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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침 소리 내지 않고 느릿느릿 걸어가네
거북이 발 멈추고 먼 바다를 바라보면
시간은 잠시 돌속으로 들어갔다가
생각나면 돌에서 발을 빼고 다시 걷는다네
시간은 부지런히 파도를 몰고 와
거북이 무딘 귀를 때리고 또 때리지만
이내 거품이 된다네 출렁출렁 물이 된다네
거북이 걸어가네 끝없이 걸어가네
걷는 것도 잊은 채 온종일 쉬엄쉬엄
-시집 '태아의 잠'에서
▶김기택=1957년 안양 출생.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꼽추'로 등단. 시집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등.
내가 허공으로 팔을 뻗는 동안 거북이의 발은 몸통 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내가 하늘 한 번 쳐다보지도 땅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고속버스, 고속기차를 타고 다니는 동안, 거북이는 걷던 걸음 잠시 멈추고 먼 바다를 바라본다. 내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음 업무에 급급해하는 동안, 거북이는 꿈에서 깨어난 듯 몸통에서 발을 빼고 다시 걷는다. 이런 거북이의 움직임에는 두려움, 원망, 후회 따위는 없다. 하기야 '속성 과정'을 너무나 선호하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거북이의 움직임은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우리도 천천히 걸어가 보자. 정익진·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