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떠났습니다. 서럽지도, 아쉽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지요. 겨울이 지나간 자리는 온통 상처투성입니다. 깎이고 터진 곳이 수두룩합니다. 그 자리에 슬그머니 들어선 봄. 그 봄이 민망할 정도로 바지런을 떱니다. 터지고 갈라진 틈을 메우고 깁습니다. 봄의 손놀림이 잽쌀수록 풍광도 달라집니다. 산책을 나선 아이의 입에선 저절로 탄성이 터집니다.
“햐~ 봄이네.”
봄 봄 봄. 먹는 봄도 함께 왔습니다.
봄은 맛있습니다. 상큼합니다. 싱싱합니다. 무엇부터 먹어야 할지 고민입니다. 봄이 선사한 식재료로 한껏 멋을 부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봄은 어떤 맛인가요? 함께 찾는 봄 맛. 봄나물의 세계로 떠납니다.
|  | | ▲ 곤드레 밥 |
▶취의 세계
3월의 봄은 치열하다. 맛의 전투가 끊이지 않는다. 경쟁하듯 향기를 뿜어내고, 엉키고 흩어지며 천 가지의 맛을 낸다. 봄나물이다. 봄나물 중에서도 취가 차지하는 비중은 단연 돋보인다.
취의 종류는 예상외로 많다. 생김새며 맛도 천차만별이다. 채취지역도 다르다. 그러나 ‘나물 취’ 만큼은 예외다. 한반도 전역에 걸쳐 자생한다. 산위에 오르면 손쉽게 만날 수 있다.
이른 봄, 양지바른 언덕에서 만나는 미역취는 속칭 ‘칼 끝 나물’로 불린다. 생명력이 강하고 번식률도 높아 산기슭이나 언덕, 산길 가장자리에 무리지어 자란다. 흔하고 일찍 자라기 때문에 가장 먼저 밥상위에 오르는 나물. 미역취는 이른 봄에 시작, 나물 철이 끝나는 6월 중순까지 채취가 가능하다. 버들잎 같은 잎이 양쪽으로 갈라져 식별하기도 쉽다.
|  | | ▲ 병풍취 |
울릉도가 원산지인 울릉 취는 전국적인 명물이 된 산나물이다. 뱃길을 타고 제주로 건너간 울릉 취는 상품성도 뛰어나다. 산에서 들로 나온 대표적인 나물. 울릉 취는 제주를 거쳐 전남 고흥군에서도 집단 재배되고 있다.
시골장터에서 만나는 취는 대부분 ‘나물 취’다.
나물 취는 암나물 취와 수나물 취로 구분된다. 암나물 취는 줄기가 없고 뿌리에서 2~3개의 잎이 자란다. 수나물 취는 곧게 뻗은 줄기에 잎이 어긋난다.
▶곰취와 병풍취 |  | | ▲ 곰취 |
봄나물의 여왕 곰취. 곰취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국내 전역에서 자란다. 잎 모양이 말발굽과 비슷해 마제엽(馬蹄葉)으로 불리기도 한다. 맛과 효능이 뛰어나 집단 재배하기도 하지만 깊은 산에서 채취한 것이 최고다. 곰취의 가장 큰 쓰임새는 나물. 날로 먹거나 묵나물로 먹는다. 최근엔 간장 또는 된장을 사용, 장아찌로 만든 상품이 나올 정도로 활용법이 다양하다. 약재로서의 가치도 높다.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기침과 통증을 멈추며 담을 삭이는데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의나물과 혼동하기 쉬워 주의해야 한다.
병풍취는 산사람들에게 최고의 나물로 불린다. 곰취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맛과 향이 뛰어나며 다 자란 병풍취의 잎은 직경 30㎝가 넘는다. 깊은 산에 무리지어 자란다.
▶당귀
|  | | ▲ 야생 당귀 |
당귀의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뿌리는 약재로 사용한다. 피를 생성하거나 보하는데 효능이 커 혈에 관련된 부인병 질환에 두루 쓰이고 있다.
학술적으로 당귀는 산형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로 정의되며 잎과 뿌리를 모두 유용하게 사용한다. 향이 독특해 목욕할 때 쓰기도 한다. 8∼9월에 자주색 또는 흰색 꽃이 피며 암당귀와 수당귀로 구분한다. 어린 순은 쌈으로 먹거나 나물로 먹는다. 뿌리나 순을 차로 달여 마시거나 술을 담그기도 하고 말린 뿌리를 가루로 내어 다식을 만들기도 했다.
▶원추리
원추리는 봄과 함께 온다.
이른 봄, 언 땅을 녹이며 뾰족한 잎 새를 내미는 어린순은 하루가 다르게 잎을 키운다. 어린 순은 끓는 물에 데쳐 나물로 먹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국거리 또는 김치재료로 사용하기도 한다. 원추리는 뿌리와 잎 꽃 등 어느 부위도 버릴 것이 없다. 뿌리는 녹말로 만들어 먹기도 했는데 구황식물로 요긴하게 사용됐다. 꽃잎을 우려내 차를 만들거나 쌈으로 먹기도 한다. 요리문화가 발달된 중국에서는 말린 꽃을 황화채 또는 침채라고 하여 귀중한 요리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약초로서의 기능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근심을 잊게 하는 ‘망우초’ 답게 신경질환 계통에 주로 많이 사용된다. 우울증을 치료하거나 해독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다래순
다래순은 일반화 된 나물이다. 그러나 약초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한방에서는 다래순에 위암과 식도암 유방암 간염 관절염을 치료하는 성분이 있다고 말한다. 다래순은 초봄에 싹이 올라올 때 딴다. 가지에서 5∼10㎝ 가량 자랐을 때가 채취 적기이다.
어린 순을 끓는 물에 데쳐 우려낸 뒤 곧바로 무쳐먹기도 하지만 떫은 맛 때문에 묵나물로 먹는 것이 좋다. 대량 채취가 가능하며 섬유질과 칼슘 비타민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곤드레 밥
별미로 먹는 산채 나물 밥. 산채에 식이섬유와 비타민, 칼슘, 단백질이 풍부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물밥이 웰빙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정선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입소문을 탄 곤드레밥은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큰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곤드레밥집도 늘어나는 추세다.
곤레밥은 말린 곤드레를 물에 불렸다가 들기름에 볶은 뒤 쌀과 함께 지은 것으로 향과 맛이 뛰어난 것이 특징. 곤드레로 만든 전과 된장찌개 등도 일품이다. 고등어 등 생선 조림을 할 때 무청 대신 넣기도 한다. 곤드레는 나물취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잎에 윤기가 있고 줄기에 솜털이 있다. 강원도 정선지역을 중심으로 폭넓게 자생하고 있다.
▶강원도의 산채밥상
|  | | ▲ 나물취 |
강원도의 산채밥상은 질펀하다. 요리법도 다양하다. 무치고 볶고 조려내는 기법도 탁월하다. 한 가지 산채로 다양한 맛을 내는 것도 일품. 백두대간을 따라 형성된 인제 양구 평창 정선 등에서 다양한 산채를 즐길 수 있다. 산채의 종류도 다양하다. 계절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어디에서건 일곱 가지 이상의 산채는 늘 만날 수 있다.
곤드레와 고비 고사리 참취 누룩치 다래순 얼레지 망초 산마늘 두릅 엄나무 순 등은 건채(묵나물)로 만날 수 있고 이를 재료로 한 나물밥과 전 등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병풍취와 우산나물 단풍취 박쥐나물 등 생소한 이름의 나물도 강원도 산채밥상에선 어렵지 않게 만난다. 강원도의 산채밥상은 풍성하다 못해 신비롭다.
강병로 선임기자 <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