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등불

아침의 시] 거북이 / 김기택

bluewaves 2010. 9. 14. 17:10
[아침의 시] 거북이 / 김기택

거북이 뭉툭한 발 속으로 시간이 들어가네

초침 소리 내지 않고 느릿느릿 걸어가네

거북이 발 멈추고 먼 바다를 바라보면

시간은 잠시 돌속으로 들어갔다가

생각나면 돌에서 발을 빼고 다시 걷는다네

시간은 부지런히 파도를 몰고 와

거북이 무딘 귀를 때리고 또 때리지만

이내 거품이 된다네 출렁출렁 물이 된다네

거북이 걸어가네 끝없이 걸어가네

걷는 것도 잊은 채 온종일 쉬엄쉬엄


-시집 '태아의 잠'에서


▶김기택=1957년 안양 출생.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꼽추'로 등단. 시집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등.

내가 허공으로 팔을 뻗는 동안 거북이의 발은 몸통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내가 하늘 한 번 쳐다보지도 땅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고속버스, 고속기차를 타고 다니는 동안, 거북이는 걷던 걸음 잠시 멈추고 먼 바다를 바라본다. 내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음 업무에 급급해하는 동안, 거북이는 꿈에서 깨어난 듯 몸통에서 발을 빼고 다시 걷는다. 이런 거북이의 움직임에는 두려움, 원망, 후회 따위는 없다. 하기야 '속성 과정'을 너무나 선호하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거북이의 움직임은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우리도 천천히 걸어가 보자. 정익진·시인
입력: 2010.09.1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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