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도 시비
<단란>
아이는 글을 읽고 나는 수를 놓고
심지 돋으고 이마를 맞대이면
어둠도 고운 애정에 삼간듯 둘렀다.
<석류>
다스려도 다스려도 못 여밀 가슴속을
알알 익은 고독 기어히 터지는 추정(秋睛)
한 자락 가던 구름도 추녀 끝에 머문다.
<모란>
여미어 도사릴수록 그리움은 아득하고
가슴 열면 고여 닿는 겹겹이 먼 하늘
바람만 봄이 겨웁네 옷자락을 흩는다.
- 금강공원 이영도 시비의 네 작품 -
시조시인 이영도(李永道/1916~1976)
경북 청도 출생. 시조 시인. 호는 정운. 1945년 <죽순>에 시조 '제야'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여, 여성 특유의 전통적 정서를 감각적 언어로 표현하였다. 시조시인 이호우의 친동생.
통영여고, 남성여고, 성지여고의 교사를 지냈으며 부산여대에 출강하기도 했다. 작품세계는 여성의 맑고 경건한 계시주의와 낭만 등 섬세한 감각을 들 수 있다.
<청저집>, <석류> 등의 시조집이 있다.
그녀는 해방 이후 등단한 최초의 시조시인으로 황진이의 맥을 이은 현대 시조시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영도의 시조는 간결한 언어구사로 절제된 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정운 이영도 선생의 시비가 부산의 금강공원에 있는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요?
그것은 그녀가 50년대 말 10년간 살았던 통영을 떠나 67년까지 부산의 남성여고와 성지여고의 교사, 부산여대에도 출강하였으며 또한 부산대학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호가 '정운'인 그녀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제자들을 여럿 두었다고 하는데요.
이들 모두 괄목할 만한 시인으로 성장해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매우 검소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장례비를 모았을 만큼 철저하게 예비하는 삶을 살았는데요. 그 만큼 남의 신세를 지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또 한가지.
그녀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청마 유치환과의 플라토닉사랑입니다.
이 일화는 청마가 정운에게 준 연애편지를 청마가 돌아가신 후, 출판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란 책에 절절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회가 되시는 분은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이영도 시인의 시비는 부산일보 김상훈 사장이 96년에 금강공원 안에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영도 시인과 분위기가 어울리는 낯익은(?) 현대시조 한 수를 덤으로 소개하겠습니다.
낙동강 빈 나루에 달빛이 푸릅니다.
무엔지 그리운 밤 지향없이 가고파서
흐르는 금빛 노을에 배를 맡겨 봅니다.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이호우 시조시인의 "달밤'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시조를 쓴 이호우 시인은 이영도 시인의 친 오라버니입니다. 이들 오누이 시인들로 말미암아 우리 시조의 맥이 더욱 풍요롭게 되살아 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이영도 시비로 인해 자칫 유원지로만 알려져 있는 금강공원에서 정감 어린 시조의 멋과 맛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뜻밖의 행운이라 여겨집니다.▣ <글·김보아 / 사진·하광범>