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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하구의 낭만과 추억의 장소] 을숙도

bluewaves 2010. 7. 27. 10:24

[낙동강 하구의 낭만과 추억의 장소] 을숙도





승학산 정상에서 바라본 을숙도 전경.

"을숙도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연인 사이가 아니다."- 지난 1960, 70년대 부산의 젊은이들 사이에 이 말이 무슨 공식처럼 통했다. 연인이라면 당연히 하단에서 쪽닥배를 타고 갈숲의 을숙도로 건너갔다. 미로처럼 얽힌 수로를 따라가며 갈대밭이 들려주는 자연의 음악을 들었다. 도요새 청둥오리 물떼새…수만 마리의 철새가 강물을 차고 오르며 펼치는 군무는 얼마나 환상적이던가?


관광이미지

을숙도의 철새


'새(乙)가 많이 살고 물이 맑은(淑) 섬'이라서 '을숙도'라고 이름했다. 낙동강하구는 삼각주가 발달한 '살아 움직이는 땅'이다. 갯벌과 갈대밭의 생태계 낙원, 동양 최대 철새 도래지 을숙도의 낭만을 모르면 한국의 서정을 모르는 것으로 취급받았다. 그래서 외지 사람들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부산에 찾아오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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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숙도 구름다리 (구름다리 위로지나는 모습)


철새의 낙원이라면 인간에게도 낙원이다. 을숙도를 찾은 시민들의 행복, 삶의 찬가는 시와 노래, 소설과 연극, 그림과 사진이 되어 부산문화예술의 한 뼈대를 이루었다. 을숙도는 1960년대 후반에 조성된 에덴공원과 더불어 낙동강 하구의 독특한 사랑과낭만을 구가했다. 갈밭길 발자국마다 아름다운 추억이 새겨져 있는 장소였다.

1967년 낙동강 하구 을숙도. 갈대숲 사이 작은 물길을 따라

나룻배가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이채를 띤다.

을숙도에는 갈대가 무성하여 돛단배가 한가롭게 지나가고 비상하는 백조의 아름다움과 물결치는 갈대와 낙동강의 석양을 촬영하기 위하여 1960년대에 자주 찾은 곳이다. 주변에 집이 없고 지금의 사상공단은 갈대밭이었으며 새들이 그곳까지 날아왔다. 당시 무성한 갈대 위로 새들이 무리지어 내려앉는 모습은 을숙도에서만 볼 수 있는 절경이었다. 강물도 그대로 떠 마실 수 있었다.

그 을숙도에 음악이 있는 술집이 여러 곳 있었고 창문 5m 앞쪽 강가에서는 백조가 노닐기도 했다.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이 흐르는 가운데 우아하게 강가를 거니는 백조를 보며 연인과 술 한 잔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낭만이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연애장소로 꽤 인기가 높았다.

갈대밭이 무성한 을숙도에 노을이 지면 한가로이 새들이 날아오르고 강물마저 붉게 물들은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때론 사람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고함을 지르 거나 돈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면 놀란 백조가 푸더덕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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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단배와 함께 (1970) 젊은 청춘과 낭만을 위해 기념촬영을 하고있는 아가씨들


그러나 '새가 많고 물이 맑은' 을숙도에 그 많은 분뇨를 퍼다날라 똥오줌 천국을 만들었고, 하구둑과 명지대교를 만드느라 섬을 무참하게 저버렸다. 을숙도가 천연기념물 제179호로 지정된 것은 41년 전인 1966년이다. 하지만 소중한 자연 자산을 보존하라는 그 '지상(至上)의 명령'마저 을숙도를 두 동강, 세 동강으로 토막내버린 것이다. 이것이 을숙도의 숙명이련가?인간의 무지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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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통다리

(1977, 추억이 가득한 똥통다리 옆에서 재첩잡이 출항에 분주한 어민들)


지난날 을숙도에는 일명 '똥다리'가 있었다. 이곳에서냄새를 맡았다면 당신은 을숙도의 낭만적 분위기를 아는 사람이다.여기서 똥배가 떴고 나룻배(도선)가 오갔으며 선남선녀들의 사랑과 우정이 싹텄다. 그 추억을 공유한 7080이라면 아마 콧등을 씰룩거릴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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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선착장 (1978)

떨어지는 낙조를 아쉬워하며 선착장 다리를 건너는 모습[사진출처: 사하구청]


지금의 을숙도 2차 쓰레기매립장 일대에 넓직한 구덩이를 파서 분뇨를 부어두면, 상등수(윗물)와 하등수(속물)로 분리돼 일부는 떠내려가거나 산화되고 나머지는 거름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 같은 방식은 1973년 부산 사상구 감전동에 위생사업소가 설치될 때까지 이어졌다. 을숙도 똥다리는 하구둑 물막이 공사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 하구둑 건설 뒤 을숙도에는 분뇨처리장이 정색을 하고 들어섰고, 199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쓰레기가 압축되어 매립됐다. 을숙도 재활용을 고심하던 부산시는 지난 6월 매립장 들머리에 낙동강하구 에코센터를 열었다.



을숙도 추억의 나무다리(일명 똥다리).

위쪽은 1990년 초의 정경, 아랫쪽은 요즘 모습


숱한 개발 와중에도 20여 년 전 을숙도를 말해주는 표식이 하나 남아 있다. 제1, 제2쓰레기매립장을 연결하는 을숙교 아래 수로에 있는 '나무다리'다. 다 뜯겨 나가고 '두 다릿발'만 앙상하게 남았다. 보기에 따라 설치예술 같기도 하고 절간의 당간지주 같기도 하다. 나룻배가 다니던! 시절, 사람들은 을숙도에 들어가면 통과의례처럼 저 다리를 건넜다. 이곳은 갯벌지대 특유의 분위기와 운치 때문에 한때 영화촬영지로 인기였다. 이문열 연작 소설 '젊은날의 초상' 제2부인 '하구'의 배경이 여기다.




을숙도주변안내도


일웅도(日雄島). 낙동강하굿둑을 기준으로 을숙도 상단부를 지칭한다. 하구둑이 놓이기 전까지는 을숙도와 분리된 엄연한 모래섬이었다. 하굿둑 설치로 을숙도와 이어졌고 이후 육지화가 진행되면서 그 많던 갈대와 습지는 자취를 감췄다. 산책로 동쪽에 갈대밭과 습지가 조금 남아있다. 은빛 강변을 따라 걷는 흙길 산책로가 일품이다. 산책로 주변에 억새와 버드나무가 많으며강에서 쉬는 물새들을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철새도래지로 묶여 있는 을숙도 하단과 달리 유원지로 개발돼 출입이 자유롭다. 일웅도 산책길은 '낙동강 하구 생태환경연구소'에서 조각공원·을숙도문화회관(2.5㎞)까지 한 바퀴 원점회귀가 가능하다. 아직 정식 산책로가 아니여서 이정표는 없지만 출입을 막거나 하지는 않는다.



관광이미지

을숙도에코센터(2007년 6월12일 개관)

1970년대까지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던 낙동강 하구가

각종 개발로 크게 훼손됨에 따라 철저한 관리와 생태적 활용으로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지상 3층, 연면적 4천75㎡ 규모의 에코센터를 건립했다. 센터 2층에서는

CCTV를 통해 습지에서 생활하는 철새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고

▲낙동강의 역사 ▲낙동강 하구습지의 특성 ▲서식 생물 ▲하구를 찾는 조류

▲하구의 과거, 현재, 미래의 5개 주제로 나뉜 전시실에서는 지도, 사료,

박제, 조형물, 영상물을 관람할 수 있다.

낙동강 하구는 철새들의 쉼터인 동시에 서민들의 애환과 젊은이들의 낭만, 예술인들의 창작정신이 함께 깃든 공간이었다. 하지만 도시의 발전과 함께 개발과 보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주장하는 가운데 지난날의 낭만과 추억의 장소에서장벽 저쪽의 단절된 처소로 바뀌였다. 멀리 내려앉은 새들을 한번 불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에 담아보지도 못하고 을숙도 에코센터에서 관음증 환자처럼 조용히 숨어서 그들을 '탐조'해야만 한다.
강이 흐르고 갈대가 서걱대고 강의 낙조를 따라 철새가 일제히 날아오르던 철새들의 낙원이 실낙원(失樂園)으로 바뀌고 있는데도, 새들은 '새(乙) 많고 물 맑은(淑) 섬'을 잊지 않고 찾아온다. 인간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골고루 끌어안은 을숙도는 처절하게 짓밟히면서도 '자연친화'를 얘기한다. 환경이 악화되긴 했으나 을숙도 일대의 습지 생태계는 여전히 보존 가치가 크기때문이다.
최근 해마다 찾아드는 철새들의 숫자가 줄고있지만 사람 발길 끊어진 을숙도 갈대 습지, 장대한 갈대밭이 왕성하게 살아 있고 진우도쪽에서는 사라진 재첩도 자라고 있다. 더 잃기전에 자연과 인간의 공생법을 찾아 하늘이 내려준 자연이 숨쉬는 아름다운 낙동강 하구를 우리의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물려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