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 달가듯

규슈에서 맛보다 1 - 에키벤

bluewaves 2011. 6. 4. 00:19
[오금아의 Chris World] 규슈에서 맛보다 1 - 에키벤
지난 주 일본에 출장을 갔습니다. '규슈신칸센 개통에 따른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하는 세미나 참여를 위해서였죠.
최근 일본 각지의 철도 도시락을소개하는 만화책 '에키벤'을 열심히 봤던 관계로 기회가 되면 한번 먹어보자 했습니다. 그리고 물론 기회가 왔죠. 기회는 찾는 자에게 다가오게 마련이니까요.



1. 규슈 신칸센 사쿠라 벤또(도시락)

지난 3월 12일 전선 개통한 규슈 신칸센을 기념해서 만든 도시락입니다. JR규슈에서 운영하는 고속철은 규슈신칸센 800계와 신800계 열차를말하는쯔바메와 산요-규슈신칸센직통열차인 사쿠라 두가지가 있습니다. 도시락 모양이 사쿠라 호의 앞 모양을 본따서 이름도 사쿠라 벤또 입니다.
후쿠오카 중앙역인 하카다역 내에 위치한 에키벤 가게에서 구입을 했습니다. 제가 본 것만으로 가게가 두 곳이었는데 한 곳은 좀 작아서 이 에키벤은 없다며 큰 곳을 안내해주더군요. 가격은 1천150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도시락통은 재활용이 가능하며 전자렌지에서 1분 정도 데워서 먹어도 된다고 쓰여있더군요.



두둥~ 개봉을 하니 참 아기자기 합니다. 자세히 보니 어린이용 에키벤입니다. 간장에 조린 닭고기를 잘게 부숴 계란 지단 썬 것과 함께 밥 위에 뿌려 놓은 것이 지라시 초밥(단촛물 간을 한 밥 위에 다양한 재료를 뿌려둔 형태)과 비슷합니다. 닭고기 조림과 밥에 약간 달달한 간이 되어서 어린이들이 좋아하겠더군요. 그리고 옆에 소세지, 새우튀김, 어묵, 달걀말이와 얇은 햄버거 패티가 들어있습니다. 다들 적당한 맛입니다. 너무 맛있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빠지지는 않는 맛이었습니다. 보통의 도시락에서 느낀 것보다는 훨씬 좋은 맛이 났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니 단맛이 살짝 도는 닭고기 조림과 밥의
조화가 괜찮았습니다. 어린이들과 열차 여행을 할 때 사준다면 아주 좋아하겠죠. 참고로 도시락통 씻어서 한국에 들고 왔습니다.


2. 북해도산 신선한 해산물 도시락

세미나가 열린 엘가라홀은 후쿠오카시 중심지인 텐진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다이마루백화점이 있고요. 이동 전 잠깐 시간이 나서 백화점에 갔는데 이런
행사가 있더군요. '전국 먹을거리 대회'. 우마이(맛있는) 모노(것)들을 다 모았다는군요. 안들러 볼 수가 없어서 행사장이 있는 8층까지 갔습니다. 후쿠오카, 구마모토 등 규슈 지역과 더불어 멀리 북해도(홋가이도), 심지어 후쿠시마에서 온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물들이 전시, 시식, 판매되고 있었습니다.


첫날은 세미나로 바빠 대충 둘러보고 나왔는데 다음날 텐진에 들를 일이 있어서 다시 갔습니다. 천천히
매장들을 돌며 이것저것 시식도 해보고 궁금한 것은 뭔지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사과맛이 나도록 초절임한 마늘과 약간 얇은 면발의 우동입니다. 아저씨가 마늘을 까주길래 "아니 됐어요"하는데 무조건 먹어보랍니다. 사과맛이 난다고. 반신반의하며 입에 받아 넣는데 진짜 달짝한 사과맛이 납니다. 한참 씹으니 연하게 마늘 맛이 살짝 올라오네요. 또 우동은 현장에서 삶아 간장만 살짝 뿌려주는데 면발이 끝내주더군요. 아쉽게도 지역명이 기억이 안나는군요.
매장을 돌며 꼼꼼히
시장조사를 한 후 한가지를 선택했습니다. 바로 북해도산 해산물로 만든 도시락. 북해도산 대게(털게였을까요?)를 기본 베이스로 성게알, 연어알, 연어와 꽁치 등 생선초밥이 여러가지 조합으로 들어있는 것 중 전 성게알, 연어알, 꽁치초밥이 있는 것을 골랐죠.



장터가 벌어진 한쪽 의자에 앉아 도시락을 열었더니 연어알이 반짝반짝 합니다. 개인적으로 연어알 식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건 좀 괜찮았습니다. 살짝 식초맛이 돈다고 할까요. 게 다리는 살이 도톰하고요 성게알은 쌉싸름합니다. 이들 재료 아래 깔린 밥 위에는 전체적으로 게살을 잘게 찢어서 뿌려뒀더군요. 그런데 특히 밥 옆에 둔 채소줄기 즈케모노(조림)는 아삭한 식감으로 입안을 헹궈주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게살과 알의 조합을 거하게 마친 후에 옆의 꽁치초밥으로 건너갔습니다. 초밥 위에 꽁치를 올리고 위에서 압력을 준 누름초밥입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일본 동부지역 바다에서 잡힌 꽁치는 기름이 많아 특히 맛이 좋다네요. 그런데 요즘 같은 때라면 별로 권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군요.


3. 새우 게살 도시락

바다의 노인이라 불리는 새우가 들어간 도시락입니다. 귀국날 아침으로 먹기 위해 하카다역에서 샀습니다. 가격은 780엔으로 다른 도시락들보다 좀 저렴한 편입니다.



기차역에서 에키벤을 고르든 백화점 지하에서 포장 벤또를 고르든 유통기한을 주의해서 보세요. 당장 먹을 것이 아니라면 유통기한에 여유가 있는 것을 고르는 것이 좋은데 아무래도 고기나 생선을 그냥 조리한 것보다는 초절임한 것이 유통기한이 넉넉한 편입니다. 저도 낮에 사서 여기저기 끌고다니다
호텔 냉장고 보관 후 다음날 먹을 것(상황이 기네요)이라는 점에서 초절임한 새우 게살 도시락을 선택했습니다. 아침 호텔 테이블에 도시락을 꺼내놓고 객실에 비치된 포트를 이용해 뜨거운 녹차 한잔까지 준비했습니다. 냉장고에 보관한 도시락을 먹을 때는 아무래도 뜨거운 물이 필요하더군요.
바깥의
종이상자를 벗기니 위에 마요네즈 소스가 올려져 있군요. 어디 뿌려먹으란 말인데 왜 필요한지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그냥 먹어도 괜찮았거든요.



꽤 큰 새우를 펼쳐서 올린 것이 먹음직스럽습니다. 맛도 괜찮았고요. 물론 신선한 새우의 통통 튀는 식감까지 기대할 수는 없지만 가볍게 초에 절인 맛이 깔끔하더군요. 식초로 간을 한 밥 위에는 역시 달걀 지단 채썬 것이 올려져 있고요. 버섯은 새콤달콤하게 간장조림을 해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옆의 게살이 영 걸리더군요.식초를 너무 많이 넣어서... 이상하게 시큼한 맛이 났습니다. 상해서 나는 맛은 아닌데...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한 조치인 듯 하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지금껏 먹은 것 중에서 제일 별로 였습니다. 혹시 도시락을 선택하신다면 이런 점에 주의를 하셔야 할 듯 합니다.


4. 그냥 인줄 알았던 명품(!) 도시락



전형적인 도시락 중 고급형에 속하는 도시락입니다. 일본에서 세미나나 모임 같은 걸 해보면 따로 나가서 밥을 먹지 않고 도시락을 사다먹으며 사전회의를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식당에 왔다갔다 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사전 준비를 완벽하게 하겠다는 의미겠죠. 미국 연수 중에도 참치샌드위치와 샐러드, 디저트까지 들어있는 도시락을 먹으며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아직 우리의 도시락은
단합대회 같은 단체 야외행사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의 도시락 문화도 얼른 발전했으면 합니다. 거나하게 술잔 돌리는 회식 대신 도시락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업무 토론을 하는 것도 한번쯤 괜찮지 않을까요?

앗 - 이 도시락은 캐널시티 옆 그랜드하야트호텔의 나다만에서 만든 겁니다. 다이마루인지 한큐인지 백화점 지하 식품매장에서 판매하는 걸 봤습니다.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정갈한 맛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시 찾아보니 나다만이라는 회사 상당히 유명한 곳이군요. (나다만 홈페이지 참고
http://www.nadaman.co.jp/chubow/monthly/index.htm)
제가 먹은 것은 1천575엔 짜리인데요. 1830년에
창업, 1951년에 설립한 회사로 일본 내 일류 호텔과 백화점 등에 진출해 있습니다. 이 회사에서 만든 김밥 한줄이 998엔이고(속이 실해 보입니다), 특별 도시락의 경우 1만 500엔이나 하네요. 우리 돈으로 14만원에 이릅니다. 도시락 하나에 일본 요리의 정신을 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데 참 여러모로 놀랍습니다. 나다만 홈페이지 뒤지느라 뜻하지 않게 일본어 공부까지 합니다.하하하.참 별거 아닌 도시락이 뭘.. 하겠지만 벤또, 에키벤이 일본 문화의 상징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추가로 제가 만든 도시락 사진 하나 올립니다.나름 노력했지만 시각적으로 아름답지는 않군요. 단촛물로 간 한 밥 위에 냉장고 속 모든 재료들을 다져서 올린 겁니다. 먹을 때 주걱으로 잘 섞어주면 됩니다. 특히
멸치볶음과 데친 브로콜리도 올려 나름 건강식으로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이런 밥에는 물에 씻어 꼭 짠 김치를 곁들이면 아이들도 잘 먹습니다.
어린시절 어머니가 소풍 때 김밥 대신 한번씩 해주신 것입니다. 저는 기름에 볶지 않은 볶음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울 엄마식 지라시 초밥이었던 듯 합니다. 그럼 다들 즐거운 주말 되세요.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 입력시간: 2011-05-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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