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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밤하늘 별은 수천 년 친구 사이

bluewaves 2010. 8. 29. 10:12

인류와 밤하늘 별은 수천 년 친구 사이



“불 꺼요, 불 꺼!” 언제 어디선가 이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어릴 적 추억이다. 민방위훈련의 일환으로 등화관제(燈火管制)를 하는 밤이면 으레 동네 민방위 아저씨들이 골목을 돌아다니면서 ‘불 꺼’를 외쳤다. 도시의 불을 모두 꺼 야간에 적이 공습 대상을 찾지 못하게 하자는 훈련이다. 그 소리를 들은 형과 나는 잽싸게 옥상 물탱크 위로 올라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밤하늘은 보석처럼 빛났다. 말 그대로 별천지였다. 때로 별똥별이 산 너머로 휙 지나갔다.

그래도 도시인들의 잠재의식 속에선 여전히 별이 남아 있다. 교과서 속 단편소설 알퐁스 도데의 별, 80년대 비운의 가수 유재하의 별, 대작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의 별 등 마음속의 모습은 다르지만 모두 별에 대한 동경은 본능처럼 가지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서 열린 ‘별 헤는 밤 in Seoul’ 행사가 그랬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비가 내렸던 불안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3000여 명의 시민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은 이날 어둠이 내린 한강변에서 구름 사이로 삐져 나온 견우별과 직녀별을 볼 수 있었다. 평소 ‘서울 하늘에서 뭔 별을 봐’라고 생각했던 기자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별, 왜 별을 볼까. 인류의 별 보는 행위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별을 보며 신의 뜻을 읽는다는 점성술의 역사는 수천 년을 헤아린다. 인류는 별을 보며 시간이라는 관념을 깨우쳤고, 천체의 움직임과 질서를 통해 농업 혁명을 일으켰다. 별 보기 자체가 인간의 삶이었다. 망원경으로 처음 하늘을 본 사람은 갈릴레오였다. 그는 달의 운석구(crater)와 금성의 위상 변화, 목성의 위성 등을 발견했다. 대천문학자 윌리엄 허셀은 천왕성을 발견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태양계의 행성은 수·금·지·화·목·토에 그쳤다.

21세기의 별 보기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학자들의 별은 이미 천체물리학과 같은 복잡한 숫자 속으로 들어가 있다. 그들에게 물병자리, 전갈자리는 의미가 없다. 대신 그 자리는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차지했다. 21세기 별지기들은 여전히 갈릴레오와 허셀이 돼 행성을 관찰하고 별지도 속 별자리를 찾아 밤을 지새운다. 지도 속 별을 실제로 찾아보고, 사진으로 담아내는 데 즐거움을 느낀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이라도 빛의 속도로 4년 이상을 날아가야 도착할 수 있다는 말에 우주의 경외감을 느낀다.

별 보는 사람들을 천문가라고 한다. 아마추어 천문가 중에도 출중한 사람들이 있다.

직업으로서 별 보기를 하지 않을 뿐 천문학계에 대업적을 쌓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호주 뉴사우스웰스의 목사 로버트 오언 에번스는 1980년 이후 10년간 싸구려 수동식 망원경으로 15개의 초신성을 발견했다. 같은 기간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천문학자들은 구경 77㎝의 거대 망원경과 최신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컴퓨터 등을 동원해 단 3개의 초신성을 발견했다. 전문가 집단이 아마추어의 웃음거리가 된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 아마추어 천문가들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 단체인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는 1972년 단순한 모임인 ‘아마추어천문가회’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천문지도사를 배출해내는 ‘학회’로 성장해 천문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웬만한 대학에는 하나 이상 ‘별 동아리’가, 인터넷에는 회원 수만 명이 활동하는 동호회들이 밤마다 별을 찾아 우주 속을 누빈다. 그들이 진정 찾는 것은 별 속의 행복이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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