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유물

부산진순절도 (釜山鎭殉節圖)

bluewaves 2012. 2. 18. 14:59
부산진순절도 (釜山鎭殉節圖)


지 정 번 호 :보물 제391호
지정연월일 :1963년 9월 2일
시 대 :조선 영조 36년(1760)
규 모/양 식 :세로 145cm 가로 96cm 종축
재 료 :비단 바탕에 채색
소 유 자 :국유
소 재 지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103번지 육군 박물관
부산진순절도는 임진왜란 당시의 격전 장면을 동래부 화원이었던 변박(卞璞)이 그린 기록화이다. 이 순절도는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와 함께 숙종 35년(1709)에 처음 그려졌으나 현존하는 것은 영조 36년(1760) 동래부사 홍명한(洪名漢)이 당시 동래부 감영 소속의 화원이었던 변박을 시켜 고쳐 그리게 한것이다. 원래 〈동래부순절도〉와 함께 안락서원(安樂書院)에 있던 것으로 지금은 육군박물관으로 옮겨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선조 25년(1592)년 4월 13일과 14일 이틀간에 걸쳐 부산진에서 벌어졌던 왜병과의 전투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부산진성(釜山鎭城)은 경상도 해안지방에 설치된 수군(水軍) 첨절제사(僉節制使)의 진영인 부산포진ㆍ다대포진ㆍ가덕진ㆍ미조항진 등 4개 진 가운데 경상도 제1의 해상관문으로서, 왜군들이 조선에 상륙할 때는 반드시 거쳐야 할 요충지였다. 1592년 4월 13일, 700여 척의 배와 1만 8,700여 명의 병사를 이끌고 오후 5시경 부산포 앞 바다에 도착한 왜군 사령관 고니시는 14일 새벽 부산진을 완전히 포위했고, 당시 부산진의 첨사(僉使)였던 정발(鄭撥)은 성안의 군민 1000여명과 더불어 끝까지 항전하다가 전사함으로서 마침내 부산진성은 함락되었다. 이 부산진 전투의 패배는 바로 동래성 전투의 패배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부산진순절도는 당시 막대한 왜군의 병력에 포위된 채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절박한 전투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대부분의 기록화들이 그렇듯이 격전의 장면을 한 화면에 효율적으로 담기 위해 높은 각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俯瞰法)을 사용해 그렸다. 부산진의 진성은 지금의 수정초등학교 뒤에 있어 당시에는 바로 해안가였는데, 이러한 모습은 작품 속에 잘 나타나 있다. 화면의 오른편 중단에 부산진의 성곽이 포치되어 있고, 그 대각선상으로 성을 공략하기 위해 반달형으로 겹겹이 에워싼 왜병들이 묘사되어 있다. 부산진성 바로 앞의 해안가는 왜병들로 가득 차 있으며, 출렁거리는 바다 전체에는 왜선들이 빈틈없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왜선들의 뱃머리와 해안가의 왜병들이 모두 진성으로 진격하고 있는 모양새는 진성을 향해 돌진하는 강한 방향성과 속도감을 자아내고 있다. 왜군에게 완전히 포위된 부산진성 안에는 엄청난 수적 열세에 놓여 있던 검은 갑옷 차림의 부산첨사 정발(鄭撥)을 중심으로 죽기를 결심한 수비병들이 단호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전투 당시의 비장함과 절박감을 전해 준다. 부산진순절도는 역사적인 자료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인물과 건물 등이 정밀하게 그려진데 반해 구도와 필치에서 경직성이 보이는 등, 전반적인 화격은 그리 높지 못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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