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와 문화

영화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맛있는 술, 데킬라 슬래머!

bluewaves 2010. 8. 11. 16:34

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에 살면서 갖게 되는 불만 중의 하나가 이거다. 제대로 된 테킬라를 사 마시기 힘들다는 것이다. 몇 해 전에 누가 외국에서 사온 테킬라를 마셨는데, 끈적거리는 느낌이 없고 단 맛도 없으며 뒤끝도 깨끗했다. 그 며칠 뒤 대형 마트에서 테킬라를 사서 마셨는데, 그것도 2~11개월 숙성시켰다는 ‘레포사도’를 사서 마셨더니, 또다시 달고 끈적거리고 뒤끝도 나빴다. 왜 그러지? 뭐가 다른 거지?

뭐가 다른지, 1년 전에 술에 관한 책을 쓰다가 알게 됐다. 테킬라를 아가베(용설란)로 만든다는 것, 그리고 테킬라라는 명칭을 함부로 쓰지 못하도록 멕시코 정부가 관리한다는 것 등은 술에 조금만 관심 있는 이라면 알고 있을 거다. 이런 정보에 기초해, 테킬라는 100퍼센트 아가베로 만들도록 멕시코 정부가 감독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테킬라엔 두 종류가 있다. 100퍼센트 아가베로 만든 것과, 아가베 51퍼센트 이상에 설탕, 캐러멜 색소, 글리세린 향료 등을 첨가해 만든 ‘테킬라 믹스토’가 있다.

예전엔 멕시코 정부가 ‘테킬라 믹스토’의 수출을 금지하다가, 수년 전부터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테킬라 믹스토’엔 ‘테킬라’라고만 쓰여 있을 뿐, ‘믹스토’라는 말이 표기돼 있지 않다. 그럼 100퍼센트 아가베로 만든 테킬라와 어떻게 구별하냐고? 100퍼센트 아가베 테킬라는, 반드시 병에 ‘100퍼센트 아가베’라고 표기한다. 이 표기가 없으면 ‘테킬라 믹스토’인 것이다. 한국의 주류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서 파는 테킬라를 유심히 보시라. ‘100퍼센트 아가베’라는 표기는 찾기 힘들 거다.(나는 찾지 못했다.) 어떤 테킬라 브랜드는 병에는 ‘100퍼센트 아가베’ 대신에 ‘100퍼센트 테킬라’라고 써 놓았는데 이것 역시 ‘테킬라 믹스토’이다.

왜 ‘테킬라 믹스토’만 들여오고 ‘100퍼센트 아가베’ 테킬라는 안 들여오는 걸까. 알아보니, 한국의 주류 수입규정에 특정 성분 함량 규제치가 다른 나라보다 높은데, ‘100퍼센트 아가베’ 테킬라가 이 규정에 걸린다고 했다. 조만간 이 규정이 완화될 것이라고도 하지만 여하튼 아직은 아니다.

몇 달 전에 외국 다녀온 후배에게 테킬라를 한 병 사오라고 했다. 물론 ‘100퍼센트 아가베’를 확인하라고 했다. 그렇게 구한 ‘100퍼센트 아가베’ 테킬라와, 한국 마트에서 산 ‘테킬라 믹스토’를 비교해 마셔봤다. 누구라도 이렇게 비교해 마셔본다면, ‘테킬라 믹스토’는 더 이상 먹기 싫어질 거다. 달고, 끈적거리고, 자연스런 향은 사라지고 대신 인공 감미료의 향이 나고….

이번에 소개할 술은 ‘테킬라 슬래머’이다. 이걸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파는 테킬라가 맛없다는 소리부터 하는 게 참 예의 없지만, 어쨌거나 사실은 사실이니 할 수 없는 일. ‘100퍼센트 아가베’ 테킬라가 있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다면 맛에 대해 눈높이를 조금 낮추고, 조금 더 관용의 자세를 가질 수밖에…. 테킬라 슬래머는 잔에 테킬라와 탄산음료를 넣고 잔의 윗부분을 손바닥으로 막고서 바닥에 ‘쾅’하고 쳐서 거품이 위로 올라오게 해서 마시는 것이다. 어떤 자료에는 테킬라 슬래머를 칵테일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록글라스에 진저엘이나 ‘세븐 업’, ‘마운튼 듀’ 같은 탄산음료를 테킬라와 동량으로 넣고 마시라고 한다. 또 탄산음료 대신 샴페인을 넣은 걸, ‘슬래머 로얄’ 혹은 ‘골든 슬래머’라고 부른단다.

또 어떤 자료는 테킬라 슬래머를 테킬라 마시는 방법의 하나로 소개한다. 테킬라를 스트레이트로 마실 땐, 손등에 소금을 발라 놓고 테킬라를 마신 뒤 그걸 핥고 레몬(혹은 라임) 조각을 빨아먹거나(테킬라 크루다), 남녀 커플일 경우 조금 더 에로틱하게 자기 손등 대신 상대방의 몸을 사용(?)하거나(바디 샷) 하고, 이와 달리 잔을 쾅쾅 내려치면서 흥을 돋우는 방법으로 테킬라 슬래머를 제시한다. 칵테일의 한 종류라고 하던 테킬라 마시는 방법의 하나라고 하던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내가 마신 건 테킬라에 ‘세븐 업’처럼 당분이 많이 들어간 탄산음료를 섞은 게 아니라 달지 않은 소다수를 섞은 것이었다.

1년 전에, 앞에 말한 후배가 외국에서 사온 ‘100퍼센트 아가베’ 테킬라에다가 탄산수를 섞었다. 마침 집에 보통 위스키 스트레이트 잔의 1.5배쯤 되는 조금 큰 잔이 있었다. 거기에 테킬라와 탄산수를 반씩 넣고 잔 위를 손바닥으로 막고 바닥에 쾅 치면 거품이 조금 새어 나온다. 그걸 원샷하면서 셋이서 번갈아 마시니까 금방 술이 동나고 말았다. 달지 않으면서 향이 풍부하고, 목 넘길 때의 따끔함과 함께 이내 적당한 취기가 올라오고, 섞고 바닥에 치는 과정이 마치 폭탄주 만들어 마시듯 재밌기도 하고….

이 테킬라 슬래머는 외국 영화, 특히 프랑스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취하기로 작정하고 마실 때 이걸 먹는다. 그만큼 흔한 술인데, 이걸 ‘내가 찾은 술’이라고 새삼 소개하는 건, 정말로 맛있기 때문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아마 그날 마셨던 그 술이 내가 지금까지 마셨던 술 가운데 가장 맛있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위스키, 진, 럼, 보드카, 테킬라, 브랜디 등의 스피릿(증류한 독주) 가운데 스트레이트로 마실 때 가장 맛있는 게 테킬라 아닌가. 스트레이트로도 맛있는 그 테킬라에 탄산수가 섞이면 테킬라 고유의 풀 비린내 같은 게 약해지는 동시에 탄산이 주는 청량감이 보태진다. 맛이 좋으면서도 알코올 도수가 높아, 빨리 흥을 돋우려고 할 때 제격이다.

역시 문제는 테킬라이다. 그 뒤에 마트에서 테킬라 믹스토를 사서 탄산수와 섞어 슬래머를 해 먹었다. ‘100퍼센트 아가베’ 테킬라와 섞었을 때에 비해 무엇보다 맛이 달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맛있었는데, 주의할 건 테킬라 믹스토를 쓸 때일수록 ‘세븐 업’이나 사이다처럼 단 음료를 쓰지 말고 심플한 탄산수를 쓸 것. 그리고 또 하나, 테킬라 마실 때 레몬을 많이 먹으면 테킬라 고유의 향을 놓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소금과 레몬을 손에, 몸에 묻혀 가며 마시는 게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미각에는 크게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테킬라 고유의 향? 한국의 마트에서 파는 건 설탕, 색소, 향료 첨가된 테킬라 믹스토 아닌가. 그러네. 레몬이 있어야겠네.


[출처: 하이트웹진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