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남보다 먼저 쑥쑥 키 자람을 하고, 가지와 잎을 잔뜩 펼쳐놓아야 한다. 자연히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조금의 빈 자리라도 생겼다 하면 주위의 나무들은 우선 가지부터 들이밀고 본다. 서로가 부딪치면서 맞닿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자기만 먼저 살겠다고 발버둥치지만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이 지나다 보면 함께 협조해야 살아남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서로의 부족함을 조금씩 메워나갈 수 있도록 아예 몸을 합쳐 한나무가 되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렇게 맞닿은 두 나무의 세포가 서로 합쳐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연리(連理)라고 부른다.
연리는 두 몸이 한몸이 된다 하여 흔히 남녀간의 사랑에 비유되며 나아가서 부모와 자식, 가족 사이, 친구 사이의 사랑까지 이 세상의 모든 사랑은 하나로 이어진 두 나무로 형상화된다. 바로 ‘사랑나무’다.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連理枝),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連理木)이다. 연리목은 흔히 나무를 심을 때 너무 가까이 심은 탓에 세월이 지남에 따라 지름이 굵어진 줄기가 맞닿아 생기는 현상이다. 그러나 연리지는 매우 드물게 생긴다. 가지는 햇빛을 많이 받도록 서로 피해 뻗으니 우선 서로 맞닿을 기회가 적다. 운 좋게 맞닿았더라도 바람에 흔들리면 서로 상대방의 세포와 사귀어보고 결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매우 희귀하다.
한편 땅 속에선 지상보다 이런 연리현상이 보다 훨씬 흔하게 일어난다. 좁은 공간에 서로 뒤엉켜 사는 뿌리들에겐 서로 맞닿을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연리근(連理根)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지만 쓰지 않는 말이다. 베어버린 나무등걸이 몇년이 지나도 죽지 않고 그대로 살아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잘리지 않은 옆의 나무와 뿌리가 연결되어 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주변은 너무 빨리 변해가고 있다. 자고 나면 업그레이드를 생각해야 하는 정보화 세상이라지만 가장 전통적이고 우리다워야 할 남녀 사이의 사랑 방식도, 가치관도 몰라볼 만큼 달라지고 있다. 혼전 동거를 다룬 ‘옥탑방 고양이’란 미니시리즈가 안방극장의 인기 프로가 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너무 쉽게 만나고 너무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 사랑은 바람처럼 지나가는 유행일 뿐이다. 서로를 보듬고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 대 사람의 사랑은 시대를 초월해 진정한 의미로 남을 것이다. 특히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부부의 연을 맺어 평생을 같이 하는 과정을 연리지로 승화시킨 옛 사람들의 사랑 방식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음나무연리 가로단면
연리지로 이어지는 사랑 타령
중국의 남북조시대에 송나라(420~479) 범영이 쓴 역사책 「후한서」 채옹전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후한 말의 대학자인 채옹이란 사람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지극한 정성으로 간호를 하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3년 동안 묘를 지켰다. 얼마 후 채옹의 방 앞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서로 마주보면서 자라나기 시작했다. 차츰 두 나무는 서로의 가지가 맞붙어 마침내 이어져 연리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그의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와 자식이 한몸이 된 것이라고 칭송했다. 이때부터 연리지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사랑을 나타내는 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세월이 한참 지나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에 인용되면서부터 연리지는 남녀 사이의 변함없는 사랑의 뜻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다.
서기 736년, 무혜왕비를 잃고 방황하던 56세의 현종은, 남도 아닌 자신의 열여덟번째 아들 수왕 이모(李瑁)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제왕이 하는 일에는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한 왕조시대의 사람들이었지만, 훗날 양귀비가 된 스물두 살짜리 며느리와의 사랑 놀음은 당시로서도 충격적인 스캔들이 아닐 수 없었다. 비극으로 끝난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양귀비가 죽고 50여 년이 지난 서기 806년, 유명한 시인 백거이(백낙천)에 의하여 ‘장한가(長恨歌)’라는 대서사시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당태종이 양귀비의 무릎을 베고 누워 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백거이가 이렇게 노래하였다. “칠월칠일 장생전에서/ 깊은 밤 두 사람은 은밀한 약속을 하는데/ 우리가 하늘에서 만나면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이승에서 다시 만나면 연리지(連理枝)가 되세…”
중국의 전설에 비익조는 눈도 날개도 한쪽만 있는 새다. 암수가 합치지 않으면 날 수 없는 신화 속의 새이다. 연리지는 물론 두 나무의 가지가 합쳐 하나가 되어야 만들어지는 나무이다. 이후 수많은 중국인들의 사랑 이야기에 연리지는 단골손님이 된다.
우리 역사 속에도 일찌감치 연리가 등장한다. 남녀의 사랑에 한정시키지 않고 상서로운 조짐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때로는 선비들의 우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서민들 사이에선 이 나무에 빌면 부부 사이가 좋아진다는 믿음이 유행했다. 또 연리지에 올라가 기도를 하면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속 연인이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바로 그 연인에게 상사병이 옮겨가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내물왕 7년(362) 4월에 시조 묘의 나무가 연리되었으며, 고구려 양원왕 2년(546) 2월에 서울의 배나무가 연리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사」에도 광종 24년(973) 2월에 서울 덕서리에서 연리지가 났으며, 성종 6년(987)에 충주에서도 연리지가 생겨났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처럼 연리지의 출현을 일일이 역사책에 기록할 만큼 희귀하고 경사스러운 길조로 생각한 것이다.
고려 중기 이규보의 시문집인 「동국이상국집」의 고율시(古律詩)에 “그대 비록 후배라 함께 공부 안 했으나/연리지 나무처럼 한집안 형제 같네…”, “난새는 짝 잃으면 못 떠나고 방황하네/ 초목 중엔 연리지가 의좋기로 소문나니/ 꽃 마음은 한가지나 꽃답기는 다르도다/ 부부가 없다면 짝이 어찌 될 것이며/ 형제 또한 없다면 기러기가 어이 줄서 가랴…” 하며 친구 사이의 우정과 혈육의 정을 연리지에 비유했다.
또 김시습의 「금오신화」에도 “연리지 가지 끝엔 붉은 꽃/ 서러워라 내 인생 나무만도 못하구나/ 박명한 이 청춘 눈물만 고이네”라고 하여 저승에서 나누게 되는 사랑의 서러움을 연리지와 비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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