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이야기

삼계화택(三界火宅)

bluewaves 2012. 2. 3. 10:37

삼계화택(三界火宅)


옛날에 어떤 큰 부자가 큰 집안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큰 불이

나서 그 집이 불타게 되었다. 부자는 급히 집을 빠져 나와서 불을 피했지만, 아이들

은 집이 불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놀고 있었다. 부자는 다급한 소리로 아이들을

부르면서 불이 났다고 말했지만, 아이들은 놀이에 정신이 팔려서 그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다.

그러하자, 그 부자는 한가지 아이디어를 내는 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슴의 수레,

양의 수레, 소의 수레와 같은 장남감을 준비하여 아이들에게 여기 있으니 나오라고

유혹하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신기한 장난감이 있다는 말을 듣고, 모두 그 불타는 집에서 나와

부자가 있는 쪽으로 나와서는 장난감을 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그러자 부자는 아이들이 불타는 집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금은보화로

식된 흰 소 수레를 선물하였다.

위 이야기는 법화경에 나오는 내용으로 부자는 부처님을, 아이들은 중생을 그리고

불타는 집은 우리가 있는 삼계인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비유한

다. 또한 사슴의 수레, 양의 수레, 소의 수레는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의 3승을 비유하며 금은보화로 장식된 흰 소의 수레는 일승(一乘)인 깨달음 혹은

해탈을 의미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불타는 집과 같다. 그 불은 바로 탐진치의 불이며 오욕

칠정의 불이며 또한 번뇌 망상의 불이다. 모든 중생들은 행복을 구하지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결코 행복을 얻지 못한다.

대부분의 중생들은 끝없이 일어나는 모든 욕망을 다 채우고 끝없이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다 해소하면 비로소 행복이 올 것이라고 믿지만 이것은 참된 행복에 대한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모든 욕망을 다 채우고 모든 감정을 다 해소한다 하더

라도 결코 영원한 행복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이미 증명하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자신의 모든 욕망을 채울 수 있었던 역사 속의 황제들 그 누

구도 진정한 행복에는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원한 행복은 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세상 어디에도 참된 행복은 없다. 이 세상의 행복은 단지 신기

루일 뿐이다.”

그렇다면 영원한 행복은 정말로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이 세상을 벗어나면 그대가 원하는 영원한 행복이 있다.”

삼계는 거대한 불타는 집이며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불타는 집에 있는 줄

도 모르고 세상살이에 빠져있는 철부지 아이들과 같다.

불타는 집안에서 아무리 시원하고 쾌적한 공간을 찾아도 조만간 불길에 휩쓸리듯

이 삼계 내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 역시 끝없이 되풀이 되는 윤회에 사라지고 만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또한 죽어서 영혼이 극락에 간다고

해도 결코 윤회의 사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니 결코 생로병사의 괴로움으로부터 자

유로울 수 없다. 윤회하는 삼계에서는 결코 괴로움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부처님

은 너무도 명확히 아시기 때문에 모든 중생들이 윤회하는 삼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

는 것이다. 마치 불타는 집에서 놀이에 빠져있는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오기를 바라

는 큰 부자처럼.

불타는 삼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부처님께서는 3승을 설하셨으니 바로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이다. 성문승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아라한(阿羅漢)의 깨달음을 얻

수행자들로 주로 부처님의 제자들이 이에 해당된다.

연각승은 인연법을 깨달은 수행자를 말하는 데 스승 없이 스스로 수행한다고 해서

독각승이라고도 한다. 보살승은 자신의 깨달음 보다는 중생제도를 더 중요시 여기는

수행자들로 보살이라고 한다. 하지만 3승은 삼계의 불길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행의

방편일 뿐이니 비유하면 사슴, 양, 소가 끄는 수레에 해당된다. 결국 모든 중생이 궁

극적으로 얻어야 할 것은 금은보화로 장식된 흰 소가 끄는 수레인 해탈이지만 삼계

화택 안에서 노는데 정신이 팔려있는 중생들에게 해탈의 길을 설하여 이끌기는 어

려운 일이다.

따라서 부처님은 일단 수행자들의 근기에 따라 3승법을 방편적으로 제시하여 수행

의 길로 이끄셨다. 하지만 3승 모두가 결국에는 해탈이라는 일승을 위한 선방편이

니 수행자는 3승을 통하여 수행하되 이에 집착하지 않고 결국에는 일승으로 나가

야 불타는 삼계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부처님이 삼계화택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설한 3승은 수행자들을 일승으로

이끌기 위한 수행 방편이지만 일반 중생들이 불법과 인연을 지어서 수행의 길로 들기

위한 방편으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수행이 무엇인지 모르고 불법과 인연이 없는

중생들을 수행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으로 부처님께서는 복을 구하는 중생들에게는

복을 주고 병든 중생들은 치료하신다. 부처님이 이러한 가피를 중생들에게 내려주는

이유는 모든 중생들이 불법과 인연을 짓고 수행의 길로 들어서 삼계화택에서 벗어나

도록 하는데 있을 뿐, 결코 그 안에서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모면하게 하고자 하는데

있지 않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피만을 바라고 스스로 불타는 집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부처님의 의도를 잘못 파악한 것이며, 또한 금은보화로 장식된 수레를 버리고

초라한 수레를 얻고자 하는 것이니 참으로 어리석은 중생들의 소견이라고 볼 수 있다.

중생구제를 위한 부처님의 방편은 무한하다. 모든 중생들을 해탈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수행자에게는 근기에 따라 방편적으로 3승을 설하시고 또한 일반 중생들에게는 기복
(祈福)이나 구병(救病)을 베푸신다.

하지만 부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일부 수행자들은 자신이 행하는 수행 방법만을 고집하고 집착하여 결국 해탈이라는 최종 목표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일반 중생들은 복을 구하고 병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만 부처님을 찾을 뿐 부처님이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 모두가 불타는 집에서 벗어나기 보다는 집안에서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있는 철부지 어린이와 같으니 바로 화택중생(火宅衆生)인 것이다. 불타는 집에 있는 사람은 집에서 탈출해야 괴로움에서 벗어날 뿐 그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마찬가지로 불타는 삼계에서 벗어나야만 모든 괴로움에 종지부를 찍어서 진정한 행복을 억을 수 있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고 지니고 실천하여 삼계화택에서 벗어나야 한다.

출처: 팔공산 동화사홈피

http://www.donghwasa.net/home/bbs/board.php?bo_table=05_5&wr_id=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