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유물
`상상 초월할 무덤…1천 기 넘을 듯`
bluewaves
2010. 8. 2. 15:31
"상상 초월할 무덤…1천 기 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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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아야 30~40기가량으로 생각했는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덤이 집중해서 나왔어요."
홍보식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장은 땡볕 속에서도 흥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삼국시대 무덤 50기, 고려시대 무덤 1기, 조선시대 무덤 60기, 여기다 청동기시대 집석유구 4기까지 110기가 넘는 유구가 나왔어요. 일대를 죄다 조사하면 무덤이 1천 기는 될 겁니다."
■ '연산동고분군' 발굴 현장 가보니…
부산박물관 조사팀 110기 찾아
청동거울 등 출토…대부분 도굴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에 조성된 연산동고분군은 시쳇말로 발에 차이는 게 무덤이었다. 등산로에 삐죽삐죽 솟아있는 돌들은 대부분 무덤에 사용됐던 석곽이었으니. 연산동고분군은 배산(盃山)에서 북쪽으로 뻗어나온 50m 전후의 능선 정상부를 따라 대형 봉분을 가진 고분 10여기가 일렬로 배치돼 있고, 대형분들 주변의 구릉 경사면에는 중소형 고분들이 배치돼 있는 곳. 부산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둥글고 높은 봉분을 가진 유적이다.
부산박물관이 지난해 12월 28일부터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고분군 유적정비와 체육공원 조성공사에 따른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1987년 대형 봉분인 4호분과 8호분을 발굴한 지 20여 년 만이다.
"복천동고분군과 비교하면 재미 있는 게 있어요." 복천동고분군과 온천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 복천동고분군에 뒤이어 나타나, 연산동고분군을 조성한 집단과 복천동고분군 조성 집단의 관계에 대해서도 학계의 관심이 높았더랬다. "연산동고분군의 대형 봉분과 경사면에 집중된 중소형 고분 간의 차이가 현격해요. 대형 봉분의 경우 좋은 입지에다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해 흙을 높이 쌓았고, 규모도 이미 조사된 4호나 8호의 경우 석곽 길이만 11m에 달해요. 그런데 중소형 무덤들의 석곽 길이가 2~3m에 불과하지요. 중심지배세력과 하위층의 구분이 무덤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요." 대형고분과 중소형고분 간의 규모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은 복천동고분군에 비해 사회적 위계의 차이가 그만큼 커졌다는 증거다.
"구릉 한쪽에는 무덤은 하나도 없이 야외노지만 있어요. 돌이 두 개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에 토기가 넘어져 있었지요. 바닥에 불이 탄 흔적이 역력했어요. 부뚜막으로 사용한 조리시설이에요. 무덤에서 나온 유물과 시기가 같아서 아마도 무덤을 조성할 때 음식물을 제공하던 조리시설 같아요. 전국적으로 이런 시설이 나온 적이 없었어요."
고려시대 청동거울이 나온 것도 이례적이다. 부산실내빙상경기장 부지에서 청동거울이 나온 뒤 부산선 이번이 두 번째. 직경 9.6㎝와 16㎝ 크기의 동경 두 점이 청동숟가락과 함께 출토됐다. 조선시대 무덤에선 자수정 귀걸이와 가락지 등 장신구들과 철제 가위 등이 나왔다고 했다.
아쉽게도 무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파괴돼 있었다. 도굴 때문이다. 머리맡과 발치의 뚜껑돌을 들어내고 무덤 속의 유물을 빼간 것. 때문에 내부가 완전히 교란된 경우가 많았다. 대형 봉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날 10호분에서 거대한 뚜껑돌이 노출됐다. 두께만 족히 60㎝가 넘었는데, 그 위에 도굴구덩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구덩이를 메운 곳엔 쓰레기를 태운 자국이 선명했다. 81년도 제조일자가 찍힌 코카콜라캔도 보였다.
발굴은 오는 10월 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홍보식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장은 땡볕 속에서도 흥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삼국시대 무덤 50기, 고려시대 무덤 1기, 조선시대 무덤 60기, 여기다 청동기시대 집석유구 4기까지 110기가 넘는 유구가 나왔어요. 일대를 죄다 조사하면 무덤이 1천 기는 될 겁니다."
■ '연산동고분군' 발굴 현장 가보니…
부산박물관 조사팀 110기 찾아
청동거울 등 출토…대부분 도굴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에 조성된 연산동고분군은 시쳇말로 발에 차이는 게 무덤이었다. 등산로에 삐죽삐죽 솟아있는 돌들은 대부분 무덤에 사용됐던 석곽이었으니. 연산동고분군은 배산(盃山)에서 북쪽으로 뻗어나온 50m 전후의 능선 정상부를 따라 대형 봉분을 가진 고분 10여기가 일렬로 배치돼 있고, 대형분들 주변의 구릉 경사면에는 중소형 고분들이 배치돼 있는 곳. 부산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둥글고 높은 봉분을 가진 유적이다.
부산박물관이 지난해 12월 28일부터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고분군 유적정비와 체육공원 조성공사에 따른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1987년 대형 봉분인 4호분과 8호분을 발굴한 지 20여 년 만이다.
"복천동고분군과 비교하면 재미 있는 게 있어요." 복천동고분군과 온천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 복천동고분군에 뒤이어 나타나, 연산동고분군을 조성한 집단과 복천동고분군 조성 집단의 관계에 대해서도 학계의 관심이 높았더랬다. "연산동고분군의 대형 봉분과 경사면에 집중된 중소형 고분 간의 차이가 현격해요. 대형 봉분의 경우 좋은 입지에다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해 흙을 높이 쌓았고, 규모도 이미 조사된 4호나 8호의 경우 석곽 길이만 11m에 달해요. 그런데 중소형 무덤들의 석곽 길이가 2~3m에 불과하지요. 중심지배세력과 하위층의 구분이 무덤에서 명확하게 드러나요." 대형고분과 중소형고분 간의 규모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은 복천동고분군에 비해 사회적 위계의 차이가 그만큼 커졌다는 증거다.
"구릉 한쪽에는 무덤은 하나도 없이 야외노지만 있어요. 돌이 두 개 세워져 있었고, 그 옆에 토기가 넘어져 있었지요. 바닥에 불이 탄 흔적이 역력했어요. 부뚜막으로 사용한 조리시설이에요. 무덤에서 나온 유물과 시기가 같아서 아마도 무덤을 조성할 때 음식물을 제공하던 조리시설 같아요. 전국적으로 이런 시설이 나온 적이 없었어요."
고려시대 청동거울이 나온 것도 이례적이다. 부산실내빙상경기장 부지에서 청동거울이 나온 뒤 부산선 이번이 두 번째. 직경 9.6㎝와 16㎝ 크기의 동경 두 점이 청동숟가락과 함께 출토됐다. 조선시대 무덤에선 자수정 귀걸이와 가락지 등 장신구들과 철제 가위 등이 나왔다고 했다.
아쉽게도 무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파괴돼 있었다. 도굴 때문이다. 머리맡과 발치의 뚜껑돌을 들어내고 무덤 속의 유물을 빼간 것. 때문에 내부가 완전히 교란된 경우가 많았다. 대형 봉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날 10호분에서 거대한 뚜껑돌이 노출됐다. 두께만 족히 60㎝가 넘었는데, 그 위에 도굴구덩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구덩이를 메운 곳엔 쓰레기를 태운 자국이 선명했다. 81년도 제조일자가 찍힌 코카콜라캔도 보였다.
발굴은 오는 10월 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 22면 | 입력시간: 2010-08-02 [09:4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